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그런 기억들은 왜 유독 밤중에 생각나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가!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교차하는 그런 밤이면 또 생각한다. 원시 시대의 인간들도 이렇게 밤을 괴로워했을까?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 당장' 굶주림을 해소해야 하고, '지금 당장' 맹수들로부터 숨어야 살 수 있었으므로. 점점 인간이 진화해가고 세상이 발전해가며 우리는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지는 않다. 다만 생존을 포기하는 인간의 수는 자꾸 늘어만 간다. 생각하다보면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고, 생각하다보니 더 괴로워진다.

장강명의 <뤼미에르 피플>은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그 고민과 더불어 괴로운 인간에 대해서도 잘 표현해낸다.
화려한 서울에서도 번화한 곳 중 하나인 신촌에 위치한 뤼미에르 빌딩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서울의 화려함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들은 잉여인간, 루저로 불리는 인간, 인간과 동물이 반씩 섞인 반인반서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괴로운 인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808호 쥐들의 지하왕국'이었다.

‘도대체 왜들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는 거예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 몰라요? 커피점에서 주사를 부리는 취한 아저씨들과 놀이터에서 본 낯선 남자를 따라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오고 있는 가출 소녀에게 나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남은 삶을 신나게 낭비하고 태워버릴수록 감각과 감정이 더 격렬해지는 걸까. 그래서 인간들도 몸의 신경과 세포를 짧은 순간에 더 많이 파괴하는 약과 음료를 찾는 걸까.’

완전한 인간이 아닌 생쥐인간에게 우리는 '인간'이라는 그 존재 자체로 부러움을 산다. 아쉽게도 인간인 우리는 이 당연한 축복에 취해 어떻게든 즉각적인 쾌락에 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술을 마시고, 위험한 관계를 맺고, '나'의 파괴를 초래하는 약물까지 찾는 행위가 그렇다. 이뿐만 아니라 복수를 위해 현재를 놓치거나, 미래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현재의 쾌락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들을 우리는 <뤼미에르 피플>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간은 정말 왜 살아가는 것인가! 의문이 절로 든다.

각 호실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이 예상 밖이라 계속 눈이 가는 책이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보다 더 큰 반전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발행일이었다. <뤼미에르 피플>의 종이책 발행일은 2012년 12월 17일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어보는 터라 장강명 작가의 신작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용 또한 현재의 사회문제가 될만한 현상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0년이 넘어도 같은 사회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니. 참 씁쓸하다.
읽는 동안 인간이 정녕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지, 인간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고민할 수 있었다. 인간답게 살려고 할수록 더 괴로워지는 인간들이 안쓰럽다. '평균의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만 버려도 모두 숨통이 약간씩은 더 트일텐데... 10년 뒤에는 이 책의 사회문제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까?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