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신이로소이다 - 한때 괴물이라 불렸던 존재들의 이야기
김용덕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6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괴물과 신.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 둘 사이에 경계가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도깨비를 그리다가 용으로 이어지고, 야차를 상상하다 보면 어느덧 부처 곁에 있는 수호신으로 이어졌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아오면서 나를 오래 붙잡았던 주제는 늘 경계에 선 존재들, 이름이 같더라도 시대와 해석에 따라 변해버리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신이로소이다』는 제목부터 단정하면서도 도발적이다.
누군가가 신이라고 선언하는 이 책의 화자는 인간이 아니다.
한때 괴물이라 불렸던 존재들, 벽화와 탑, 문양과 전설 속에서 기이한 형상으로 살았던 ‘낯선 존재’들 스스로가 자기 목소리를 되찾은 이야기다.
김용덕 선생은 오래도록 미술사를 연구한 분이지만, 이 책에서는 단지 박물관 해설처럼 정보만 전하진 않는다.
그는 도판과 함께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질문들을 던진다.
왜 야차는 이빨을 드러내는가? 왜 아수라는 전쟁에서 도리어 자비의 상징이 되었는가? 왜 가루다는 날아오르다가 부처의 어깨에 앉았는가?
나는 한 장 한 장 넘기며, 마치 오래된 친구의 옛 얼굴을 다시 보는 듯한 감정에 젖었다.
한때 사악하다 불린 야차는, 사실 그 뿌리에서는 풍요의 신이었고,
우리가 흔히 ‘지옥의 재판관’쯤으로 오해하는 염라대왕 역시, 억울한 혼을 위로하던 저승의 중재자였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미술 작품을 보여주고 설명해서가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나는 ‘형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늘 집착해왔다.
그림 속 얼굴, 몸짓, 장식 하나에도 시대의 신념, 인간의 공포, 권력의 구조, 혹은 구원을 향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형상의 진화’와 ‘이름의 재해석’을 통해, 과거의 괴물들이 어떻게 신이 되어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내가 특히 깊이 매료된 것은 ‘수성노인’과 ‘복희·여와’에 대한 장이다.
어릴 적 민화 속의 흰 수염 노인을 그저 ‘장수의 상징’쯤으로 알고 있었던 내가,
그가 사실 북극성을 형상화한 우주의 중심이자 **‘운명을 조율하는 별의 신’**이라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내 그림 안에 그를 다시 불러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이 책은 단순히 옛 신을 정리한 미술 도상 해설서가 아니다.
『나는 신이로소이다』는 시대의 오해를 견디고, 사람들의 시선을 버티며, 끝내 신이 되어버린 존재들에 대한 복권이자 찬가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여전히 불편해하고 밀어내는 ‘다름’에 대한 역사도 함께 새겨져 있다.
한때 괴물이라 불렸던 그들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이기도 하다.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해받지 못한 욕망을 품었다는 이유로,
가끔은 웃기고, 가끔은 울었고,
결국에는 누구도 몰랐던 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또다시 창작의 의지를 불태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