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말해서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는 곧 훨씬 더 많은 식량과 조밀한 인구를 의미했다. 그 결과 잉여 식량이 생겼고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을 이용하여 그와 같은 잉여 식량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 그 두 가지는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화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가축화 . 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어지거나 끝까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궁극적 원인이 된다. 말과 낙타의 군사적 쓰임새와 동물에게서 얻은 병원균의 살상력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게 될 식량 생산과 정복 사이의 여러 연관성들이 모두 드러났다 - P127

간추려 말하자면 식량 생산이 독립적으로 발전한 곳은 세계의 몇 지역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각각시기가 크게 달랐다. 일부 이웃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은 그 같은 핵심 지역으로부터 식량 생산을 배웠고 기타 이웃 지역의 사람들은 그 핵심 지역의 식량 생산자들로 교체되었으며, 역시 각각의 시기는 크게 달랐다. 마지막으로, 일부 지역의 사람들은 생태학적으로 식량 생산에 적합한 곳인데도 선사 시대에 농업을 시작하지도 습득하지도 못했다. 근대에 와서도 바깥 세상의 물결에 휩쓸릴 때까지 수렵 채집민의 생활을 고수했다. 그리하여 식량 생산을 일찍 시작한 지역의 민족들은 총기, 병원균, 쇠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도 일찍 출발한 셈이었다. 그 결과는 역사의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수많은 충돌이었다. - P158

그 결과 식량 생산에 적합한 각 지역에서 사는 수렵 채집민들은 대부분 두 가지 중 한 가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웃의 식량 생산자들에 의해 쫓겨나든지 스스로 식량 생산을 받아들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수렵 채집민의 인구가 많아졌거나 지리적 조건 때문에 식량 생산자들의 이주가 늦어진 곳에서는 그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이 선사 시대에 농경을 도입할만한 시간이 충분했으므로 농경민이 되어 생존할 수 있었다. 미국 서남부, 지중해 서부, 유럽의 대서양 연안, 그리고 일본의 일부 지역 등이 그러한 경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열대 동남아시아, 직도 이남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 그리고 어쩌면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도 수렵 채집민들은 선사 시대에 농경민들에 의해 교체되고 말았으며 근대에 와서는 미국 서부의 대부분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비슷한 교체 현상이 있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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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1 17: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DYDADDY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날씨가 많이 따뜻했는데,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공기가 조금 차가워졌습니다.
초여름같은 주말이었는데, 내일은 또 다를 수 있겠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좋은 오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