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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즈리 도서관의 와루츠 씨
코교쿠 이즈키 지음, 김진환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5월
평점 :
큰 전쟁으로 세계의 절반이 폐허가 된 먼 미래, 더 이상 종이로 인쇄된 활자를 본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취미가 되었고 모든 것은 데이터화되어 손목에 차고 다니는 씨셀로 열람이 가능한 시대를 소설은 배경으로 삼고 있다.
책 한 권을 사려면 몇 달 치 월급을 쏟아부어야 하고 글을 써도 좀처럼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고 데이터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책은 그저 값비싸고 사치스러운 물건으로 취급되는 시대에서 사에즈리 도서관의 와루츠는 자신의 아버지가 사고 모은 책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기 위해 도서관을 운영 중이다.
번화가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도 불편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찾아오는 사에즈리 도서관, 하루 종일 악재가 겹쳐 힘들었던 카미오는 마지막까지 접촉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울상인데 알고 보니 접촉 사고를 낸 곳이 도서관이었고 평소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그녀지만 접촉사고가 계기가 되어 도서관 사람들을 하나 둘 알기 시작한다. 책은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카미오는 우연찮게 도서관을 찾게 된 날을 시작으로 와루츠가 권해준 그림책을 시작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아가게 된다.
교사인 코토는 바쁜 학교 일정에도 도서관에 들러 필요한 책을 대여한다. 손목에 차고 다니는 씨셀을 통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종이로 된 질감인 책을 읽게 해주고 싶은 게 코토의 바람이지만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코토는 와루츠의 도움으로 빌린 책을 학교에 가져가 아이들이 직접 보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준다.
엄청나게 책을 좋아했던 모리야의 할아버지, 뇌의 이상으로 말년에는 같은 책을 몇 번이나 사는 일이 반복되면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기에 모리야는 할아버지의 기억이 좋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의 시가 상을 받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게 되지만 생전에 할아버지가 소장하던 모든 책들은 이미 사에즈리 도서관에 보관 중이란 것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의 시를 찾아 사에즈리 도서관을 찾게 된다.
어릴 적 전쟁고아였던 와루츠는 뇌 수술 권위자였던 와루츠 요시아키라에게 입양되어 그가 모았던 책들을 상속받게 되고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도서관을 세운다. 책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서 무료로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개방된 도서관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뜨겁게 논쟁이 붙을 정도였지만 그렇기에 와루츠는 아버지의 뜻을 더욱 가치있게 이어가기로 한다.
세계 전쟁이 벌어지고 폐허가 된 지구, 전쟁 전까지 누리던 풍요로움은 다시 올 수 없는 삭막한 세상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책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 책에 얽힌 사연이 소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책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는지를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책들이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세상에서 자원낭비라는 목소리도 높지만 디지털보다는 종이로 된 책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공감 가는 부분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어 이런 세상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읽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