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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바렌까! 당신이 제부쉬낀과 주고받은 편지를 읽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었지요.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도스또예프스끼의 데뷔작이고, 서간체로 된 소설이라서 꽤나 유명세를 탄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왜그렇게 길고도 긴지,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고사하고 읽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읽은 건, 내게도 ‘서간체 소설’이라는 꿈이 한 자락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편지로 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편지 이야기를 긴 글로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꿈꾸고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이야기가 내게 어떤 아이디어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신의 편지가 실린 책을 펼쳤습니다.
4월 8일, 제부쉬낀이 당신에게 쓴 편지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의 집 건너편에 사는 중년의 하급 관리인 제부쉬낀. 그는 당신에게 ‘부성애’를 앞세워 다가가고, 당신도 그의 우정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제부쉬낀과 당신은 ‘가난한 사람들’.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인 사람들이지요. 제부쉬낀이 묘사하는 하숙집의 풍경을 읽는 내내 나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지하실 집을 떠올렸습니다. 습한 냄새가 진동하는 어둠의 공간. 제부쉬낀이 사는 곳은 그런 이미지였으니까요. 형편없는 집에 살면서도 제부쉬낀은 당신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자신의 외투 하나 사지 못하면서 당신에게 설탕을 주고, 돈을 주지요. 당신은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받고, 뭐가 더 필요하다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당신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부쉬낀이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도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당신은 그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신이 제부쉬낀과의 관계에서 수없이 밀고 당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습한 냄새를 몸에 휘감은듯한 마음으로 당신들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저는 당신과 제부쉬낀이 서로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부쉬낀은 ‘감정의 과잉’을 보여주는 사람이었고, 당신은 ‘감정의 절제’를 보여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제부쉬낀의 편지들은 읽기가 버거웠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수다쟁이 같았지요. 반면 당신의 글은 깔끔했습니다. 특히 당신이 노트에 써놓았다는 자전적 이야기는 흡인력이 좋았어요. 그 뒷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궁금할 정도였지요. 어쩌면 제부쉬낀과 같은 집에 살던 소설가보다 당신이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제부쉬낀과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문학적 빈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지요. 제부쉬낀은 문학적으로 빈곤한 사람이었고, 그나마 당신은 문학을 찾아 읽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신도 문학적 풍요를 누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만, 제부쉬낀과 나란히 서 있으니 당신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 같더군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꿈꾼 사람이었지요. 그랬기 때문에 당신은 부유한 비꼬프와 결혼할 생각을 했겠지요. ‘소설 따위가 여자를 다 버린다’고 말하는 그 사람 말이에요!
그래요, 나도 알아요. 어쩌면 당신의 상황에서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걸. 그러나 마지막까지 제부쉬낀에게 이런 저런 일들을 부탁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났습니다. 당신은 알았겠지요. 제부쉬낀이 당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걸.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먹이사슬이 존재한다는 걸, 당신 덕분에 새삼 깨달았습니다.
당신과 제부쉬낀의 편지는 내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습니다. 여전히 정리 되지 못한 생각이 많은 걸 보니, 당신들의 편지가 왜 ‘고전’으로 불리며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흘러 내려오고 있는지 알 것 같군요. 아마도 당신의 편지는 오랜 시간 동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질 것 것입니다.
그런데 바렌까! 가난한 삶에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 당신. 경제적인 가난을 버리고 ‘정신적인 가난’을 택한 당신, 안녕한가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