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의 세계관이 답한다. 기독교인은 결국 기독교적 모범으로 자신의 삶을 수렴하고, 불교인은 불교적 모범으로 수렴하며, 과학주의자는 유물론적 결론에, 자본주의자는 경제적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고대인의 사상과 종교를 들춰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수많은 낯선 대륙에 상륙하기 위해서다. 다른 세계관에 발을 디딤으로써 나의 작은 세계관의 영토를 가볍게 넘어서기 위해서다. 수많은 세계관의 대륙을 탐험하고 돌아온 사람만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자신의 세계관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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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국 사상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인류 보편의 거대 사상이었다. 인도의 범아일여 사상처럼 우주와 자아의 관계를 밝히고 자아의 내면에서 우주의 본질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는 노자의 가르침에서도, 주돈이의 사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자는 도와 덕의 본질을 밝히고 덕 안에서 도를 발견하고자 했다. 주돈이는 무극으로부터 태극, 음양, 오행, 인간으로 이어지는 발생 원리를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존재 방식이 우주의 원리를 따르고 있음을 밝히고자 했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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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밖에 펼쳐진 광활한 우주의 실체와, 네 안에 펼쳐진 자아의 본질은 궁극으로 하나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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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계라고 할 때 물질적인 세계를 상상하지만 그것은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국가와 사회, 문명과 문화 역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이고, 인류와 타인이라는 사람들도 우리를 둘러싼 세계이며, 내가 던져진 나의 신체,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욕망과 집착도 내가 던져진 세계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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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우리 우주가 다른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인간 중심 원리는 다중 우주론과 결합하며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다시 고민하게 했다. 의식적 존재에게 결코 발견될 수 없고 내부에 의식적 존재를 잉태할 수 없는 우주라면 그 우주가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어떤 우주가 우주로서 존재하려면 그 안에 의식적 존재를 포함해야만 한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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