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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평점 :

주인공 ‘나’, 타라는 121번째 11월 18일에 깨어난다. 같은 집의 다른 공간에서 남편 ‘토마스’는 타라가 없는 11월 18일의 하루를 살아간다. 그녀가 집에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한다.
첫 번째 11월 18일은 평범한 하루였다. 토마스와 타라는 고서 판매 사업을 하는 부부다. 타라는 고서 경매를 위해 11월 17일 보르도로 향한다. 경매에 참석하고, 고서 전시장에서 책을 구매한 뒤 파리로 향한다. 18일엔 여러 고서점을 둘러보고 오후엔 오랜 친구를 만나 친구의 연인과 함께 그들의 가게에서 저녁을 먹는다.
다음 날 잠에서 깬 타라는 아침 식사를 하며 어제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아챈다. 혼란스러워진 그녀는 신문, 영수증, 달력을 모두 확인하고, 토마스에 전화해 날짜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녀는 어제, 11월 18일의 일들을 다시 따라가보며 단순한 착오였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하지만 다음 날, 타라는 반복되는 하루가 착각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토마스에게 전화하지만, 역시 그는 18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통화 이후 그녀는 집으로 향한다. 토마스는 잠들기 전 “시간은 결국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그 고유한 흐름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라고”(p.60) 타라에게 말한다. 그러나 다음 날 깨어난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전화 통화도, 도착했던 순간도, 젖은 우산이나 외투도 그의 기억에서 찾아낼 수 없었다”.(p.64)
그렇게 타라는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모든 11월 18일을 기억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모두 잊어버”(p.103)리는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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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 발레의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은 7부작 SF소설 연작이다. 소설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다. 같은 날짜가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미세하고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그녀의 하루를 눈에 보이듯 감각적이고 자세히 묘사한다. 또한 그녀가 시간과 숫자, 문장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던지는 생각들을 다채롭고 문학적인 비유 표현을 통해 펼쳐 보인다. 똑같은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칫 지루하게 느꺼질 수 있는 설정을 작가 특유의 정교하고 정밀한 문체로 흥미롭게 살려냈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를 기억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어제는 그녀의 어제와 전혀 다르다. 그녀는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과연 시간 속에 갇힌 것은 누구일까. 그녀는 자신을 ‘시간’이라는 인위적인 테두리 안에, 인간이 정의해 둔 ‘날짜’ 라는 한계 속에 가두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속박에서 마침내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된 것일까. 책은 ‘시간’과 ‘존재’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깊고 다채로운 사유를 해보게 만든다.
11월 18일이라는 거대한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다시 파리로 향한 타라는, 과연 간절히 바라던 11월 19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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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어온 세계의 지속성은 불안한 토대 위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아무런 보장도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확실하다고 여겨온 모든 것의 이면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예외, 갑작스러운 균열, 상상할 수 없는 질서의 파열이 도사리고 있다. - P48
나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밤이면 시간이 꺼져버리는 것일까. 잠에 들면 과거와 미래가 사라졌다가, 깨어나는 순간 비로소 다시 생겨나는 것일까. 말들이 지워지면 사물들은 윤곽만 남는 것일까. 어쩌면 언어가 스스로 닫혀, 말 없이 눈을 뜨게 되고, 가장 가까운 말들만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침, 지금, 여기, 깨어남, 빛 같은 말들. 문장 없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가장 단순한 문장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천천히 펼쳐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침이다. 여기 하루가 있다. 나는 깨어났다. - P77
우리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간 속에서 살았다. 그뿐이었다. 그것은 제자리를 넘어서 범람해버린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이었고, 강물이 만나 하나로 흐르는 자리였다. 그것은 시간의 메소포타미아였다. 마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가 단지 하나의 강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두 이름에 불과한 것처럼. - P82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 것은 상실이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 P149
나는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오픈 티켓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나는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는 수많은 사물과 사건으로 가득한 우주 속 그 거리를 걸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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