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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속삭여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온 사방에서 '단풍' 얘기가 들려온다. 어쩐지 단풍 나들이를 안하면 안될것만 같은 초조함마저 밀려온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꼭 멀리 떠나야만 단풍 나들이를 할 수 있는건 아니다. 버스 창 밖으로 지나가는 노란 은행잎들, 집 앞 공원에 늘어서 있는 온갖 붉은색을 펼쳐 보여주는 많은 나무들... 도시에서 할 수 있는 단풍 나들이가 감질나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시간만 허락한다면 복잡한 서울을 떠나고 싶어진다. 태안의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 밀물과 썰물 때마다 길이 생겼다 사라지는 간월도, 나무가 늘어선 길이 너무 아름다웠던 내소사, 가파른 계단을 헉헉 거리며 올라 만났던 석모도 보문사에서의 일몰, 길까지 넘쳐 모든걸 삼켜버릴것만 같던 삼척의 거대한 파도....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의 설레임은 어느덧 사라지고 다시 일상에 시달리며 마음이 팍팍해 지고만다. 그런 팍팍한 마음을 여행지에서처럼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여행에서 느꼈던 아름다운 풍경들,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낯선 느낌이 주는 설레임들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여행서적을 뒤적이는게 아닐까.
엄청난 독서가이며 상당한 글을 써낸다고 알려진 정혜윤의 런던 여행기 <런던을 속삭여 줄게>를 그런 바람들을 갖고 대리만족이라는 차원에서 냉큼 집어들었다. 하지만 책의 전반부를 읽으면서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여행의 출발부터 런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그 감상들을 얘기해줄거라 생각했던 여행기와는 너무도 달랐기에...
이 책은 여행기라기 보다는 런던의 문화, 예술 읽기라고 하는게 더 적합할 듯 싶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폴 대성당, 대영 박물관, 트라팔가르 광장, 그리니치 천문대 등 런던의 곳곳에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을 이야기하는게 보통의 여행기라면 이 책은 예술가들, 책들, 책 속의 문장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일단 그녀의 대단한 독서력과 인용된 많은 문장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걸까 하는 놀라움이 제일 컸다. 어떤 장소에 갔을 때 이렇게도 수많은 책들과 문장들이 떠오르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고 내것으로 만들어야 하는걸까. 도무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저자의 대단한 독서력과 지식은 놀라웠지만 부족한 내가 읽기에는 녹록치 않은 책이었다.
그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따라잡기가 버겁기만 했다. 그렇게 힘겹게 책을 읽었음에도 그녀의 또 다른 책들이 궁금해진다. 이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그녀의 또 다른 책들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고 싶다. 이번에는 꼬리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