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인가, 아는 선배가 하루키 글에서 봤다면서 대충 이런 내용의 말을 했었다.

 '나중에 시간나면' 이라는 시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던가...

그때도 참 기막히게 맞는 말이라 생각했었는데, 어느순간  없는 시제를 기다리며 지내온 듯한 나를 발견한다.

시간나면...  시간은 내는 거지 나는 게 아니더라...

 

예전에 꽤나 뻔질나게 알라딘에 들러서 책구경도 하고, 책얘기(리뷰)도 듣고

얘는 이게 이뿌고, 쟤는 저게 이뿌고 각종 유혹에 빠지기도 뿌리치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 '새' 책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나를 발견했다.

구관이 명관이라지만 늘 새 책(새로 사서 내 방 책장에 고이 모셔두는 책)을 그리워하던 내가 말이다.

그동안 참 '나' 를 안 챙겨주며 살았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없는 시제에 목말라온 나를 위해

이제라도 책과의 데이트를 주선해볼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린빌에서 만나요 1
유시진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재회한 유시진의 작품이다. 

간만에 만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지만 마음을 비우고(과한 기대로 상처받은 작품이 많았던지라.. )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사이비와 사이언 꽤나 장난기 넘치는 등장인물의 작명센스만큼이나 일상 속의 유쾌함이 느껴지는 생활만화랄까...  

서문에 만화가 아닌 다른 작업으로 외도를 하다 다시 돌아왔다고, 유난히 작업시간이 길어서 걱정이 앞선다고.. 하는 말에 그래도 용케 험난한 만화로 돌아왔다 싶어 반가운 한편, 한 번 뜨고 나면 작품의 수준이 떨어지는 만화가들을 적잖이 본 터라 내심 이작가는 어떤가 싶기도 했었다. 

그녀의 작품은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에 매료돼 신작이 나올 때마다 꼭꼭 챙겨 보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남게 하는 조급함이 있었다. 단편이나 중편이 아닌 장편이다 싶은 작품을 접하면,  1권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이거 어떻게 마무리 할려나 걱정부터 앞서게 할 만큼, 진행과정에서의 갑갑함과 조바심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전해져 조마조마해지고 결국에는 완결에의 의지만을 접하고야 마는...  안타까움이 들게하는 작가였다.

그런데 무척이나 다행스럽게도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전작들에서 곧잘 발견하는 거창함(이 또한 그녀의 매력이지만 언제나 끝까지 밀고가는 호흡이 약했던 터라)과 조바심이 아닌 여유로움과 일상적이면서도 그녀만의 감성이 자연스레 배어나는 편안함에 감동하고 말았다. 데뷔를 하고 몇몇 작품을 발표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이먹고 그 속에서 배어나는 편안함을 보여준 만화가가 너무도 드물었기에 정말 반가웠다.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연재를 기다려야하는 고통에 괴롭지만, 작가의 여유로움에 감동해 버린 만큼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비우고 먼훗날(?) 재회할 2권을 기다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불 1
최명희 지음 / 한길사 / 199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용돈을 모아 큰 맘먹고 대하소설 사모으기 비슷한 걸 했드랬다. 그것두 두세질 사고나서 다른 관심사에 빠져 이내 말아버렸지만, 지금도 대하소설들을 보면 소유욕이 마구마구 치솟곤 한다.

굳이 대하소설이 아니더라도, 한국문학 중 문체만을 보자면 단연 으뜸으로 꼽힐만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솔직히 대하소설의 배경은 거의 조선 말 혹은 일제치하서부터 6.25전후까지가 대부분이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대하소설이 많은게 최근의 역사적인 현실을 살아온 인물의 일대기라도 그릴라치면 한두권으로 도저히 끝낼 수가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그게 그거겠거니 하면서도 늘상 새로운 기대감으로 책을 집어들게 만드는 것 또한 대하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비록 같은 시대라도 하나하나의 인생이 다르고 하나하나의 사연마다 특별하므로...

대하소설하면 아무래도 구구절절 구비구비 이어지는 인물들의 파란만장함이려니 했지만, 혼불만큼은 책 홍보를 통해 본 작가 최명희에 대한 기대심이 지대했다. 특히 구성이 너무 완벽한 것이 흠이라는 평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호기심이 일었고...

기대가 큰 책일 수록 막상 읽게되면 그저그런 경우가 많아왔지만, 혼불만큼은 추천글들이 무색했다. 1권에 나오는 강모와 효원의 결혼식 장면에서 숨이 막혀버렸다.  그저 가정 시간에 사진으로 본, 그리고 사극에서 곧잘 보게 되는 원삼이 그토록 숨막히게 아름다운 것이었다니...  옷고름하나 끝동하나 그리고 버선에 꽃신신은 발자욱 한걸음한걸음이 내 가슴 속에 아로새겨지듯 되살아났다. 

 그리고 1권을 채 다읽기도 전에 버거워져 왔다. 한두권짜리도 아니고 세상에 열권짜리 책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철판에 철필로 아로새기듯 써나가다니...  벌써부터 다 읽을 일이 까마득했다. 어지간한 가벼운 책이야 한권에 한두시간만에 가뿐히 읽어치우는 속독스타일의 독서법을 가진 나조차 설렁설렁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지엄함이 담긴 글이었다.

그렇게 혼신을 쏟은 글들을 다 읽고나서야 겨우 숨이 놓였다. 또한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쓸 수 있을까 싶었다. 혼불의 탈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의 부음소식을 들었다. 내심 안타까우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글을 한권도 아니고 열권이나 써냈다면 건강한 몸이라는게 이상할 테니... 

숨이 멎을만큼 아름다운 조선말의 풍속들이 작가의 손에서 꿈처럼, 환상처럼 다시 살아나는 글,

독자마저 조금은 힘겹게 만들만큼 치열하게 써낸 작가의 혼이 느껴지는 글이다.

 

추천작 1순위이자, 최고라 칭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작가이지만

그녀가 무슨 문예공모에 당선했을 무렵의 당선작집을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했더랬다.

제목도 '혼불'.  한권으로 되었지만 말이다. 내심 그 글을 읽고 안심했었다는 부끄러운 속내를 고백한다. 혼불을 읽고 도저히 사람같이 여기지 않은 작가였지만, 초기의 그 글을 보니 그녀또한 사람이었음을 공감했다. 또한 당선작을 쓴 이후 20년가까운 시간을 고스란히 노력해 온 작가의 집념과 힘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어떤 수식어를 달든지간에, 문체에 있어서만큼은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차원 올려준 수작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동안 알라딘에 뜸했었더랬다... 다만 알라딘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각박함은

 때론 집착처럼 사이버공간상의 익숙한 사이트를 배회하게 만드는가 하면

때론 사이버공간같은 얕은 관계를 모조리 끊어버리게도 만든다

 

가끔 인터넷 서핑을 하며 이래저래 답글은 달아도

새하얀 여백을 마주하면 나도모르게 숨이 막힌다...

 

그래서 이런저런 글들을 남기는 님들을 보면 대단하단 생각도 들고...

 

다만 아주 조금이나마 알라딘에 흔적을 남겨버린...

그래서 누군가가 방문해주기도 하는 - 객이 들어도 주인이 없어 휑한 이 공간에...

걸음할 누군가에게 못내 미안한 마음에 몇자 끄적여 본다...

 

그리고.. 어쩌면.. 주인없는 공간에 조금이나마 훈기를 넣어주는 님들에게

조그마한 온기를 건네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수학 귀신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1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지음, 고영아 옮김 / 비룡소 / 199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수학하면 계산을 떠올리지만 사실 논리가 기본이다. 그리고 심오하게 파고들 수록 수리능력만큼이나 논리력이 요구된다. 이 책은 논리적이고 내 식대로의 표현을 하자만 굉장히 국어적으로 잘 풀어놓았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교육방식과는 괴리되지만 꽤나 훌륭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을 싫어하는 친구들은 대개 이유는 모른채 별 희한한 방법으로 계산을 해내야 하는 데 진저리치는 데, 그런 친구들도 국어적으로 풀어서 설명해 주면 수학에 흥미를 가지곤 했다.

수학의 다양한 분야-대수, 기하, 통계, 수리논리 등등- 중에서도대수 파트에 조금 치우치는게 아쉽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어린 친구들이 부러워진다. 나도 어릴 적에 봤더라면, 수학 특히 내가 제일 젬병인 대수 쪽에 덜 힘들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