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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
최명희 지음 / 한길사 / 199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용돈을 모아 큰 맘먹고 대하소설 사모으기 비슷한 걸 했드랬다. 그것두 두세질 사고나서 다른 관심사에 빠져 이내 말아버렸지만, 지금도 대하소설들을 보면 소유욕이 마구마구 치솟곤 한다.
굳이 대하소설이 아니더라도, 한국문학 중 문체만을 보자면 단연 으뜸으로 꼽힐만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솔직히 대하소설의 배경은 거의 조선 말 혹은 일제치하서부터 6.25전후까지가 대부분이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대하소설이 많은게 최근의 역사적인 현실을 살아온 인물의 일대기라도 그릴라치면 한두권으로 도저히 끝낼 수가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그게 그거겠거니 하면서도 늘상 새로운 기대감으로 책을 집어들게 만드는 것 또한 대하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비록 같은 시대라도 하나하나의 인생이 다르고 하나하나의 사연마다 특별하므로...
대하소설하면 아무래도 구구절절 구비구비 이어지는 인물들의 파란만장함이려니 했지만, 혼불만큼은 책 홍보를 통해 본 작가 최명희에 대한 기대심이 지대했다. 특히 구성이 너무 완벽한 것이 흠이라는 평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호기심이 일었고...
기대가 큰 책일 수록 막상 읽게되면 그저그런 경우가 많아왔지만, 혼불만큼은 추천글들이 무색했다. 1권에 나오는 강모와 효원의 결혼식 장면에서 숨이 막혀버렸다. 그저 가정 시간에 사진으로 본, 그리고 사극에서 곧잘 보게 되는 원삼이 그토록 숨막히게 아름다운 것이었다니... 옷고름하나 끝동하나 그리고 버선에 꽃신신은 발자욱 한걸음한걸음이 내 가슴 속에 아로새겨지듯 되살아났다.
그리고 1권을 채 다읽기도 전에 버거워져 왔다. 한두권짜리도 아니고 세상에 열권짜리 책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철판에 철필로 아로새기듯 써나가다니... 벌써부터 다 읽을 일이 까마득했다. 어지간한 가벼운 책이야 한권에 한두시간만에 가뿐히 읽어치우는 속독스타일의 독서법을 가진 나조차 설렁설렁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지엄함이 담긴 글이었다.
그렇게 혼신을 쏟은 글들을 다 읽고나서야 겨우 숨이 놓였다. 또한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쓸 수 있을까 싶었다. 혼불의 탈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의 부음소식을 들었다. 내심 안타까우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글을 한권도 아니고 열권이나 써냈다면 건강한 몸이라는게 이상할 테니...
숨이 멎을만큼 아름다운 조선말의 풍속들이 작가의 손에서 꿈처럼, 환상처럼 다시 살아나는 글,
독자마저 조금은 힘겹게 만들만큼 치열하게 써낸 작가의 혼이 느껴지는 글이다.
추천작 1순위이자, 최고라 칭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작가이지만
그녀가 무슨 문예공모에 당선했을 무렵의 당선작집을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했더랬다.
제목도 '혼불'. 한권으로 되었지만 말이다. 내심 그 글을 읽고 안심했었다는 부끄러운 속내를 고백한다. 혼불을 읽고 도저히 사람같이 여기지 않은 작가였지만, 초기의 그 글을 보니 그녀또한 사람이었음을 공감했다. 또한 당선작을 쓴 이후 20년가까운 시간을 고스란히 노력해 온 작가의 집념과 힘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어떤 수식어를 달든지간에, 문체에 있어서만큼은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차원 올려준 수작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