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정치론"이란 실제 정치가 사유思惟라는 사실로부터 철학이 그 자체로 그리고 그 자체를 위해 도출할 수 있는 결과를 뜻한다. 메타정치론은 정치는 사유가 아니며,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는 일은 철학자의 소관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철학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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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16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메타인지, 메타버스 등 메타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해서 그런지, 제목에서 IT나 테크 관련 도서 같은 느낌이 조금 들었어요. DYDADDY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DYDADDY 2022-03-17 00:05   좋아요 1 | URL
IT와 무관한 정치 철학입니다. 바디우 선생이 자꾸 아렌트의 칸트 철학을 비판해서 결국 한나 아렌트의 책부터 다시 읽고 있어요. ㅠㅠ 내일부터 춥답니다. 옷장에 넣으신 두꺼운 옷을 며칠간만 다시 꺼내시길 바라요. ^^
 

"언제나 제일 좋은 사람들이 가버리는군요. 그게 인생이죠. 하지만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알고 있었죠."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청진기를 접어 넣으면서 리외가 말했다.
"괜히 그러죠. 그분은 그저 무의미한 말은 하지 않으셨어요. 어쨌든 나는 그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 이 모양이 되었죠. 딴 사람들은 ‘페스트입니다. 페스트를 이겨냈습니다’ 하고 난리를 치죠. 좀더 봐주다간 훈장이라도 달라고 할 판이죠.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뭡니까?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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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의 초기에 그들은 남이 보면 하등의 존재 가치가 없지만 자신들에게는 대단히도 중요한 자질구레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데 놀랐고, 거기에서 개인 생활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와 반대로 남들이 흥미를 갖는 것밖에는 흥미를 갖지 않고 일반적인 관념만을 갖게 되었으며, 그들의 사랑조차도 그들 눈에는 가장 추상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잘 때나 이따금씩 희망을 갖게 되었고, ‘그놈의 멍울, 이젠 좀 끝장이 났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로 페스트에 매인 몸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으며, 이 기간 전부가 하나의 긴 잠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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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도의 특이한 점은, 공동체가 개인들의 재산을 접수하면서 그것을 그들한테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그 재산의 합법적 소유를 보장하고, 약탈을 참된 권리로, 소유를 소유권으로 바꿀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소유자들은 공공재산의 수탁자로 간주되고, 그들의 권리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에게 존중받으며 또 외국인에 대해서는 국가가 있는 힘껏 보호해준다. 말하자면 소유자들은 공공에 이익이 되고 그들 자신에게는 더한층 이익이 되는 양도를 통해 그들이 주었던 것을 모두 되찾는다. 이것은 주권자와 소유자가 동일한 토지에 대해 갖는 권리를 구별해 생각하면 쉽게 설명되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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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인 요소이다. 상승의 동력은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이다.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것은 첫 질문을 던졌던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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