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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중독 사회 - 첨단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
켄타로 토야마 지음, 전성민 옮김 / 유아이북스 / 2016년 5월
평점 :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의 쇼케이스를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의 기술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 새삼 깜짝 놀라게 된다. 2016 올해의 키워드만 해도 3D 프린팅, 로봇, 스마트카, 사물인터넷, HDR 등 각 분야에서 저마다의 첨단 기술을 뽐내기 바쁘다. 그 중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은 여러 분야와 접목되어 사람이 없어도, 굳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세상을 구축하며 관심이 뜨겁다. 이렇듯 첨단 기술은 새로운 시대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과 함께 IT 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또한 창조경제를 활성화 하겠다는 명목으로 정보기술 분야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IT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얼마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기술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접했다. 최근 미세먼지는 엄청난 오염도 수치를 기록하며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미세먼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실시하며 새로운 성장기회로 인식해 관련 사업을 육성해야 하다는 것이 그의 뜻이다. 산업 사회에서 여러 기술을 개발한답시고 불거진 환경문제를 아이러니하게도 기술로 완화시킨다? 그 결과가 궁금해지는 발언이었다.
나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기술과 함께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 기술 만능주의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기술혁신, 이 상태로 그냥 받아들여도 안전한 것일까? 우리는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나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기계의 성과에 밀려 인간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지고 결국엔 실업자의 증가를 불러오는 사태를 꼽을 수 있다. 또한 기술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 문제와 이에 따른 또 다른 양극화 문제가 떠오를 수도 있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기술만능주의의 디스토피아를 우려하고 있다.
이 책 또한 '첨단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기술중독에 빠진 현시대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책에서는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기술이상주의, 기술회의주의, 맥락주의, 사회결정주의와 같이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컴퓨터 공학자의 길을 걷는 저자 또한 처음에는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의 기술이상주의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인도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쌓은 경험이 그에게 다른 시각을 가져다 주었다.
기술적으로 가장 발단한 나라임에도 미국의 빈곤율은 줄어들지 않았고, 더욱이 빈곤의 끝을 달리고 있는 인도에서 기술이란 무용지물로 그 무엇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기술이 빈곤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기대는 산산히 부서져버린 셈이다. 이렇게 인도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얻은 교훈과 함께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증폭의 원리'와 '패키지 개입'을 통해 풍요로운 기술혁신 시대에도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먼저 증폭의 원리란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 곳 혹은 대상에 따라 기술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에서는 효율성이 배가 되지만 반대로 이를 갖추지 못한 곳에서는 비효율성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원리이다. 다시 말해 기술은 성향 그 자체를 바꾸는 역할은 하지 못하며 단지 그 성향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 혁명을 일으키고자 가난한 지역 학교에 컴퓨터나 노트북을 나눠주었다. 그러나 낙후한 지역일수록 제대로 된 관리와 시스템 구축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학습을 통한 생산적 욕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락을 통해 즐기고자 하는 자연적인 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이를 게임하는데만 이용하게 되었고,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기술관련 수업 계획서 작성, 사용 매뉴얼 숙지 등 업무만 증가시킬 뿐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다음으로 패키지 개입은 사회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기술, 사상, 정책 등을 하나로 묶어 적용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대표적인 예로 소액대출 서비스를 언급했다. 빈곤 완화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간 아이디어였지만 실행 주체와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소액 대출 제도의 창시자인 방글라데시의 마함무드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을 세우고 이를 통해 소비와 사회의 선순환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반면 멕시코의 은행은 성장과 수익을 우선시하면서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실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 삶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디지털 기술임에도 깊게 뿌리내린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기술이 가져다 주는 혜택은 실제 내 경험과 주변의 발전으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지만 이면의 사각지대에서 보여지는 기술의 모습을 바로보기는 쉽지 않은데 그런 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고 유익한 책이었다.
결론적으로 그의 질문은 수사적 질문이 아니었던가. 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무작정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책이다. 혁신적인 변화를 위한 기술 발달이 아닌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올바른 의도와 통제가 뒷받침 된 기술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 점차 인간을 뛰어넘는 기술들이 만들어지고 있느데 어쩌면 내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런 발전들이 반갑기보단 오히려 버겁고 겁이난다. 첨단 기술 개발이 끊이지 않고, 기술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기술만능주의 시대에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결코 장밋빛 미래만을 선사하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