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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포트 블루 1
오사무 이시와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이 만화는 건강함 그 자체를 표현했다고 할 만큼 바르고 건실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윤리 교과서에나 나옴직한 훈시조의 내용은 절대 아니다. 그랬다면, 읽다 말고 바로 다른 만화를 집어 들었을 거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상을 가지고 노력하면 못 할 게 없다는 지극히 진부하고 고전적인 명언들이 그렇게나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일 수 없었다고나 할까.
초등학교 4학년인 개구진 골목대장 맛스구(眞直)와 얌전한 우등생 소라치(空知)는 우연히 맛스구의 아버지가 제작에 참가한 로켓 발사 현장에 참가한 뒤 우주 비행사가 될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도 우주 비행사가 될 거라며 두 사람과 어울리게 된 말괄량이 후우꼬들이 꿈을 키워나가며 여러 친구들과 만나고 꿈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내용이다. 특히 주인공 마가미 맛스구(眞上 眞直)는 이름위(하늘)를 향해 곧바로 나아간다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꿈을 향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일관된 열정과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는 캐릭터다. 또한 자신의 꿈에 관한 한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의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올곧게 노력해 나가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는 캐릭터다. 게다가 작품 속에서 숨가쁘게 펼쳐지는 우주적인 위기가 가져다 주는 박진감 넘치는 재미에, 휴머니즘 넘치는 인물들이 그려내는 에피소드들도 작품에 감동을 더해준다.
하지만 그러한 감동에 흥분되면서도, 가슴 한켠이 조금은 답답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위해 노력하며 현실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날의 순수했던 열정을 떠올리며 함께 흥분하며, 지친 일상에 다시금 의욕을 갖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동을 안고 만화방을 나설 때엔 이제는 퇴색해버린 어린 날의 순수했던 꿈과 희망에 씁쓸해야만 했다.
하지만 뒤늦게 읽게 된, 작가의 전작 B.B.(Burnig Blood)는 현실 앞에서 그 젊음을 분출할 길이 없이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고뇌가 생생한 작품이었다. 어른들이야 젊은이들을 보며 좋을 때라고 하지만, 막상 젊은이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피가 끓는 정열을 어찌 하지도 못한 채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힘겨워 하는 모습이 격정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패스포트 블루에서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격려가 넘쳐난다면, B.B는 젊은이들의 오갈 데 없는 막막함과 암울함이 배어있는 작품이었다.
컬리가 짐작컨대 패스포트 블루는 대강 작가가 40대쯤에, 그리고 B.B.는 20대쯤에 그려진 작품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패스포트 블루에서 보여주는 넉넉함과 강인함은 오랜 시간 동안 갈고 닦여진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작가 역시 젊었을 적에는 피해갈 수 없는 출구 없는 격정에 휘말렸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을 받는다. 힘겨울 때 가장 큰 위로는, 나의 힘겨움이 나만이 외롭게 겪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나처럼 힘들어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기에...
그러나 굳이 B.B.를 보며 동질감에 위로받지 않더라도, 패스포트 블루만으로도 독자로 하여금 따스한 감동으로 감싸주는 작품이다. 게다가 우주라는 새로운 영역이 가져다 주는 신비함과 환상적인 모습은, 비록 가혹하기 그지없는 환경이라 해도 꼭 한번은 찾아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이다. 우울하고 지루한 날에 권해주고 싶은, 흥미진진한 드라마와 열심히 살고 싶다는 의욕에 넘치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