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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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과학 서적에 무한 매력을 느껴서 한국의 과학소설이 궁금하여 선택한 배명훈 작가의 청혼. 무려 11년 전에 나온 것인데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여 후딱 데려왔다. 게다가 SF이면서 사랑 이야기라는 책 소개에 SF에서의 로맨스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한몫했다. 표지도 주홍 빛깔이어서 뭔가 풋풋한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전체적인 맥락은 책 소개가 맞았으나 다 읽고 나서는 내가 책을 잘못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다른 메시지로 다가왔다. 정말 내가 제대로 못 읽은 것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답답해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접고 작가의 말을 읽어보고 작가의 이력과 인터뷰 내용까지 찾아보면서 오히려 이 책을 왜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더 안 되었달까. 작가는 서울대 외교학 석사였으며 에세이 쓰는 일과 인터뷰에 굉장히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쪽이었다. 그리고 청혼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순수 문학이 대세였으며 SF 장르 자체를 굉장히 천대(?) 시 하는 풍조였다고 한다. 게다가 작가는 말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읽었다고 말하는데 이 부분에서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의미가 느껴져 그냥 내가 느낀 그대로 서평 작성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우주 전쟁과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계속 읽다가 보면 전쟁을 하는 아군의 집단이 계속 두 개로 나누어져 있어 묘하게 싸움의 대상이 이질적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적군은 외계인. 아군은 지구 출신과 우주 출신. 표면상으로는 적군과 아군이 싸우는 모양새이지만, 실제로는 아군끼리의 전쟁이라는 것을 마지막에는 알 수 있다. 작가는 어떤 집단을 여기에 비유해 놓은 것일까 하는 의문에 여러 집단을 대입해 보았다. 


정부 대 민간인, 여당 대 야당, 고정 관념 대 창의력, 좁은 시야 대 넓은 시야, 핍박하는 거짓된 속박인 대 핍박 당하는 자유인, 권위주의 대 신자유주의, 독재 시대 대 자유 시대, 순수 문학 대 SF 문학. 정치학을 전공했으니 이것을 정치나 시대사조와 연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얼마나 조심스러운 성격을 가졌는지 알게 되면서 자신의 정치관을 소설에 녹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게 되었다.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당시의 주류인 순수 문학과 비주류로서 문단에서 문학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SF 문학만 남게 되었다.


작가의 말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의심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아노미를 극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소설 단행본을 스무 권쯤 출간하고, SF에 관한 에세이를 출간했으며, 소설 속에 세계를 담아내는 법을 강의하고, 내가 터득한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듯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 지점이 실은 거대한 우주 도시를 건설해도 좋을 만큼 탄탄한 중력 균형점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청혼 배명훈 p.157


이 말을 단서로 잡고 책을 다시 보면 이들이 우주에서 왜 아군끼리 싸우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주류인 순수 문학 안에서 무엇인가 존재의 옳음을 밝히려는 SF 장르와의 싸움. 소설 안에서 우주 출신 군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자신들이 옳았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당시 작가도 자신이 선택한 장르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학 장르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변의 비난과 뿌리의 얕음 그리고 소수라는 벽에 부딪친 외로운 싸움을 소설로 풀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게 되었다.


청혼에서 또 하나 굉장히 독특한 부분이 나온다. 바로 주인공과 그녀의 이름부터 시작하여 등장인물 중 아군의 수장 두 명을 제외하고는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은 별명이 반란군이다. 두 수장의 이름에도 의미가 남달랐다. 본명이 아니라 예명으로 불렸다. 리델이라는 지구 태생 수장의 이름의 의미는 유명한 전략 이론가의 이름을 따와서 붙였고, 데 나다라는 우주 태생 대장의 이름은 아무것도 아닌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 이름만으로도 당시 SF 장르가 얼마나 한계로 몰렸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청혼 배명훈 p.154


이 말로 페이지는 끝이 난다. 사랑 이야기로 보자면 너무나도 애틋하지만, 이것을 인정받지 못한 문학 장르를 걷는 미래의 SF 작가들에게 남기는 말이라면 굉장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다. 첫 출간 후 11년이 지난 지금 SF 문학은 크기는 작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영역을 자리 잡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작가는 지난 11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후배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우주 공간만큼 사랑하는 거라고. 그래서 너를 한자리에 매어두고 싶다고. 하지만 그 말은 할 수 없었어. 정말로 너를 매어두는 게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 부분이 애매했지. 그래서 말할 수가 없었어. 그건 버글러의 모순을 해결한다고 전달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영혼에 관한 문제였으니까.


청혼 배명훈 p.37


위와 같은 결론을 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이 부분을 읽는데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작중 주인공과 여자 친구는 작가 자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비난받으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였을 당시 주류인 순수 문학으로 가느냐, 그래도 내가 선택한 SF 문학으로 계속 나아가느냐의 흔들림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물론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매우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의 대사로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쪽은 아닌 것 같다.


점점 과학이 발달하여 직접 우주 정거장이 생기고 얼마 전엔 이곳에서 식물을 기르는 남자의 기사가 나는 지금이지만 SF 장르가 주류가 되었다고 말하기는 이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엔 웹 소설 분야에 만연해 있던 우주 전쟁이 점점 대형 서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며 이 길을 가려는 작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즉,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말이다. 혼돈 속에서 외로이 이 길을 간 선배가 말한다.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주겠다고.


배명훈의 청혼을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꼭 문학 장르에만 국한시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정한 길을 외로이 달리게 되면 누구나 마음의 흔들림을 겪는다. 내가 가는 길이 정말 옳은 것일까? 남들이 다 가는 길에는 내가 모르는 당연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다가 앞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싶거나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이 책을 마주한다면 그 길을 계속 달릴 작은 별빛을 보게 될 것이다.



​#청혼 #배명훈 #북하우스 #SF소설 #개정판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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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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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이 시작하면서 필사에 대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꾸준하게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깨달음을 주거나 고전일 때가 태반이다. 즉, 신선한 표현보다는 우아한 표현 위주로 필사를 했다는 말이다. 필사를 진행한 책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뭔가 좀 신선한 표현들을 공책에 새기고 싶다는 갈망이 샘솟았다. 그러던 중 문예 창작과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필사 책이라며 추천을 받았다. 필사 전 왜 문예 창작과 학생들이 선택을 했는지 궁금하여 읽어보았다.



​칼자국은 김애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사람만 좋고 무책임한 아버지와 성질은 급하고 무심하며 장난기 많은 어머니. 당연하게 생존 문제는 어머니 몫으로 돌아왔고, 국졸인 어머니이지만 음식 솜씨가 좋았기에 칼국수 가게를 연다. 가게 이름이 만나당이었다. 제과점 이름 같은 칼국수 가게여서 의아함이 스쳤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나니 가난의 서글픔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이 시렸다. 작가가 어린이 시절의 엄마부터 마지막 장례식 날 엄마까지의 이야기가 80페이지에 쓰여 있다. 두세 페이지마다 따뜻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어 책을 읽는 내도록 그 따스함이 배가 되었다. 



​처음 읽을 때 궁금했던 것도 완벽히 해소가 되었다. 책의 온도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끝까지 유지가 된다. 담담하지만 슬픔보다는 따스함을 얘기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보여 독자가 마음대로 슬픔에 빠지게 만들지 않게 하는 부분도 꽤 인상적이었다. 또한 표현 방법이 굉장히 독특한 편이었다. 그게 이상하다는 느낌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달까. 어느 한곳만 뚝 잘라서 필사하기엔 단어 하나하나가 아까울 정도였다. 다행히 짧아서 통필사로 진행해도 큰 부담이 없을 것 같아 전체를 필사해 볼 생각이다. 



​혹시 글쓰기를 할 때 참신한 표현이나 문체가 궁금하여 필사를 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김애란 작가의 칼자국을 적극적으로 추천드린다. 게다가 이 책은 청소년 문학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녀와 같이 읽기에도 좋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심히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좋았던 문장을 공유하며 오늘의 서평을 마치려고 한다.



"오른손이 칼질을 하는 동안 왼손 손가락 두 개는 칼 박자에 맞춰 아장아장 뒷걸음쳤다."


칼자국 김애란 p.16



​"칼은 도마 위를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어머니의 손은 빨랐고 칼 박자는 경쾌했다."


칼자국 김애란 p.42



​"저 삼촌과 저 사촌과 이 육촌은 아무 데서나 출몰했다. 그들의 얼굴은 곧 내 얼굴이기도 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내 이마를 만나고, 신발장 앞에서 내 콧잔등을 만나고, 주차장에서 내 쌍꺼풀을 만났다."


칼자국 김애란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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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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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한 참신한 표현들이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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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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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선한 미담보다는 악한 분쟁이나 범죄 소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세상의 악이 사라지고 선만 존재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완벽하게 뒤집어준다는 책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하는 마음에 후딱 데려왔다.



​이탈리아 문학이라고 하면 신곡, 장미의 이름, 피노키오 정도가 떠오른다. 쉽게 말해 굵직굵직한 작품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깊게 접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정도라면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반쪼가리 자작은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구성된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첫 작품이다. 다시 말해 두 작품을 더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숙제를 던져준 작가이다. 


주인공 메다르도 자작은 하인인 쿠르치오와 함께 이웃 군주를 즐겁게 해 줄 목적으로 투르크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전쟁을 해 본적도 없는 주인공이 포탄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가다가 결국 정확하게 몸이 세로로 절반이 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실에선 당연히 생존이 어려웠겠지만, 동화적인 요소를 즐겨 사용하는 작가 덕분에 몸은 찢어진 채 각자의 몸으로 생존을 하게 된다. 문제는 찢어진 한쪽은 선만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한 쪽은 악만 가진 인간이 된다.


먼저 악만 가진 인간이 마을로 돌아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악행을 매일 저지르고 다닌다. 자신을 가장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조차 무조건 악을 베푼다. 뭐 처음에는 반쪽 몸만 남은 것에 대한 반항인가 할 정도로 사물을 반으로 자르면서 돌아다니는데 이건 그냥 귀여운 애교 수준이었다. 이런 악한 반쪽의 모습에서도 조금 울컥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동이 틀 무렵이었다. 그때 저수지 둑에서 검은 망토에 감싸인 메다르도가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물 위에 반사되어 나타났다. 물 위에는 하얀색, 노란색 그리고 흙색 버섯들이 떠 있었다. 바로 그가 따 온 반쪽짜리 버섯들이었다. 그것들은 투명한 물 위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물 위에 떠 있는 버섯들은 완전해 보였고 자작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p.29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쯤 남작의 나머지 반이 마을로 돌아온다. 이쪽은 전자와 달리 완벽한 선만 존재하는 인간이다. 처음에 선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왜 작가는 선한 애를 굳이 등장시킨 것이지? 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 달리 무조건 선하기만 한 것은 악만 존재하는 것과 동급으로 문제가 많았다. 


하나만 소개하자면 종교의 박해를 피해 이 마을로 도망 온 위그노 교도 가족이 있다. 이들은 책 안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인간들로 나온다. 결국 다른 곳에는 흉작으로 인하여 기근이 들었지만 이들은 넉넉한 곡식을 창고에 쌓아 놓고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 이를 본 선한 반쪽은 어려울 때 이렇게 비싸게 받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매사가 이런 식이면 나중엔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p.119


결국 마을 사람들은 악한 반쪽에도, 선한 반쪽에도 불만이 최고치를 찍게 된다.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어떤 행사에서 이들 둘은 서로 맞부딪쳐 서로를 죽이겠다고 싸우다 죽을 위기에 놓인다. 마을의 의사는 이들 둘을 아주 멋지게 다시 붙여 온전한 메다르도 자작으로 만든다. 선과 악이 적절히 섞인 온전한 인간이 되었으니 이제 마을 통치를 제대로 하여 평화를 되찾으리라고 사람들은 기대를 하지만 이들의 바람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며 책은 결말을 맺는다. 


"인간이 반쪽이 된다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거든. 그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어."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p.88



책에 꽤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반쪼가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삶은 온전함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어느 한쪽이 결핍된 생활을 한다. 의사이지만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하지 않는 트렐로니, 자신이 만드는 물품이 악한 일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 물품을 만드는 장인 피에트로키오도, 유흥과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문둥이들, 자신의 종교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종교적 윤리를 기계적으로 신봉하는 위그노들까지. 아마 우리도 이들 중 하나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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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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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불완전한 인간. 어느 쪽이든 한 곳으로 치우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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