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미완성 > 모스가 돌아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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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지나가는 길 - An Inspector Morse Mystery 2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곧 이 사실에 놀라게 될테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이 사실에 깊은 공감을 가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숲을 지나가는 길, 무지하게 두껍다.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그에 비하면 껌이다.
마치, 마치, '추리소설이 호구냐?'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무지하게 찔렸다. 사실 옥스퍼드 운하..를 읽은 나로선 그에 비슷한 질, 양, 유머를 예상하는 게 당연했기에 할랑할랑한 옥스퍼드..와 비슷한 정도의 두께를 기대했는데 우엇, 이 책을 한손에 들면 손아귀가 쪼끔 아플 정도. 싸이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노래까지 만들어 놓았다. 완전히 새됐어- 그러고 보니, 책 속에서 '새'들이 꽤 심심찮게 나온다. 뭐 미리 말해두지만 괜히 힌트 될까봐 새 이름 하나하나 외워두는 뻘짓은 하지 않길 바란다. 새 이름 외우다 주인공 이름이 헛갈릴 수 있으니까. 물론 이 경우도 완전히 새되는 거지만.
책 소개에도 나와있지만, 모스는 갑자기 휴가를 가기로 한다. 그가 경찰서를 비운 동안, 갑자기 영국 전역은 '더 선'지에 누군가가 기고한 '스웨덴 처녀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시 때문에 시끄러워지는데..
옮긴이도 살짝 이야기한 거지만 내가 보기에도, 모스 경감의 추리 소설이 가진 매력은 플롯이나 사건 해결이 아니라 유머, 그 한 줄 너머 또 한 줄 숨어 있는 '유머'인 것 같다. 세상에, 살인 사건 조사하면서 발견된 시체에 속옷이 없음을 섭섭해하고 어떻게 현장이나 경찰서보다 술집 얘기가 더 많이 나오며 거기다 연속으로 헛다리 짚고 독자인 나처럼 완전히 새 되는 해결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50여 개의 장마다 꼭지를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책들의 인용문은 각 장의 이야기와 놀라울 정도로 잘 맞물려지는 데다 나름 놓칠 수 없는 재치와 위트가 숨어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제대로 맘 놓고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전작은 아니었지만 먼저 출간된 옥스퍼드 운하..에서 외전격으로 살짝 보여줬던 미녀와 술에 대한 사랑은 이젠 숭배의 정도로까지 발전해서, 에로티시즘에 본격적으로 심취해드는 모스의 모습은 무지하게 솔직발랄한 매력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가 책장 속에서 맥주 한 잔을 들고 몸을 일으킨다고 해도 하나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살아있는 인물로 느껴진다. 어휴, 이러니 책 앞에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탐정이 어쩌고 홈즈는 저리 가라 저쩌고 할 수 있는 거겠지...아주 요상하게 매력을 풍기는 책이다 정말.
끝으로 고백 하나 하자면, 사실 난 아직도 데일리가 누구고 마이클스가 누구며 에또...그러니까 아예 다른 인물들 이름까지 구분할 수가 없는 지경에 빠져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인물들이 마구마구 늘어나더니 종국에는 '에이 뭐 그놈이 그놈이겠지 뭐 나중에 작가가 정리해주겠지!'하고 배째라 식으로, (이것이 바로 모스와 혼연일체를 이루는 것일까?!) 버텼는데 다행스럽게도 막판에 작가가 조목조목 정리해주는 덕에 겨우겨우 무슨 사건이 어찌 일어난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그만큼 분량이 길고 인물도 많고 특히나 자발적으로 샛길에 빠져주시는 주인공 덕에 루이스처럼 이 독자마저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호호호. 그러니 나중에 읽게 될 분들은 부디 나처럼 사건들을 놓치지 말고 등장인물들 이름 외우기에 집중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