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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가끔 큰 병원에 갈때면 일부 불친절한 의사들때문에 기분이 언짢아 질때가 있다. 물론 그들에게는 매일 보는게 환자요, 환자 가족이다보니 그들의 애타는 마음에 면역이 생겨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오직 의사의 한마디에 귀를 쫑끗 세우고 일희일비하는게 환자 가족이다보니 서운한 마음이 들때가 많다. 그럴때면 의사만큼 불쌍한 사람들도 없다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위로하곤 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하고 유혈이 낭자한 환경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불친절함을 상쇄시킨다.
그런 중압감 때문일까. 가끔씩 뉴스에 마약을 복용한 채로 수술을 하는 의사의 이야기가 등장해 대중의 분노를 사곤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요즘에만 해당하는 사건은 아닌가보다. 이 책 <죽음의 해부>에도 약물 중독된 의사가 등장한다. 물론 환각을 위해 약물을 투여했던 요즘 의사들과는 달리 국소마취에 필요한 약물의 용량을 실험하다 피치못하게 중독된 의사긴 하지만....
이 책은 고서적 수집이 취미인 작가가 어느날 고서적을 뒤지다 우연히 '19세기 의학계의 거물, 윌리엄 홀스테드가 사실은 약물중독자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를 바탕으로 엄청난 자료수집과 상상력을 결합시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책 속에 묘사되는 해부장면이라던가 수술장면, 실존인물들의 등장과 의학산업의 경쟁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적였을지 짐작이 간다.
펜실베이아 의과대학 임상의학부 과장인 윌리엄 오슬러는 당시 해부를 반대하는 움직임에 반하는 진보적인 의사다. 그를 존경하는 의사 에프라임 캐롤은 어느날 버려진 사체를 해부하는 과정에서 한 여성의 사체를 보고는 당황해 하는 오슬러와 의사 조지 펀쇼를 목격한다. 이어 조지 펀쇼가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캐롤은 그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숨겨진 비밀을 밝혀야만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Faction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진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느냐에 판가름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해부>는 성공적인 팩션이라고 말하고 싶다.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의 그림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허구도 진실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어디까지가 Fact고 어디까지 Fiction인지 궁금했는데 저자의 후기를 읽으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실존 인물들이 등장해서 당시의 사회문제들(해부의 찬성과 반대, 낙태문제, 미혼모 문제, 의사의 윤리문제 등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은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큰 거부감 없이 수월하게 읽힌다. 책장을 덮었을 때는 윌리엄 오슬러의 선택이, 에프라임 캐롤의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