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 올리브 (사인인쇄본) ㅣ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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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의 성향인 두 사람의 영혼을 찾아 떠나는 여행, 『태양 아래 올리브』. 김초엽 작가 특유의 몽글몽글한 감성이 빛나는 파스텔톤 SF소설이다. 스포 금지 조약으로 입이 간질간질하지만, 이 로드트립의 스릴과 감동을 다음 독자분들께 온전히 전해드리기 위해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아껴두기로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며 끊없이 펼쳐진다.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무엇을 통해 증명할 수 있을까.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과연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다양한 형태의 존재들이 생겨나고 있는 지금과, 앞으로의 미래 속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간‘의 정의는 과연 그대로 통용될 수 있을까. 섣불리 답을 단정할 수 없는 이러한 질문들이 줄을 이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마도 이 묵직한 고민은 책을 덮은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 본다. 


과학과 신앙, 철학, 그리고 믿음이라는 다양한 주제들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 의미를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태양 아래 올리브』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 그들의 국경을 넘나드는 여정이 시작될 때, 문득 이 길 위에 어울리는 음악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컨트리 음악이다. 『태양 아래 올리브』를 펼치며 그들과 함께 달릴 드라이브 음악으로 컨트리 음악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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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목소리는 나직하게 이레를 다독였다.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다고.
세상은 너무 넓고 한 사람의 마음도 세상만큼 넓어서, 작은 인간의 영혼은 그 안에서조차 길을 잃는 것이 당연하다고. - P235

세상에 무언가 환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절대적으로 환하고 밝은 것이요.
그리고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의미 없는 모든 것을 견딜 수가 없어요. - P235

"있잖아. 가끔은 문제가 너무 크고 압도적이어서, 거기 눌려서 숨을 못 쉴 때가 있어. 그러면 나는 작은 것부터 보려고 해. 잘게 쪼갠 조각 같은 거. 더 단순한 질문. 큰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작은 문제를 푸는 거야. 그러면 그게 어디로 가야 할지 말해주기도 하니까•••..."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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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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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아직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11월 18일, 바로 그 날에. 그녀는 1년이 지나면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슬프게도 그녀의 11월 18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끊임없이 나아갔다. 비록 시간은 11월 18일에 멈춰져 있지만, 그녀는 멈춰있지 않겠다는 듯이 나아갔다.



그녀에겐 멈춰진 ‘하루’가 아닌 움직이는 ‘한 해’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간에 갇혀 잃어버린 계절을 직접 찾아 나선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12월을, 봄날의 부활절이 있는 4월을, 온화한 햇살의 해변이 있는 8월을, 그리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성당에서의 9월을. 그렇게 그녀는 계절을 찾아 장소를 이동하며 비어버린 시간의 부피를 메우고, 한 해를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믿는다. 스스로 만들어낸 계절을 지나 다시 11월에 다다르면 영원히 멈춘 것 같았던 삶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계절을 찾아 유럽 전역을 기차로 누비며 스스로 시간을 만들어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어떤 한 가지 질문을 던져주었다. 나는 그녀와 달리 흘러가는 시간 속을, 알아서 찾아오는 계절의 자연스러운 변화 안을 유영하듯 편안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왜 이 소중한 시간들을 그저 마구 흘려보내는 걸까. 무언가, 그리고 곁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가 당연할 때는 왜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가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계절과 한 해를 찾아 기차에 올라탔듯, 나도 무심코 지나쳐버린 당연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나의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기를 다짐해 본다. 그렇게 쌓인 나의 온전한 ‘오늘’들이, 내 인생의 아름다운 ‘부피’로 차곡차곡 채워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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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하루하루를 모아왔다. 365개의 11월의 날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같은 가을 날들을 한데 쌓아 올린다고 해서 그것이 한 해가 될 수는 없는데. 그런 해의 끝자락을 서성이며 도약을 준비하는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 P5

내 하루의 밑바닥에서 흐르고 있는 것은 더 진실한 한 해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11월 18일 옆을 따라 나란히 흐르는 한 해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고,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구조물.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조각들로 맞추어가는 퍼즐. - P123

나는 계절의 수첩에 적어둔 겨울과 봄과 여름을 읽는다. 나는 9울을 적으며 생각한다. 하얀 겨울의 거짓말들과 모든 색채, 봄의 초록빛 거짓말들, 밤의 짙은 푸른색을 띤 여름의 거짓말들, 8월의 주황빛 아침 거짓말들, 갈색과 붉은색과 회색의 모든 것. 그러나 이제 나의 거짓말들은 점점 더 옅어진다. 그것들은 연회색과 흰색, 거의 사라질 듯 희미한 색이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투명해진다. 나는 언제나 11월의 기척을 느낄 수 있지만, 계절의 수첩에는 9월이라고 적는다. - P190

그들이 나를 두고 달아난 걸까?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그림자들 사이에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얼른 그 생각을 내려놓는다. 멈춘 것은 시간일 뿐이다. 나는 안뜰의 햇살 속에 앉아 있다.곧 해는 교회 종탑 뒤로 옮겨 가고, 햇빛은 사라지며, 이곳은 서늘해진다. 그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간다. - P232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우리가 사물들에 무엇을 부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걸까? 행운의 동전은 길에서 주워 올려지고, 반지는 손가락에 끼워지며, 유물함은 조심스레 옮겨진다. 우리는 그것들에 의미를 채워 넣는다. 생각의 어딘가에서 길어 올린 어떤 보석들을 그 위에 덧씌운다. 그러면 사물들은 그 자리에 있다. 의미를 지닌 채로. 그리고 우리 역시 그 자리에 있다. 그 사물둘의 의미에 비추어진 채로. - P238

나는 잊히고 사라질까 봐 두렵다. 나를 기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내게로 되돌아 온 것은 잔여물뿐이다. 비어 있는 요거트 그릇과 시든 샐러드가 담겨 있는 용기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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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ㅣ 그늘 중편선 5
이서도 지음 / 그늘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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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살고 있던 이 행성에 다른 생명체가 나타났다. 멀리 떨어진 한 행성의 수명이 다하여 소멸하고, 그 행성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으로 이주해 온 것이다. 정보가 없었던 우리는 그들은 ‘저니’라 불렀다. 그러나 다른 종족의 출현에도 공식적인 발표도, 이들을 받아들일 정책 마련도 없었다. 마치 존재 자체를 거부하듯, 그들은 “무관심 속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남거나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다“.(p.17)



한편, 식품 회사에서 독성 시험에 쓰일 실험동물들을 입고 및 관리하는 일을 하는 ‘나’는 어느 날 사라진 선배를 항상 떠올린다. 선배는 어려서부터 최선의 판단을 위한 감정 배제 교육을 받으며 자란 우리들과 달리 감정적이었다. 선배와 함께 일하던 시절, 선배에게 실험동물을 폐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렇게 "선배는 인간 네 마리를 죽여야 했다."(p.34) 




💡

“더 이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p. 15) 



소설을 읽으며 너무나 당연하게 '인간'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생태계의 중심일 거라 지레짐작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물론 인간인 내가 인간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오만한 사고방식이 소설 속 모습처럼 결국 지구를 멸망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인간은, 그저 가장 뒤늦게 등장한 하나의 종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렇기에 소설 속 인간의 위치를 확인한 순간, 나의 섣부른 판단이 더욱 부끄럽게 다가왔다.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이성적 판단과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소설 속 행성의 사람들과, 감정을 중심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인간의 모습은 겉보기엔 매우 상반되어 보인다. 어떻게 감정을 통제하고 이성만으로 사회와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문득, 이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모습 모두가 실은 우리 인간 내면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냉정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위해 감정적이고 이타적으로 변하기도 하는 존재다. 그저 처한 상황과 대상에 따라 내면의 다른 얼굴을 꺼내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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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 결정에 ‘나’ 이외에 대한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감정이 끼어들면 최대의 이익을 만들기 위한 판단 과정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 P21

실수는 오로지 감정이 개입했을 때 발생한다. 우리는 실수할 때마다 스스로 들여다보라는 말을 듣는다. 네가 한 판단을 거꾸로 되짚어보았을 때, 개입한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내라고 했다. 전부 중요하지도 않은, 부수적인 요소였고, 결국 최고의 선택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 P21

손아귀에는 죽음이 남아 있다. 여리게 전해지던 떨림은 잦아들다 몇 초 뒤 순간의 전율처럼 강한 발버둥과 함께 지워진다. 숨이 멎은 몸통에서 손을 떼보아도 온기와 작은 진동은 오랫동안 머무른다. 핀이 살아 있었음을 알리는 것처럼. - P31

마음 어딘가에서 무언가 자라나는 것이 느껴졌다. 질투. 그건 질투였다. 나의 모난 마음의 형태는 질투라는 감정과 닮아있었다. 선배의 감정을 가까이서 바라본 나는 어쩌면 그를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모난 형태 위로 순간 부끄러운 감정이 옅게 스쳐 지나갔다.
- P61

보고, 듣고, 느낀다. 일차원적인 감각의 영역은 우리도, 인간도 가지고 있다. 다만, 인간은 확장한다. 단순히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개념이 추가된다. 그들의 감각은 확장되어 ‘타인‘에게 보여 주고, ‘타인‘에게 들려주고, ‘타인‘이 느끼게 한다. - P98

요새는 누군가의 말에 이해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나라는 사람이 내 옆의 사람을, 조금 떨어진 사람을, 다른 국가의 사람을, 또 머나먼 누군가를……. 이해라는 단어로 타인의 생각, 삶을 내 멋대로 정의 내리는 건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
그래도.
​
그런 생각을 한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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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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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언 고닉 작가의 비평 에세이, 『연애 시대의 종말』은 20세기의 다양한 문학 작품 속 ’사랑‘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탐구한다. 옛 동화 속 엔딩처럼 “그렇게 그들은 결혼을 하고,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사랑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고 말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 속 공주님들의 모습은 현대 문학 속에서 힘을 잃었고, 작가는 이제 ‘사랑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문학 작품 속 ‘망한 사랑‘들을 통해 ’사랑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이래도 사랑만으로 삶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사랑은 그릇된 촉매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축소해버린다.“(p.190) 이 문장을 만나고 망치로 머리를 쾅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사랑이 전부다’라는 생각을 하고 지냈다. 기본적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물론 책을 읽고 난 지금도 그것이 틀렸다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곪아버린 상처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사랑’이라는 너무나도 고귀한 그 단어 뒤에 숨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 지난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감정 소모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에,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얼버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작가는 사랑의 감정 그 자체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자신을 구원해주리라고 생각”하는, 즉 사랑이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의 문제까지 전부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소설 속 인물들의 어리석음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사랑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자아를 찾아가는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랑이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삶의 문제에 있어 몇 가지 정도는 사랑으로 덮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얼버무려버린 문제들은 하나둘씩 눈덩이처럼 불어나 언젠간 나를 형체도 없이 짓눌러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더 이상 사랑이라는 말랑말랑한 방패 뒤에 숨지 않기로 한다.




+ 책 속에 나오는 작품 중 몇 가지라도 미리 읽어봤다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내가 이렇게나 고전문학과 거리가 멀었다니. 하지만 내가 품고 있던 견고한 생각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고, 사랑이라는 환상에 가려졌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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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자유는 정신의 작동이나 감각의 만족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자유는 자기 이해를 끈질기게 실천함으로써 얻어진다. - P24

살지 못한 삶은 고분고분한 짐승이 아니다. 살지 못한 삶은 거대한 분노에 휩싸인 작은 짐승처럼 도사린 채 목숨을 겨우 이어갈 만큼만 허락한다. 때로는 그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암살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 P52

사랑은 음식이나 공기처럼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이제는 사랑이 삶을 조직하는 원리가 될 수 없다는 게 분명하다. 오늘날의 낭만적 사랑은 감정에 푹 빠졌다가 마법처럼 달라진 존재로 돌아오길 바라는 갈망과 비슷한데, 이제는 자아를 만들려면 의식을 신중히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진실임을 많은 사람이 안다. - P198

오늘날 소설의 중심에 낭만적 사랑을 놓고 인물들이 사랑을 추구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에 도달한다고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왜 이러한지, 그런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사랑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향수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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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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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 타라는 121번째 11월 18일에 깨어난다. 같은 집의 다른 공간에서 남편 ‘토마스’는 타라가 없는 11월 18일의 하루를 살아간다. 그녀가 집에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한다. 


첫 번째 11월 18일은 평범한 하루였다. 토마스와 타라는 고서 판매 사업을 하는 부부다. 타라는 고서 경매를 위해 11월 17일 보르도로 향한다. 경매에 참석하고, 고서 전시장에서 책을 구매한 뒤 파리로 향한다. 18일엔 여러 고서점을 둘러보고 오후엔 오랜 친구를 만나 친구의 연인과 함께 그들의 가게에서 저녁을 먹는다. 


다음 날 잠에서 깬 타라는 아침 식사를 하며 어제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아챈다. 혼란스러워진 그녀는 신문, 영수증, 달력을 모두 확인하고, 토마스에 전화해 날짜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녀는 어제, 11월 18일의 일들을 다시 따라가보며 단순한 착오였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하지만 다음 날, 타라는 반복되는 하루가 착각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토마스에게 전화하지만, 역시 그는 18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통화 이후 그녀는 집으로 향한다. 토마스는 잠들기 전 “시간은 결국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그 고유한 흐름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라고”(p.60) 타라에게 말한다. 그러나 다음 날 깨어난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전화 통화도, 도착했던 순간도, 젖은 우산이나 외투도 그의 기억에서 찾아낼 수 없었다”.(p.64)


그렇게 타라는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모든 11월 18일을 기억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모두 잊어버”(p.103)리는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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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 발레의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은 7부작 SF소설 연작이다. 소설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다. 같은 날짜가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미세하고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그녀의 하루를 눈에 보이듯 감각적이고 자세히 묘사한다. 또한 그녀가 시간과 숫자, 문장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던지는 생각들을 다채롭고 문학적인 비유 표현을 통해 펼쳐 보인다. 똑같은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칫 지루하게 느꺼질 수 있는 설정을 작가 특유의 정교하고 정밀한 문체로 흥미롭게 살려냈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를 기억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어제는 그녀의 어제와 전혀 다르다. 그녀는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과연 시간 속에 갇힌 것은 누구일까. 그녀는 자신을 ‘시간’이라는 인위적인 테두리 안에, 인간이 정의해 둔 ‘날짜’ 라는 한계 속에 가두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속박에서 마침내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된 것일까. 책은 ‘시간’과 ‘존재’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깊고 다채로운 사유를 해보게 만든다. 


11월 18일이라는 거대한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다시 파리로 향한 타라는, 과연 간절히 바라던 11월 19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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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어온 세계의 지속성은 불안한 토대 위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아무런 보장도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확실하다고 여겨온 모든 것의 이면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예외, 갑작스러운 균열, 상상할 수 없는 질서의 파열이 도사리고 있다. - P48

나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밤이면 시간이 꺼져버리는 것일까. 잠에 들면 과거와 미래가 사라졌다가, 깨어나는 순간 비로소 다시 생겨나는 것일까. 말들이 지워지면 사물들은 윤곽만 남는 것일까. 어쩌면 언어가 스스로 닫혀, 말 없이 눈을 뜨게 되고, 가장 가까운 말들만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침, 지금, 여기, 깨어남, 빛 같은 말들. 문장 없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가장 단순한 문장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천천히 펼쳐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침이다. 여기 하루가 있다. 나는 깨어났다. - P77

우리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간 속에서 살았다. 그뿐이었다. 그것은 제자리를 넘어서 범람해버린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이었고, 강물이 만나 하나로 흐르는 자리였다. 그것은 시간의 메소포타미아였다. 마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가 단지 하나의 강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두 이름에 불과한 것처럼. - P82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 것은 상실이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 P149

나는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오픈 티켓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나는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는 수많은 사물과 사건으로 가득한 우주 속 그 거리를 걸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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