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한양출판 / 1991년 11월
평점 :
절판


이런, 우연의 일치일까. 나도 다른 분이 쓰신 것처럼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가 가장 맘에 들었다. 하루키 소설에는 굉장한 갑부 따위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하루키가 묘사하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은 어떨까 생각하면 두근두근하지만(구찌 핸드백을 사면서 뭐라고 중얼거릴까? 하루키가 창조한 그런 캐릭터는?) 아쉽게도 역시나, 이 단편의 주인공은 귀찮은 건 딱 질색인 타입이다. 그래서 돈 불어나는 걸 보고 끔찍하고 지겹다 말하고, 전혀 그린스럽지 않은 그린 스트리트에서 잘 팔리지도 않는 사설 탐정으로 근무하고 있다.

중구난방 상상력이랄까, 여기에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입 꼭 다물 수 밖에 없는 그런 줄거리가 펼쳐져 있다. 양 사나이, 양 박사(양이야 툭하면 등장하지만)도 웃기거니와, 프로이트 한 마디로 간단히 해결되는 양 박사의 심술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런 앞뒤없음이 머리를 비워주고, 그야말로 깨끗하게 책장을 덮을 수 있게 해준다.

'캥거루 통신'도 독특한 느낌의 단편이다. 당신이 어떤 레코드에 불만이 있어서 백화점으로 항의 편지를 띄웠다고 하자. 그런데 그 편지를 읽은 사원이 당신에게 녹음 테잎을 보냈다. 참, 어느 누가 이런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왠지 좀 기묘하다고 할까, 그런 분위기가 없지 않지만 그 비일상성이 마음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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