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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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선집의 출현에는 언제나 궁금증과 설렘이 따라온다. 한 사람이 쓴 좋은 글을 추려내는 작업에는 그만한 믿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항아리에서 출간되는 비비언 고닉의 선집 소식을 듣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내 독서 지평의 얕음이었고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다음 든 생각은 '이 사람이 누구인가'하는 것이었다. 작가 소개의 화려한 이력 가운데 그녀를 부르는 '작가들의 작가'라는 호칭이 눈에 띄었다. '작가들의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이 말이 붙은 사람 치고 글을 재미없게 쓰는 이는 없었기에, 비비언 고닉의 선집 첫 번째 『사나운 애착』을 읽어보기로 했다.

굴지의 논픽션 작가들은 한 번쯤 기자였다. 비비언 고닉도 마찬가지다. 좋은 논픽션은 끈질기고 세심한 관찰에서 나오기 때문에 기자를 해봤던 사람들에게 유리한 분야다. 비비언 고닉의 특기는 '일인칭 비평'인데 이것은 '일인칭 소설'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려운 글쓰기 기법이다. (어쩌면 일인칭 소설 쓰기보다 일인칭 비평 쓰기가 더욱 난해하다.) 일인칭은 이야기와 작가의 간격이 매우 짧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에 글이 먹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것이 일인칭 글쓰기다. 하지만 그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마침내 한 편의 글을 써낸다면, 독자는 자신에게 직접 다가오는 그 이야기에 속절없이 몰입하게 된다. 비비언 고닉은 그런 일인칭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는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다. 그녀가 『사나운 애착』에서 던지는 화두는 과거에 '어머니'와 그 주변에 있던 여성들이다.

"우린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고립된 채 살아온 사람들,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해 닮아버린 두 여자다."-72쪽

딸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작가는 위의 문장으로 엄마와 딸의 기묘한 관계를 요약한다. 엄마와 딸에게는 각각 자신의 세상이 있다. 그들은 살아온 환경과 조건, 삶의 영역이 완전히 같지 않다. 그러나 남처럼 다른 두 사람이라 해도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 영향을 준다면 닮기 마련이다. 엄마와 딸은 종종 서로의 유사한 부분을 확인하며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 애착은 때로 사납다. 서로의 차이를 못 견디는 한편으로 끊임없이 유대감을 확인해야 하는 관계. 그것이 비비언 고닉이 말하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는 딸과 '어머니'이다.

"내가 속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여러 가지로 확실한 문제가 있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안전하다."-109~110쪽

엄마와 딸은 공통점과 차이점 이외의 다양한 층위에서 부딪히고 얽힌다. 이 책은 온통 그 둘의 관계를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쉽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것'. 표지마저 두 여자가 한 방향을 바라보는 이 책은 그 시절 어머니와 딸이 함께 지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비언 고닉은 특유의 일인칭 시점과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자신의 '엄마'에 대해 쓴다. 누구라도 몰입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이야기를.

물론 작가와 엄마 이외에 삶의 반경 안에 있던 여러 인물(대부분 여성)이 등장하기도 한다. 비비언 고닉은 '소수자'의 감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여성이었으며, 동시에 기민하게 주변의 일을 알아차리는 사람이었다. 작가 소개를 읽고 그녀의 기자 경력이 논픽션 집필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예상했지만, 사실 비비언 고닉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자의 감각을 타고난 것이었다. 커너 부부, 러빈슨 가족, 네티. 수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주변애 존재했다.

『사나운 애착』은 비비언 고닉 선집의 첫 번째 책으로선 순조로울 정도로 알차다. 사납지만 애정 가득한, 피 튀게 싸우다가도 서로가 없이는 허전한 두 여자와 그 주변을 깊이 관찰하기 원하는 독자에게 주저없이 권하고 싶다. 때로 한 인생에 가장 깊이 관여하는 부모, 특히 '엄마'라는 존재를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선집의 다음 권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쓰는 데에 주저함이 없던 이 작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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