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들여다 본다

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은 생존자들 중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끔찍한 사고를 겪었으니 정신적이 후유증이 있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나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고 심각한 정신적인 장애를 갖게 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는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고 안정을 얻는 사람도 있지만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니 큰 사고 후에는 정신적인 치료까지도 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에 죽음에 있어서도 그럴진데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상처와 죄책감이 얼마나 클까.
수학여행을 떠난 사이 온가족이 살해당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심홍>은 큰 사고를 겪은 후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됐던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자인 노자와 히사시의 작품이란 이유가 우선적으로 내 눈길을 잡아 끌었지만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재 역시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학여행지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가나코는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짐을 꾸려 그곳을 떠나게 된다. 선생님은 단순히 가족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말하지만 가나코는 어렴풋이 이순간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이 달라질거란 예감을 하게된다. 부모님과 어린 두 동생까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나코는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가나코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가나코의 가족을 살해한 범인은 현장에서 잡혔는데 가나코의 아버지에게 보증 사기를 당한 남자였다. 그 남자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상황을 적은 문서를 읽으니 그사람의 억울한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살인을 옹호할 순 없다. 그 남자에게는 가나코와 동갑인 '미호'라는 딸이 있고 미호도 가나코만큼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간다.

 

가나코는 대학에 들어가고 상처를 모두 잊은듯 행동하지만 마음은 돌덩이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있다. 가해자에게 자신과 동갑인 딸 미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정체는 숨긴 채 그녀에게 접근한다. 바텐더로 일하는 미호에게 손님을 가장해 접근 한 후 미호를 괴롭히는 남편을 살해하자는 공모를 하게된다. 가나코는 그것으로 미호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일까....

 

눈을 뗄 수 없는 초반부의 몰입도를 생각하면 후반부는 조금 아쉬운감이 있었는데 어쩐지 이야기를 서둘러 마무리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인 가나코와 가해자의 가족인 미호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미호의 이야기가 좀 더 디테일했다면 더 흥미로웠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미 망자가 되어버린 노자와 히사시의 신간을 만나 볼 순 없겠지만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작품들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