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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198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대구 지하철 방화를 보고 희생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뇌어 보았다. 아무 잘못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정말이지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이들을 대신해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게 하려고 희생이 된 것 같아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끝맺지 못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아직 가족의 유품도 찾지 못해, 유가족들은 집으로 가지 못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차가운 바닥에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선잠을 청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희생이었더라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게 되어 앞으로 계속 충격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 희생이란 단어를 붙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70년대 평화시장 노장자가 여기 있다. 당시 노동자들의 인간적 기본권을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타버린 故 전태일 이다.
전태일이 요구하고 원한 것은 별게(지금의 나로서는 별게라고 표현하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별게 아니었음을 안다) 아니었다. 하루 15시간의 고된 작업으로 몸은 다 망가져 버렸고, 집에도 못가 고생하는 10대 어린 직공들을 위해 인간다운 기본권만은 지켜달라는 요구사항이었다.
당시 평화시장의 피복공장에서 병을 어두운 백열등 아래 먼지를 다 마셔가며 하루 15시간 이상 일을 해온 이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 의류업계가 이만큼 발전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으련만, 누구도 그들에게 수고했다는 형식적인 인사조차 없었던 것이다.
전태일은 혼자 법전을 들고 노동법을 읽어내려가며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고 한다. 그 어느 의식있는 대학생보다도 생각이 옳바르고, 깨어있었던 그가 단지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갖고 있던 작은 꿈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언제부터인가 일기를 쓰고, 여러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 자문을 구해보기도 하고, 잘못된 점을 시정해주길 바랬지만 노동자 전태일에게 정작 따뜻한 응답을 해줘야 할 사람들은 냉대하기만 했고, 그러했기에 그는 최후의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불사른 것이다.
불에 자신의 몸이 타면서도 그는 삶을 구걸하지 않고, 불보다 더 타오르는 눈빛으로 외쳐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시간을 단축하라', '일요일은 쉬게 해달라' 그렇게 전태일의 유언 이후 당국으로 부터 몇가지 개선책이라고 조치가 취해지긴 했지만 정말이지 이렇다 하게 변한 게 없었다.
1970년 11월 13일 그가 죽은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많이 개선되고 노동자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과연 누구를 위한 근로기준법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