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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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직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11월 18일, 바로 그 날에. 그녀는 1년이 지나면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슬프게도 그녀의 11월 18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끊임없이 나아갔다. 비록 시간은 11월 18일에 멈춰져 있지만, 그녀는 멈춰있지 않겠다는 듯이 나아갔다.



그녀에겐 멈춰진 ‘하루’가 아닌 움직이는 ‘한 해’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간에 갇혀 잃어버린 계절을 직접 찾아 나선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12월을, 봄날의 부활절이 있는 4월을, 온화한 햇살의 해변이 있는 8월을, 그리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성당에서의 9월을. 그렇게 그녀는 계절을 찾아 장소를 이동하며 비어버린 시간의 부피를 메우고, 한 해를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믿는다. 스스로 만들어낸 계절을 지나 다시 11월에 다다르면 영원히 멈춘 것 같았던 삶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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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계절을 찾아 유럽 전역을 기차로 누비며 스스로 시간을 만들어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어떤 한 가지 질문을 던져주었다. 나는 그녀와 달리 흘러가는 시간 속을, 알아서 찾아오는 계절의 자연스러운 변화 안을 유영하듯 편안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왜 이 소중한 시간들을 그저 마구 흘려보내는 걸까. 무언가, 그리고 곁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가 당연할 때는 왜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가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계절과 한 해를 찾아 기차에 올라탔듯, 나도 무심코 지나쳐버린 당연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나의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기를 다짐해 본다. 그렇게 쌓인 나의 온전한 ‘오늘’들이, 내 인생의 아름다운 ‘부피’로 차곡차곡 채워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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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하루하루를 모아왔다. 365개의 11월의 날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같은 가을 날들을 한데 쌓아 올린다고 해서 그것이 한 해가 될 수는 없는데. 그런 해의 끝자락을 서성이며 도약을 준비하는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 P5

내 하루의 밑바닥에서 흐르고 있는 것은 더 진실한 한 해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11월 18일 옆을 따라 나란히 흐르는 한 해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고,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구조물.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조각들로 맞추어가는 퍼즐. - P123

나는 계절의 수첩에 적어둔 겨울과 봄과 여름을 읽는다. 나는 9울을 적으며 생각한다. 하얀 겨울의 거짓말들과 모든 색채, 봄의 초록빛 거짓말들, 밤의 짙은 푸른색을 띤 여름의 거짓말들, 8월의 주황빛 아침 거짓말들, 갈색과 붉은색과 회색의 모든 것. 그러나 이제 나의 거짓말들은 점점 더 옅어진다. 그것들은 연회색과 흰색, 거의 사라질 듯 희미한 색이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투명해진다. 나는 언제나 11월의 기척을 느낄 수 있지만, 계절의 수첩에는 9월이라고 적는다. - P190

그들이 나를 두고 달아난 걸까?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그림자들 사이에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얼른 그 생각을 내려놓는다. 멈춘 것은 시간일 뿐이다. 나는 안뜰의 햇살 속에 앉아 있다.곧 해는 교회 종탑 뒤로 옮겨 가고, 햇빛은 사라지며, 이곳은 서늘해진다. 그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간다. - P232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우리가 사물들에 무엇을 부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걸까? 행운의 동전은 길에서 주워 올려지고, 반지는 손가락에 끼워지며, 유물함은 조심스레 옮겨진다. 우리는 그것들에 의미를 채워 넣는다. 생각의 어딘가에서 길어 올린 어떤 보석들을 그 위에 덧씌운다. 그러면 사물들은 그 자리에 있다. 의미를 지닌 채로. 그리고 우리 역시 그 자리에 있다. 그 사물둘의 의미에 비추어진 채로. - P238

나는 잊히고 사라질까 봐 두렵다. 나를 기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내게로 되돌아 온 것은 잔여물뿐이다. 비어 있는 요거트 그릇과 시든 샐러드가 담겨 있는 용기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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