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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빛 ㅣ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표지에 일렁이는 검은 물결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검은 물결이 일렁이게 만든다.
미우라 시온의 <검은 빛>.
'인간의 검은 내면을 파헤쳤다'는 책소개를 봤을 때 기존의 미우라 시온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에서 읽는 이의 마음까지 콩닥거리게 만들었던 성장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미우라 시온을 기억하고 있던 내게 인간의 어두움을 파헤쳤다는 <검은 빛>은 의외로 다가왔다. 먼저 읽었던 미우라 시온의 밝은 책들과는 전혀 다른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 책이 미우라 시온의 또다른 면을 보여줄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혹은 과연 어떨까 하는 의구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작은 섬 미하마. 그 섬에 살고 있는 중학생 노부유키와 미카는 늦은 밤 신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 노부유키는 몰래 집을 빠져나오고 집앞에 서 있던 동네 꼬마 다스쿠와 마주친다. 산꼭대기에 있는 신사에서 미카와 노부유키, 노부유키를 따라온 다스쿠가 함께 있는데 갑자기 몰려온 쓰나미로 산꼭대기에 있던 세 사람을 제외하고 마을의 모든 집들은 물에 잠기고 사람들은 죽고만다.
평소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던 다스쿠는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져 아버지가 죽었다며 기뻐하지만 다스쿠의 아버지는 방갈로 손님과 함께 배를 타고 나가 목숨을 건진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미하마 섬에 생존자는 노부유키와 미카, 다스쿠, 다스쿠의 아버지, 방갈로 손님, 등대지기 할아버지.. 6명 뿐이다. 구조작업이 진행되던 어느날 노부유키와 미카는 커다란 비밀을 공유하게 되고 노부유키는 미카와 영원히 함께 할거라 생각하지만 각기 친척의 집으로 가게되어 헤어지게 된다.
2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각자의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고 있을까.
노부유키와 다스쿠, 그리고 미카는 예상치 못했던 모습으로 대면하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눈앞에서 가족과 온 마을 사람들이 커다란 물길에 휩쓸려 목숨을 잃어버리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그 사람이 받았을 상처는 짐작 할 수도 없다. 노부유키와 미카는 상실감을 느꼈을테고 인간의 죽음이란 것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잣대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처 때문인지 도통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상냥한 웃음을 띠고 있는 노부유키는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진다.
미카는 어떤가. 그야말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노부유키를 향해 도와달라고 말을 하는 미카의 속삭임은 그저 자신의 귀찮은 일을 떠넘기는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조차 이용할 수 있는 그녀의 어두운 내면에는 어떤 상처가 자리잡고 있는지 좀 더 들여다 보고 싶었는데 그녀에게 할애된 지면이 적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또 한사람 다스쿠.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었던 다스쿠는 울고있는 자신을 다독여 줬던 따뜻한 노부유키를 항상 그리워한다. 성인이 된 자신 앞에 다시 나타나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앞에서 어쩌면 자신의 최후를 알면서도 노부유키에게 기댈수 밖에 없었던건 아닐까.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줬던 한순간의 노부유키를 기억하고 그의 말들을 있는 그대로 믿고 싶었던건 아닐까. 다스쿠가 안쓰럽기만 했다.
<검은 빛>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두운 상처를 갖고 있고 마음 속에 검은 빛을 품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에게 '검다'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어느 한 구석에 검은 빛을 품고 있을테니 그 누구에게라도 쉽사리 '검다'고 비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우라 시온이 보여 준 밝음과 어둠을 모두 만나보고 나니 밝음과 어두움은 이어져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