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판에이크가 1434년에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은 최초의 시민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중세 시대 그림의 주인공은 당연히 기독교 성인이나 귀족이었다. 그러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을 다룬 그림과 조반니 아르놀피니의 다른 초상화가 더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인 계층이 성장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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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사람들은 모두 토지 소유자이며, 그중에는 소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이 토지와 소를 가져야 했기에 그 임자를 죽인 것이다. 빈곤과 인구 과잉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동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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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에 적합한 토양, 목축을 하기에 좋은 초목, 풍부한 수자원, 넉넉한 사냥감 등 한 사회의 경제가 의존하는 자원이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어떤 사회는 남용을 절제하는 방식을 꾸준히 발전시킨 반면에 어떤 사회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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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사람들은 그린란드에서 유럽식의 획일적 사회를 건설해낸 까닭에, 유럽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450년을 꿋꿋하게 생존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사회를 성급하게 실패한 사회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북아메리카에서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그들이 그린란드에서 살아간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족장들은 모든 추종자를 잃고 말았다. 그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권리는 최후에 굶어죽는 특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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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럽인이다"라는 집착은 그린란드의 기후에서도 고집스레 소를 키웠고, 건초를 수확해야 할 여름에 사람들을 노르드르세타 사냥터로 보냈으며, 이누이트족의 유용한 처세법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결국 굶어 죽는 비극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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