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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책 속에 자신이 들어가 마음에 들지않는 줄거리를 바꿔버리고 싶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책 속의 이야기가 내 삶이었음 하고 바라보지 않은 사람은?
재스퍼 포드의 데뷔작인 '제인 에어 납치사건'은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본 세상을 그리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책에 대하여 사람들이 현실에서 이념이나 스포츠 처럼 열중하고 있다. 베이컨 주의자들, 말로 주의자들, 브론테 연맹 등 작가나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은 마치 혁명기의 혁명투사들을 방불케 한다. 주인공 서즈데이 넥스트는 특수작전망 SO-27의 리테라텍 요원이다. 리테라텍은 오로지 책에 관련된 사건만을 다루는 특수조직이다. 책에 관한 무슨 사건이 있겠냐고 하지만, 위조, 위작, 도난 등 가능한 사건의 종류는 무궁하다. 제인 에어 납치 사건은 몇가지 점에서 일본 만화 ROD(read or die)가 생각나는데, 책을 위한 특수 조직, 책에 관한 특수 범죄등의 요소는 비슷하다. 그러나, 책을 향한 사랑의 마음은 ROD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이 책 전체에서 '책'-'책 자체'와 '그 등장인물'과 '그 작가'-에 대한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내린다. 하다못해 등장 인물 중 악역인 하데스 조차 도둑질 후 얼른 자리를 떠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 자리서 '제인 에어'를 열중해서 읽고 만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일로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잡았던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고 만 일이 여러번 있지 않은가.
시간여행, 시간왜곡, 특수조직, 국가를 배후조종하는 거대 회사, 뱀파이어, 은탄환, 국민에 대한 기만 등등, 다양한 소재를 하나로 무리없이 잘 엮어올린 작가의 솜씨는 충분히 감탄할만 하며, 특히나 액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는 꽤 나이 많은 36세의 서즈데이 넥스트를 주인공을 하여 소재의 과다로 인해 가벼운 유흥으로 흘러버리기 쉬운 소설을 깊이있게 조절한 솜씨는 더욱 훌륭하다. 책 사랑의 마음이 가득한 이러한 책은 내 생에 처음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의 문학에 대한 집착은 나처럼 수더분한 자에게는 지나치게 현학적이었고 사랑이 아닌 비뚤어진 열정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토록 책을 사랑하는 그의 세계관이 반영된 다음 작품이 빨리 번역되어 나오길 기대한다.
(그리고, 이 책에는 꽤나 현실을 비꼰 유머가 많지만 나카지마 부인 관련한 이야기가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