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다윈도 그 위대한 저서 (종의 기원)에서 대뜸 자연선택부터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 저서의 첫 장은 우선 우리의 농작물이나 가축이 어떻게 인간의 인위 선택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길게 설명하고 있다. 다윈을 생각할 때 우리는 대개 갈라파고스 섬의 새를 먼저 떠올리지만 정 작 다윈은 그보다 농부들이 구즈베리(!) 변종을 만들어낸 이야기부터 꺼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하찮은 재료를 가지고 그토록 기막힌 결과를 빚어 낸 원예가들의 솜씨에 크나큰 놀라움을 표시하는 원예 서적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 기술은 사실상 간단한 것이고 마지막 결과를 놓고 본다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예외 없이 처음에는 가장 잘 알려진 변종을 재배하다가 그 종자를 뿌렸을 때 약간 더 나은 변종이 나타나면 다시 그것을 선택하는 식으로 되풀이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위 선택에 의한 이 농작물 개발의 원리는 바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195

지금까지 우리는 식량 생산이 토착적으로 시작된 지역이면서도 서로 대조적인 세 곳의 예를 살펴보았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한쪽 극단에 속하고 뉴기니와 미국 동부는 반대쪽 극단에 속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 대의 여러 민족들은 훨씬 일찍부터 토종 식물을 작물화했다. 그들은 훨씬 더 많은 종들을 작물화했고 훨씬 더 생산적이거나 소중한 종들을 작물화했다. 또한 농작물의 유형들도 훨씬 다양했고 집중적인 식량 생산을 발전시켰고 조밀한 인구를 더 빨리 증가시켰다. 결과적으로 근대에 들어오면서 더 진보된 기술, 더 복잡한 정치 조직, 그리고 다른 민족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유행병을 갖게 되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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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는 곧 훨씬 더 많은 식량과 조밀한 인구를 의미했다. 그 결과 잉여 식량이 생겼고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을 이용하여 그와 같은 잉여 식량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 그 두 가지는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화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가축화 . 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어지거나 끝까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궁극적 원인이 된다. 말과 낙타의 군사적 쓰임새와 동물에게서 얻은 병원균의 살상력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게 될 식량 생산과 정복 사이의 여러 연관성들이 모두 드러났다 - P127

간추려 말하자면 식량 생산이 독립적으로 발전한 곳은 세계의 몇 지역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각각시기가 크게 달랐다. 일부 이웃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은 그 같은 핵심 지역으로부터 식량 생산을 배웠고 기타 이웃 지역의 사람들은 그 핵심 지역의 식량 생산자들로 교체되었으며, 역시 각각의 시기는 크게 달랐다. 마지막으로, 일부 지역의 사람들은 생태학적으로 식량 생산에 적합한 곳인데도 선사 시대에 농업을 시작하지도 습득하지도 못했다. 근대에 와서도 바깥 세상의 물결에 휩쓸릴 때까지 수렵 채집민의 생활을 고수했다. 그리하여 식량 생산을 일찍 시작한 지역의 민족들은 총기, 병원균, 쇠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도 일찍 출발한 셈이었다. 그 결과는 역사의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수많은 충돌이었다. - P158

그 결과 식량 생산에 적합한 각 지역에서 사는 수렵 채집민들은 대부분 두 가지 중 한 가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웃의 식량 생산자들에 의해 쫓겨나든지 스스로 식량 생산을 받아들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수렵 채집민의 인구가 많아졌거나 지리적 조건 때문에 식량 생산자들의 이주가 늦어진 곳에서는 그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이 선사 시대에 농경을 도입할만한 시간이 충분했으므로 농경민이 되어 생존할 수 있었다. 미국 서남부, 지중해 서부, 유럽의 대서양 연안, 그리고 일본의 일부 지역 등이 그러한 경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열대 동남아시아, 직도 이남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 그리고 어쩌면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도 수렵 채집민들은 선사 시대에 농경민들에 의해 교체되고 말았으며 근대에 와서는 미국 서부의 대부분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비슷한 교체 현상이 있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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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1 17: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DYDADDY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날씨가 많이 따뜻했는데,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공기가 조금 차가워졌습니다.
초여름같은 주말이었는데, 내일은 또 다를 수 있겠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좋은 오후 되세요.^^
 

이상과 같이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생포한 사건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을 식민지로 만들지 못하고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식민지로 만들게 된 직접적 요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피사로가 성공을 거두게 한 직접적 원인에는 총기, 쇠 무기, 말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 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양 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 문자 등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총, 균, 쇠>는 그러한 직접적 요인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 요인들 덕분에 근대의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확인하겠지만, 그러한 요인들은 인류가 총기나 철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일부 비유럽계 민족들이 팽창한 배경이 되고 있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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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의 무서운 파괴성과 자연의 잔인함을 선명하게 인식 하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가장 심오한 고통에 노출된 인 간으로서 불교적 허무주의 같은 의지의 부정을 갈망할 수도 있 었다. 그러나 예술이 그들을, 그리고 생을 허무주의로부터 구해주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철학적 파토스로 해석해낸 니체는 이후 자신을 최초의 비극 철학자로 명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 이론을 들어 비극이 공포나 연민 같은 감정을 압축적으로 경험하게 해줌으로써 그런 위험한 감정을 정화해주는 것이라고 보았지만 니체는 비극이 공포와 연민 같은 감정 너머의 무엇을 제시한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비극이 진정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파괴로 인한 환희까지 를 포함해 우주적 변전의 영원한 환희를 긍정하는 정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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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판본의 문제. 현재 밝혀진 바로는 우리의 DNA에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남아있어 대약진 시기에 공존했거나 노예화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생 인류가 국지적으로 기원한 후에 다른 곳으로 퍼져 다른 유형의 인류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것은 유럽에서 가장 뚜렷한 증거를 보이고 있다. 약 40000년 전에 현대적인 골격을 가진 크로마뇽인이 우수한 무기를 비롯한 각종 발달된 문화적 특성들과 함께 유럽에 진입했다. 그때까지 수십만 년 동안 유럽을 독차지하고 진화해 왔던 네안데르탈인은 그로부터 몇천 년 이내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결과는 현대적인 크로마뇽인이 훨씬 월등한 기술 및 언어 또는 두뇌를 이용하여 네안데르탈인들을 감염시키거나 죽이거나 대체했음을 강력히 시사하며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농인 사이의 혼혈 중거는 거의 또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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