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ㅣ 창비세계문학 58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7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출판사 창비에서 책을 무작위로 발송하는 시크릿 세계문학 서평단을 모집한다기에 '세계문학은 언제나 환영이야'라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신청했다. 얼떨결에 선정이 됐고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받았다. (이게 무슨 행운인지) 포의 여러 단편집 안에서 유수의 작품을 만난 기억이 있어서인지 그의 유일한 장편이라는 이 책에 자연스럽게 기대를 걸었다.
포의 소설은 대체로 공포 장르에 뿌리를 둔다. 리사 크뢰거와 멜라니 R. 엔더슨이 공저자인 『여자가 쓴 괴물들』(2021, 구픽)에는 공포에 대한 탁월한 정의가 나오는데 에드거 앨런 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호러가 관습을 거스르는 장르"라는 그들의 표현을 빌려야 하겠다. 포의 소설은, 특히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명백히 관습을 거스르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애드거 엘런 포는 기이한 것, 특히 독자의 상상 이상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미지의 공포를 이 소설에서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의 배경을 바다로 설정한다. 서술자인 아서 고든 핌은 자신이 항해하는 동안 있었던 일, 특히 끔찍했던 경험을 독자에게 풀어놓는다. 포는 '핌'이라는 인물이 작가인 자신을 통해 실제 이야기를 세상에 보이는 것처럼 서술했다. 핌이 직접 쓴 듯한 서문을 꾸며 실었고 그와 친분이 있는 것처럼 후기를 썼다. 그는 후기에서 핌이 죽었다는 소식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는 듯 뒷이야기를 요약한다.
1인칭으로 소설을 쓴 것으로도 모자라 픽션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서문에 드러난 A.G.핌의 망설임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말이 "너무나 황당하다 할 만큼 신기한 내용"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핌은 자신의 이야기가 "어느 누구도 믿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며 "뻔뻔하고 교묘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기도 쉬울 것이라 말한다. 이 서문에서 포는 핌의 입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실제와 동떨어진 소설을 쓸 것인지를 독자에게 암시한다.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에서 포는 '미지의 바다', 그리고 '미지의 야만인'에게서 오는 '익숙하지 않음'의 공포를 그린다. 그의 예고처럼 환상적인 동시에 현실과 멀어 보이는 장면이 묘사되기도 한다. 그것은 끝까지 완전히 해석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든다. 드넓은 바다 위에서의 표류는 사람의 목숨을 사소하게 만든다. 매일 죽음 앞에 서는 핌의 감정은 요동친다. 포는 자극적인 약탈, 살인, 식인 등의 소재로 분명한 잔혹함을 표현하는 한편에는 자연과 미지의 존재에게서 오는, 기묘함을 소설 전반에 깔아둔다.
'야만인'의 섬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핌은 '말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위협을 받는 동시에 "테켈릴리!"라는 해석불가능한 외침에서 오는 그들의 공포를 읽는다. 포는 후기에서 "테켈릴리!"라는 비명 안에는 '흰' 것에 대한 '야만인'들의 두려움이 담겨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흰 것을 보고 소리친 '야만인'들의 섬에는 모두 어두운 것뿐이었다. 유일한 생존자였던 핌의 일행을 제외하면.
완독하고 나니 유수의 연구자들마저 이 소설을 미완성작으로 분류했는지를 알 것 같다. 실제로 에드러 앨런 포가 '미지의 공포'와 은유의 해석을 완성하지 않은 채 소설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독자의 다양한 상상을 유도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야만인'이라고 불린 사람들의 해석되지 않는 행동과 바다 위의 공포는 결이 다르지만 독자의 내면을 건드리기에는 충분하다. 악취미인지 한 번 읽고 이해되지 않는 책을 여러 번이고 읽는 나에게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에드거 앨런 포가 남긴 단 하나의 단편,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즐거웠다. 창비세계문학 발간사에 적힌 최초의 소망처럼 "가보지 못한 길",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열린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포의 공포 속에서 헤엄친 만큼, 그의 소설을 다양하게 찾아 읽어야겠다.
+본 리뷰는 개인 SNS(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후기를 전문 발췌한 것입니다.
리뷰 원문 보기 : https://www.instagram.com/p/CbzpKr4pRKc/?utm_source=ig_web_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