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동안에 - 사랑으로 세상을 움직인 감동 실화
게리 채프먼 지음, 서현정 옮김 / 예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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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게리 채프먼은 알게 된 것은 '5가지 사랑의 언어'를 동생이 사왔을 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거나 입양함으로 생기는 '가족관계'가 언제나 내게 행복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랑할 수 없는 가족을 어떻게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지 이야기해주는 게리 채프먼의 말은 내게 위로를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가족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냥 무작정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무작적 보살핌과 베품을 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가 많다. 또 이성으로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그렇게 하기가 죽도록 힘들 때도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위로를 받았던 두 일화가 있다.
첫 번째 결혼에서 큰 상처를 받고 두 번째 남편을 만났을 때, 자기도 모르게 거칠게 굴었던 여자의 이야기다. 남편은 그녀가 후회하면서도, 알면서도 스스로가 공격적으로 구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그래서 더욱 스스로 상처를 받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지금 본심으로 내게 그렇게 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당신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또 하나의 일화는 자신의 자식이 손녀를 성추행해서 그를 내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사람의 이야기였다. 가슴이 찢어지는 가운데 손녀와 자식을 모두 사랑하고 있기에 가족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지만 동시에 파괴를 맏으려는 행동 자체 때문에 자식들로부터 외면받는 노인의 상황이 가슴시리게 다가왔다. 몇 년에 걸친 노력으로 서서히 회복되는 가족의 이야기는 역시 가족에 대한 노력을 몇 번, 며칠, 몇 달로 끝내서는 안 된다.
나는 이해해주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상처를 주고 있는 사람이다.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전자로 바뀔 수 있을까. 끊임없이 그 주제를 생각하게 되었지만 아직 내가 어떻게 할지 결정한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은 참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세상이 조금 더 살아갈만한 곳으로 비춰지고, 나도 가족을 사랑하려고,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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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창비 2월 북콘서트 <윤이형ㆍ이제니>"

[2명] 1달 전 알게된지 얼마 안 된 친구에게 연하장을 받았는데, 이제니의 시가 실려있었습니다. 이해하기 보다는 감성과 이성으로 접근하는 시를 곱씹으면서 이제니라는 시인을 더 알고 싶어졌어요. <큰 늑대 파랑>도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소설입니다. 북콘서트를 통해서 좋아하는 글을, 좋아하는 작가를 통해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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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먼트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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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자의 글 중에서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여지없이 어떤 부분에서는 찔끔거리게 되었다"라고 써 있는 부분은 읽고 있노라니, "아니, 대체 어느 부분에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특유의 담백하고 어딘지 한 걸음 물러난 것 같은 느낌의 소설이었다.

삶에 가까이 다가가기 보다는, 제 2자로서 그 모습들을 관조하는 모습은, 바로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그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죽음을 앞둔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다.

"누구나 죽는다"는 인간 전체에 대한 이 명제를 하루하루 체험하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오늘의 하루는 어제 죽어간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던 하루다.

참된 삶을 맛보지 못한 자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이란, 노고와 고통 으로부터의 휴식이다.

죽음은 한 순간이며, 삶은 많은 순간이다.

 

죽음에 대한 명언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만큼 생과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절실한 인식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어쩐지 죽음!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진지하게 접근을 해야 할 것 같고,

죽음을 앞두지 않은 이상에 함부로 이러니 저러니 말하는 것은 경솔한 짓일 것 같다.

 

이 모먼트라는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 죽음에 대해서 "살아있음"과 별반 차이 없이 접근한다는 것이다.

어쩐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 갑자기 초월해서 성인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고 집착하지 않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고 정신의 가치를 먼저 실천하려고 하게 된다고 말이다.

아니면 정반대로 광기에 휩싸일 수도 있겠지만, 음, 그건 <좋지 못한 예>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모먼트에 나오는 "죽음을 앞둔 이들"은 다르다. 아니, 이제껏 많은 문학작품에서 명언처럼 반복되어온 그러한 진지성에 대해서 좀더 현실적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고나 할까.

죽음을 앞두었을 때 빌게 되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라, 살아있으면서 꾸준히 유지해온, 똑같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나'라는 사람의 소원이다. 앞으로 계속 살아갈 게 아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바라지도, 명예를 바라지도 않는다. 가장 인간적인, 누군가를 미워하니 그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든가,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길 바란다든가 하는 거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것은 거창한 명제가 아니라,

사는 사람이나 죽는 사람이나 똑같이 살아가는 선상에 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 것도 다르지 않아.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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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파리 청소년 모던 클래식 1
빅토르 위고 지음, 박아르마.이찬규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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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렸을 때 노틀담의 꼽추라는 만화 영화가 나온다는 걸 본 적이 있다.

광고 그림에는 어떤 난장이가 종을 흔들고 있고, 옆으로는 예쁜 아가씨가 지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꼽추가 등이 뽈록 튀어나온 병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을 뿐, 그 만화 영화를 직접 보지는 않았다.

두번째로 기억나는 것은 어떤 소설에서 "카지모도는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답고 착한 여자를 사랑했을 뿐이다. 그는 전혀 숭고하지 않다"라는 대목이다. 정확히 이런 대목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렸을 때 본 만화 영화 광고 그림을 떠올렸고 아하, 카지모도라는 게 꼽추인데 아주 예쁜 여자를 사랑해서 엄청난 일을 했나 보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번째로는 레 미제라블을 읽었을 때다. 난 레 미제라블을 엄청나게 많아 울면서 읽었다. 성당에서 촛대를 훔쳤는데 경찰에게 잡혀 끌려갔을 때 신부가 "내가 준 것이니 그를 놔주시오"라고 했을 때. 그리고 한 사보이 소년이 떨어뜨린 동전을 밟은줄 모르고 귀찮다고 여겨 그를 내쫓고 장발장이 울며 "아아, 나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했을 때. (이때 내가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또 마지막에 장발장을 피신시켜주고 자신의 신념과 어긋난 짓을 한 것을 스스로에게 용납해줄 수 없어 경관이 자살을 선택했을 때(아 또 눈물이 나려고 하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난 전율시킨 이 레 미제라블이 바로 <노틀담의 꼽추> 원작 작가라는 것을 알고 <노트르담 드 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의 서문에는 역자가 가감없이 책을 많은 부분들을 삭제했다, 라고 써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이 명작을 정작 읽은 사람이 너무나 적은 이유는 이 책이 너무 길고 또 중간 중간 지루하게 많은 설명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레 미제라블을 읽다가 정치적인 토론이 하염없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해 결국 나머지 절반은 축약본으로 읽고 말았었다. 그러한 판단 하에 빅토르 위고의 축약 소설은 내게 드디어 노틀담의 꼽추가 어떤 내용인지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목적인 "좀 더 많은 사람이 <노트르담 드 파리>의 감동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게" 쉬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이 책의 그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다고 여겨진다.

나 또한 그러한 이유로 이 명작의 맛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원본도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줄거리만 즐기려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즐거움만 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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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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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라는,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한 여자의 그림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내 가슴을 울렸다.
어느 시대에나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또 그로 인해서 얻은 행복과 고통이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음악가와 화가의 음악과 그림이 바로 그 삶 때문에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삶과 예술적 창조물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며 자유롭게 살았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또 어떤 사람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창조를 했다.

예술가들의 삶에 대한 노엘라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읽고있노라면,
그들이 겪은 고통, 또 그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과 기쁨
그것들을 이해함으로 오히려 내가 치유를 받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노엘라는 자신의 (아마도?) 사랑을 이야기하며, 또 그 사랑 때문에 힘들었거나 행복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통해 그림과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전달하고 있다.

아직 내겐 너무 어렵고, 또 푹 빠질 수 없는 그 사랑이라는 것.
사랑을 통해서 오히려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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