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책이었다. 누군가의 죽음과 살아왔던 삶을 훑으며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어도 되는건지 혼란스러웠고,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사회에 통탄스러웠다. <양양>의 작가 양주연 씨의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가 존재도 몰랐던 고모가 있었음을 알게 됐고, 또 고모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그때부터 고모의 죽음부터 거꾸로 살아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70년대 대학생이었던 고모 양지영 씨는 요즘의 우리보다 더 진취적이고 당당한 모습이다. 동아리에 가입해 자기소개를 하며 ‘좋은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거나, 요즘도 괜히 공개하기 쉽지 않은 CC (캠퍼스커플)를 하면서도 공개연애를(!) 한다. 양지영 씨의 삶을 되돌아보며 머릿속에 물음표가 참 많이 떴다. 이토록 진취적이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왜 갑자기 스스로 죽음을 결정했을까? 그리고 그녀는 왜 남자친구의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양주연 씨는 양지영 씨의 삶의 퍼즐을 맞춰가며 그녀가 겪은 교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 당시 그 남자친구에 대한 깊은 조사가 이뤄졌으면 좋았겠지만 그 시대상에서 그녀는 남자친구 집을 드나들었던 되바라진 여성이었을 뿐이다. 죽음을 감추는 게 먼저였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숨겨야 할 일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제대로 된 장례도 없이, 그저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이 사회와 가족 속에서도 사라져버린다. 그저 가족들의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존재한다. 고모에 대해 이야기를 꺼렸던 양주연 씨의 아버지는 고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고모처럼 되지말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양주연 씨는 수긍하거나 순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모가 겪었을 지도 모를 교제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 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확장시켜 나간다. 지금도 연인과 교제하며 일어나는 폭행이나 살인 사건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7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과거에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여성들이 지금은 참지 않고, 그 사건들을 공론화시킬 뿐이다. 피해를 입은 여성을 위해 다른 여성들이 같이 연대할 뿐이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피해자가 홀로 져야하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 이 무게를 사회가 같이 나눌 수 있도록 제도적 개편, 처벌의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 나는 양지영 씨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가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그런 기억들은 왜 유독 밤중에 생각나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가!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교차하는 그런 밤이면 또 생각한다. 원시 시대의 인간들도 이렇게 밤을 괴로워했을까?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 당장' 굶주림을 해소해야 하고, '지금 당장' 맹수들로부터 숨어야 살 수 있었으므로. 점점 인간이 진화해가고 세상이 발전해가며 우리는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지는 않다. 다만 생존을 포기하는 인간의 수는 자꾸 늘어만 간다. 생각하다보면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고, 생각하다보니 더 괴로워진다. 장강명의 <뤼미에르 피플>은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그 고민과 더불어 괴로운 인간에 대해서도 잘 표현해낸다. 화려한 서울에서도 번화한 곳 중 하나인 신촌에 위치한 뤼미에르 빌딩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서울의 화려함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들은 잉여인간, 루저로 불리는 인간, 인간과 동물이 반씩 섞인 반인반서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괴로운 인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808호 쥐들의 지하왕국'이었다. ‘도대체 왜들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는 거예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 몰라요? 커피점에서 주사를 부리는 취한 아저씨들과 놀이터에서 본 낯선 남자를 따라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오고 있는 가출 소녀에게 나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남은 삶을 신나게 낭비하고 태워버릴수록 감각과 감정이 더 격렬해지는 걸까. 그래서 인간들도 몸의 신경과 세포를 짧은 순간에 더 많이 파괴하는 약과 음료를 찾는 걸까.’ 완전한 인간이 아닌 생쥐인간에게 우리는 '인간'이라는 그 존재 자체로 부러움을 산다. 아쉽게도 인간인 우리는 이 당연한 축복에 취해 어떻게든 즉각적인 쾌락에 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술을 마시고, 위험한 관계를 맺고, '나'의 파괴를 초래하는 약물까지 찾는 행위가 그렇다. 이뿐만 아니라 복수를 위해 현재를 놓치거나, 미래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현재의 쾌락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들을 우리는 <뤼미에르 피플>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간은 정말 왜 살아가는 것인가! 의문이 절로 든다. 각 호실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이 예상 밖이라 계속 눈이 가는 책이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보다 더 큰 반전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발행일이었다. <뤼미에르 피플>의 종이책 발행일은 2012년 12월 17일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어보는 터라 장강명 작가의 신작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용 또한 현재의 사회문제가 될만한 현상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0년이 넘어도 같은 사회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니. 참 씁쓸하다. 읽는 동안 인간이 정녕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지, 인간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고민할 수 있었다. 인간답게 살려고 할수록 더 괴로워지는 인간들이 안쓰럽다. '평균의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만 버려도 모두 숨통이 약간씩은 더 트일텐데... 10년 뒤에는 이 책의 사회문제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까?*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좋았던 건 글쓰기 수업이 있다는 거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필독도서가 아닌 책은 쓸모없는 책이었고, 백일장이 아닌 곳에서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며 시간을 보내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글쓰기와 관련이 깊은 과도 아니었기에) 교양수업이라는 명목 아래 책을 읽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쓰는 수업이 참 반가웠다. 그 수업이 있는 날엔 좋아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진짜다. 아직도 인상깊었던 과제가 있다. ‘세상을 유익하게 바꿀 발명품을 소개하라’는 것이었는데 정~말 웃기고 재밌게 적어라! 라는 단서가 붙었었다. 평소 내 말투대로 적었다가 틀에서 벗어나서 감점이다! 라는 평가를 받으면 매우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일반적인 형식의 글을 썼고, 웃긴 발명품(?)을 생각하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과제 총평회에서 교수님은 올해도 웃기고 참신한 글은 찾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쓰는 몸으로 살기>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 이유는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틀을 벗어나면서도 독자(=교수님)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많은 이들이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만 글을 잘 시작하고 끝맺는 법을 알려주는 이는 적다. 이 책은 생각을 글로 완성시키는 법까지를 알려준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기면 안된다’는 것과 묘사는 기교가 아닌 사로잡힘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생각을 어떤 문장으로 번역할지 고민하고 글로 옮겨야한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을 어떻게 문장으로 옮기느냐에 따라 독자는 웃을 수도, 울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묘사하고자 하는 것의 근원을 잘 관찰해야 독자에게 그 의도가 잘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책에는 그리움을 표현하는 예시로 황화자 할머니의 오직 한 사람이라는 시를 인용했다. 이 시를 보면 작가가 묘사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있다. 내가 쓴 글이 왜 좋지 않은 글인지에 대해 지적없이 더 좋은 글로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같다. 글쓰기의 기본서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나도 앞으로 글을 완성하고, 이 책을 들여다보며 퇴고를 한다면 더 좋은 글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상상을 많이 하는 mbti, 나는 infp다. 난 가끔 상상을 한다. 과거 꽤 흥행했던 퀴즈 프로그램 1vs100의 부활로 내가 일반인 참여자로 출연하게 된다면? 주말에 어디 놀러갔다가 유재석 씨와 조세호 씨를 만나 유 퀴즈~? 를 듣게 된다면? 언젠가 올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비주류(?) 상식을 쌓곤 한다.. <두번째 미술사> 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통념을 깬다. 그리고 다양한 예술작품들에 대한 뒷이야기도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흐가살아 생전 그림을 단 한 번도 팔지 못한 건 과장이었다거나, 의외로 밀레의 그림은 소박하고 평범해서 그 당시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책을 읽다보니 그 당시에는 별 것 아닌 것을 그려 가치절하되던 작품이 후세에는 오히려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1세기에는 밀레의 작품을 어렵지 않게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그저 그런 화가로 인식되던 고흐의 작품이 현대인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니 말이다. <두번째 미술사>는 그 당시 작품이 어떻게 인식됐는지 현재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설명을 해줘서 이해하기가 편했다. 예를 들면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바의 철저하게 세팅된 화실을 인스타 핫플로 비유하고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처럼 뒤늦게 유명해진 그림을 역주행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여성화가들의 활동에 대해서 다룬 책을 쉽게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여성화가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 수 있어 좋았다. 미술 관련 퀴즈가 나온다면 이런 내용들이 나올만 하지 않을까 상상하며 읽기 좋았던 책… 흔히 접하던 작품들에 대한 흔치않은 이야기들이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 퇴사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유독 자주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수능 준비하면서 공부하기 싫을 때 저 문구를 생각했다. 최선을 다하고자가 아닌 낙원 있을지도? 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며 공부에서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낙원은 정말 없었음을 깨달았다. (공부를 했었어도 낙원이 어딨는데! 했을 테지만ㅎㅎ) 그래서 무분별하게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저 문구를 떠올리고 버티고 버틴다. 한계점이 어디까지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강성봉 작가의 <파사주>는 표지부터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파사주라는 제목이 불어에서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문을 표지에서 만날 수 있었다. 파사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틀과 한계를 깨부수며 스스로 개척해가는 생의 여로(passage)와 같은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등장하는 유림과 해수는 ‘하나의말씀’이라는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다. 보살핌만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 좋았으련만 이 보육원은 보호를 가장한 착취의 현장이었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겪은 착취가 당연한 줄 알고 살아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매일 뉘우친다. 본인이 지은 죄가 아닌 부모가 지은 죄를. 그 죄가 본인의 잘못이었던 것처럼 대신 뉘우치고 구원을 받기를 원한다. 죄를 짓지 않은 이가 구원을 구하는 이상한 현상.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착취 방식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책 속에서는 조금 더 자극적으로 그 죄에 대해 뉘우치는 말이 나온다. 그 말들과 보육원의 존재 이유를 같이 떠올리게 되는 순간 열이 절로 뻗친다. 분노가 차오른다.책 바깥의 나는 그저 분노하고 괴로워만 하지만 책 속의 유림과 해수는 괴로운 순간들이 담긴 보육원을 떠나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눈다. 유림과 해수가 떠나지 않고 그 곳에 여전히 머물러있었다면? 부모의 죄로부터 용서를 받고 아버지 선생님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파사주>를 읽으며 깨달은 삶의 당연한 순리는 구원은 내가 내게만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서도 구원을 구할 수 없고 또 내가 타인을 구원해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도망쳐야할 때를 알고 도망치는 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 도망이 아닌 유일한 빛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꽤나 우울하고 엄청 화가 나는 내용의 연속이지만 이들을 보며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