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관리들과 고고학자들은 캄보디아 사원 유적의 예술적 중요성에 대해 처음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뒤에는 그 건축물들을 세상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래의 판화 속에서 프랑스 관리들이 1873년 꼼퐁 톰 주의 앙코르시대 유적지인 꼼퐁 스바이에 있는 쁘레아 칸 사원 주위의 밀림을 제거하는 작업을 감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식민지배의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매우 멋진 문구들이 사용되었을지라도, 식민통치가 식민지화된 나라나 그 주민의 이해관계에서 시작되었거나 유지되었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을 반박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 P255
그러한 점은 특히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을 종식시킨 1954년 5월의 디엔비엔푸 전투와 관련해서도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전투에서 베트민이 승리함으로써 제네바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그에 따라 북부 베트남은 공산주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남부 베트남의 지위는 최종적으로 1975년에 전체 베트남이 하노이 정부의 통제하에 들어갈 때까지 분쟁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 P231
동남아는 과거 백년 이내에 자급자족적 농업지역으로부터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유럽과 미국의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세계경제의 중요한 지역으로 발돋움했다. 동남아의 수출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가장 고립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한 경제적 및 사회적 변화가 발생했다. - P136
식민세력은 이 지역 역사에 존재하지 않던 국경을 만들어내었는데 그것이 이기적인 것이었던 이타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던 간에 그들이 한 행동들은 뒷날 등장하는 동남아의 새로운 국가형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사건의 전개는 세계의 어느 한 지역에만 한정되어 일어났던 것은 물론 아니다. 새로운 국경의 확정과 새로운 국가의 수립은 식민지배를 받았던 동남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일어난 현상이었다. -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