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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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에는 약한 정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최근 문학 번역계에서 주변국으로 불리던 북미, 아프리카, 아시아권 소설의 발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안에서 이미 창작된,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번역, 출간되는 일은 독자로서 뜻깊고 행복한 일이다. 혜움이음출판사의 문학선은 그중에서도 북미 원주민 문학에 집중해 엄선된 작품을 국내 번역 소개하고 있다. 그 중 두 번째 책으로 출간된 스티븐 스레이엄 존스의 장편소설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특히 공포소설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주민'에는 ‘한 지역에 본래 거주하던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땅의 주인이던 사람을 강조하는 단어가 등장했다는 것은 ‘이주민’이 유입되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주민이 원주민의 문화와 생활을 존중했다면 좋았겠지만, 익히 알려진 대로 백인들은 신대륙을 찾는 과정에서 원주민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그들을 몰아내기에 바빴다. 때문에 원주민은 주류였음에도 학살과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를 안게 되었다.

지금도 많은 나라의 원주민은 ‘소수자’로서 문화, 사회적 억압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문학은 더욱 발굴되어야 하고 문화 역시 보존되어야 한다.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의 『엘크 머리를 한 여자』에도 이런 현실이 뒷배경으로 자리잡는다. 굳이 ‘원주민’이라는 주제를 강하게 내비치지 않아도 작가 스스로 소수자로서 경험하고 체험한 차별적 분위기가 이 책의 문장마다 녹아 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건 하나의 죽음이다. 공포소설이라는 분류에 걸맞게 강렬하고 끔찍한 사건이 소설의 도입에 묘사된다. 

“리처드 보스 립스의 사망사건은 ‘인디언 남성, 술집에서 몸싸움 도중 사망’이라는 기사로 보도될 터였다.”-15쪽

여기서 리키(리처드의 별명)는 기묘한 엘크의 환상을 보고 그것이 벌인 잘못을 뒤집어쓴다. 이 단편적인 상황의 피해자는 명백히 리키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독자는 이 책을 읽을수록 리키가 피해자가 아님을, 오히려 가해자임을 섬뜩하게 깨닫는다. 리키는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엘크를 잔혹하게 죽인 후 뱃속의 새끼 엘크까지 죽인 과거가 있다. 소설의 도입에 리키가 본 엘크의 환상은 바로 그가 과거에 죽인 엘크였던 것이다. 이렇게 리키를 시작으로 그의 친구들은 모두 엘크의 환상을 본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대가를 치러야 할까?” 그들은 십 년 이상의 시간을 건너 죗값을 치른다.

작가는 위로는 엘크, 아래로는 사람인 이물을 설정함으로써 본래 엘크의 성별을 그대로 인간에게 옮겨 놓는다. 뱃속의 아기를 무참히 묻어버린 인간 넷에게 엘크가 가하는 복수는 상상 이상이다. 터지고, 잘리고, 맞는 고수위의 폭력이 낭자하지만, 그 안에서 엘크의 행동은 일관적이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하다. 이 소설은 과감한 육체적 폭력과 조여오는 심리적 공포를 동시에 잡았다. 동시에 환상을 등장시키며 현실을 벗어난, 풍부한 이미지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역전한다. 공포, 스릴러 장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후의 복수’ 플롯을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새로운 방식으로 써냈다. 엘크의 보복에는 완전한 잔혹함만 남지는 않는다. 이 소설의 끝은 의외로 안전하다. 인간들의 자식에 손자까지 멸해도 풀리지 않을 엘크의 뒤틀린 복수심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마저 저지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역시 이 소설의 매력이다.

하나의 복수는 얼마나 다양하고 끈질긴 모양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죗값을 치른다’는 말에 담긴 폭력성의 무게를 곱씹게 한다. 때로는 한없이 가볍게 왜곡되는 이 ‘죗값’은 실상 얼마나 무거울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끝날 수 없는 복수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엘크 머리를 한 여자, 그 복수의 망령이 지금도 우리의 곁을 배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장 기괴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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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개인 SNS(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리뷰를 전문 발췌하였습니다.
원문 링크 : https://www.instagram.com/p/CcrwEP8Lq9B/?utm_source=ig_web_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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