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아름다움을 느끼다

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 ㅣ In the Blue 3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10년 8월

사랑이 번지는 곳.....

제목이 참 달콤하다. 그곳에 가면 물감이 번지듯 그렇게 사랑이 번진다는 말일까. 사랑에 목마른 사람, 사랑이 덜컥거려 마음 아픈 사람, 지금의 사랑을 간직하고픈 사람... 누구든 불가리아에 가면 마음속에 사랑이 번지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그게 정말이라면 불가리아는 사랑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로 북적북적하게 되겠지.

 

솔직히 이 책을 접하기 전엔 불가리아와 '사랑'을 연결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불가리아란 나라를 떠올리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여 앉아 요구르트를 마시는 모습이 먼저 생각났고 불가리아는 내게 장수의 나라, 요구르트의 나라로만 여겨졌을 뿐이었다. 이렇게도 고풍스럽고 고즈넉한 모습을 간직한 사랑하고픈, 사랑에 빠지고픈 나라인줄도 모르고....

 

사람이 북적북적하고 번화한 관광지나 유적지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적하고 조용한, 자연풍경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라 여행을 하더라도 가급적 성수기를 피해서, 너무 사람이 많은 곳도 피하려고 애쓴다. 이 책에서 만난 불가리아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언덕 위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빨간 지붕의 집들, 뾰족한 지붕을 가진 오래된 교회들, 넉넉한 웃음을 지닌 불가리아 사람들....

 

변혜정, 백승선 콤비가 펼쳐낸 여행서를 이 책으로 세 권째 만났다. 크로아티아, 벨기에, 불가리아....

첫만남이었던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가 간결하지만 강렬했고 지금까지도 크로아티아는 내가 손꼽는 여행가고 싶은 곳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말 제목 그대로 사진으로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크로아티아였다. 그 첫만남이 좋아서 그후로 발간된 변혜정, 백승선 콤비의 책을 차례차례 챙겨보게 됐다.  


첫만남의 강렬함은 느끼지 못했지만 잠시 숨을 고르게 만드는 아름다운 사진과 짤막하지만 마음에 와닿는 글들은 여전했다. 널리 알려진 흔한 여행지가 아니라 생각지 못했던 나라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이들 콤비의 또 다른 여행서를 기다리게 된다. 다음엔 어떤 나라의 놀라운 아름다움을 보여줄지 잔뜩 기대하게 된다.

그녀를 들여다 본다

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은 생존자들 중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끔찍한 사고를 겪었으니 정신적이 후유증이 있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나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고 심각한 정신적인 장애를 갖게 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는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고 안정을 얻는 사람도 있지만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니 큰 사고 후에는 정신적인 치료까지도 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에 죽음에 있어서도 그럴진데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상처와 죄책감이 얼마나 클까.
수학여행을 떠난 사이 온가족이 살해당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심홍>은 큰 사고를 겪은 후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됐던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자인 노자와 히사시의 작품이란 이유가 우선적으로 내 눈길을 잡아 끌었지만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재 역시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학여행지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가나코는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짐을 꾸려 그곳을 떠나게 된다. 선생님은 단순히 가족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말하지만 가나코는 어렴풋이 이순간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이 달라질거란 예감을 하게된다. 부모님과 어린 두 동생까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나코는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가나코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가나코의 가족을 살해한 범인은 현장에서 잡혔는데 가나코의 아버지에게 보증 사기를 당한 남자였다. 그 남자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상황을 적은 문서를 읽으니 그사람의 억울한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살인을 옹호할 순 없다. 그 남자에게는 가나코와 동갑인 '미호'라는 딸이 있고 미호도 가나코만큼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간다.

 

가나코는 대학에 들어가고 상처를 모두 잊은듯 행동하지만 마음은 돌덩이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있다. 가해자에게 자신과 동갑인 딸 미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정체는 숨긴 채 그녀에게 접근한다. 바텐더로 일하는 미호에게 손님을 가장해 접근 한 후 미호를 괴롭히는 남편을 살해하자는 공모를 하게된다. 가나코는 그것으로 미호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일까....

 

눈을 뗄 수 없는 초반부의 몰입도를 생각하면 후반부는 조금 아쉬운감이 있었는데 어쩐지 이야기를 서둘러 마무리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인 가나코와 가해자의 가족인 미호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미호의 이야기가 좀 더 디테일했다면 더 흥미로웠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미 망자가 되어버린 노자와 히사시의 신간을 만나 볼 순 없겠지만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작품들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무랑 이야기 하자..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 52 ㅣ 주말이 기다려지는 여행
고규홍 글.사진 / 터치아트 / 2010년 7월

국도변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 입구마다 커다란 나무가 서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무 그늘 아래 커다란 평상을 놓고 마을 어른들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낮잠을 즐기는 한가로운 모습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시원한 나무 그늘 밑 평상에 누워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을 어귀의 나무들 중에서도 유난히 커다란 나무를 보면 얼마나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서 있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 책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을 통해 내가 흔히 보고 지나쳤던 나무들에 대해서 알 수 있을거란 기대로, 어쩌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던 나무들, 내가 한번쯤은 어루만졌던 오래된 나무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크게 4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장은 경기도.강원도, 2장은 충청도, 3장은 경상도, 4장은 전라도와 제주도의 나무들을 다루고 있는데 지역별로 만날 수 있는 나무들을 싣고 나무에 얽힌 이야기들과 그 주위에서 볼 만한 관광지도 곁들여 싣고 있다.


큰 스님의 지팡이가 자라 나무가 되었다는 원주의 은행나무, 사람들의 도움으로 수몰 위기에서 벗어난 안동의 은행나무, 해마다 꼬박꼬박 토지세를 내는 예천의 석송령, 충청과 전라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한 익산의 곰솔....
나무들의 이야기는 그 모습만큼이나 다양하고 아름답다.

 

그 중에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랜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나무가 있는데 전주에 있는 곰솔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곰솔은 동서로 35미터, 남북으로 29미터나 나뭇가지가 펼쳐져 있을만큼 장대한 모습을 뽐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나무가 시름시름 죽어가 조사해보니 누군가 나무의 밑둥치에 구멍을 뚫어 제초제를 투입했단걸 발견했다. 한창 택지개발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곰솔 주변은 개발에 제한을 받다보니 불만을 가진 누군가 이런 일을 벌인거라고 짐작할 뿐 명백한 증거는 없다고 한다. 원래 나무가 죽으면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는데 문화재청에서 이 곰솔은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하지 않고 주변을 곰솔 공원으로 조성했다. 볼품 없어진 나무를 보면서, 사람의 욕심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간 곰솔을 통해 사람의 이기적인 모습을 돌아보고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절실해 지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이곳 저곳에 있는 나무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주도의 나무가 너무 부족하게 다뤄졌다는 점이다.

제주도의 멋진 나무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국도변을 따라 여행하기를 즐기는데 앞으로는 이 책을 꼭 챙겨서 다녀야겠다. 어느곳을 가던 이 책을 뒤져보고 책에 실린 나무를 만난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 나무가 간직한 이야기를 나무와 함께 나눠보고 싶다.

흥미진진한 북유럽 여행기

처음 만난 여섯 남녀가 북유럽에 갔다 -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 남녀의 북유럽 캠핑카 여행기
배재문 글 사진 / 라이카미(부즈펌) / 2010년 6월

겨울을 좋아하는 내가 손꼽는 여행지 중의 한곳이 북유럽이다. 북유럽을 여행하기엔 여름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겨울의 북유럽을 여행 해 보고 싶었다. 밤이 계속되는, 눈이 펑펑 내리는 북유럽에서 겨울을 나고 싶다는 내말에 친구는 우울증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라며 나를 만류하곤 한다. 겨울이던 여름이던 북유럽에 가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북유럽'이라는 문구도 내 눈을 끌었지만 '처음 만난 여섯 남녀'라는 문장이 마음을 확 잡아 끌었다. 처음 만나서 여행을 떠나다니, 게다가 동성도 아니고 이성이 여행을 한다니 그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졌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가고 싶어하는 북유럽을 캠핑카를 타고 여행 했다고 하니 색다른 여행기겠다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는 낯선 사람들과의 캠핑카 여행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북유럽을 여행하기 전에 서유럽을 이런 방식으로 여행한 적이 있고 그 이야기도 책으로 나왔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마음 맞는 친구와의 여행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생길까 싶었지만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하고 서로 배려하면 의외로 괜찮은 여행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함께 여행 할 사람들을 모으고 여행일정을 조정하고 항공권 준비까지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책에는 대략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처음 알게된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준비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해버린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내가 다 화가 났다. 하지만 화도 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물색하고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니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제법 두툼한 책이지만 재미있는 사진들과 글 덕분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읽었다. 중간 중간 소개되는 함께 했던 사람들의 여행Tip이나 캠핑카로 여행하는것의 좋은점, 주의할 점 등은 앞으로 캠핑카 여행을 계획하는 내겐 소중한 정보였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캠핑카 여행은 말고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과 북유럽을 캠핑카로 여행하겠다는 꿈이 생겼다. 그 꿈을 이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불편한 진실..

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국사 교과서에서는 간략하게만 다루고 그마저도 시험에 출제되자 않는다는 이유로 대충 넘어가는 근현대사를 관심있게 살펴봤던건 대학에서였다. 몇 편의 소설을 읽으며 배경이 되는 근현대사에 대해 궁금해졌고 결국 근현대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을 찾아 읽어보게 됐다. 책을 읽고는 가슴이 답답해졌던 기억이 남아있다. 굴곡 많았던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지만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요직에 남아 있게된 상황도 갑갑하기 그지 없었다.

 

역사에서 '만일'이란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만나는 동안 '만일 ~했더라면'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여야 했다. 만일 친일파 척결을 말끔히 해냈다면, 만일 여운형 선생이 암살 당하지 않았다면, 만일 남북한이 통일 정부를 수립했더라면, 만일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그런 굴곡진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황석영님의 소설이 출간됐다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읽고나면 갑갑해질게 분명한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라 과연 읽어야 하나 망설임도 있었다. 하지만 일제시대부터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90년대까지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어우러질지 궁금한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쁜 얼굴로 모델 활동을 잠시 하다가 고급 룸살롱에서 일했던 박선녀는 그곳에 손님으로 왔던 김진과 내연 관계를 맺으며 부유한 삶을 선택한다. 김진은 일제시대에는 친일활동으로 해방 후에는 미군정보부에서 일하면서 얻은 정보들로 부를 축적하고 건설업을 시작으로 사업을 벌여 대기업을 일군다. '대성 백화점'도 김진의 것이었고 그곳에 볼 일을 보러 갔던 박선녀는 백화점이 붕괴되면서 건물더미에 파묻힌다.

 

소설은 박선녀와 김진 두 사람 외에 박선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부동산업자 심남수, 박선녀의 사업을 도왔던 폭력배 홍양태, 대성 백화점이 붕괴됐을 때 건물더미에 깔린 박선녀와 근거리에 함께 갇혀있던 매장 점원 임정아의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한다. 그네들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강남이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등장해서 주인공들의 인생과 얽히는건 흥미로웠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가 집약적으로 다뤄진게 아닌가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대하소설처럼 그네들의 삶이 세밀하게 다뤄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