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서문임에도 순우리말과 뜻깊은 한자어구들이 머리 속을 울린다. 자주 쓰지 않거나 사장되었지만 아름다운 단어들. 어떤 이는 자주 쓰는 말로 풀어쓰지 않는다고 불평할지도 모르겠지만 하나의 사물에 꼭 맞는 하나의 단어가 있듯 하나의 의미나 감정은 가장 적확한 한 단어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어쩌면 우리의 언어 일상은 아름다운 굴곡이 있는 세상을 거칠게 깎아 비슷해보이는 평이한 단어로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담박한 생활과 비근한 사유의 집심과 근기는 오직 낮은 중심에서 생깁니다. 이미 낮은 중심의 공부에 관해서는 여러 글에서 자주 언질하였지만, 부랑조급한 마음과 태도로써는 근실한 생활과 긴 호흡의 사유를 일구어낼 도리가 없지요. 낮아야 비로소 보이고, 낮아야만 멀리 갈 수가 있습니다. 인문학이나 수행의 공부길은 인간됨을 통한 개입의 실천과 뗄 수 없이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혹 겸허나 빈터, 허정명철 혹은 적정을 말한다면 그것은 곧 존재론적인 것입니다. 생활을 줄여서 허영과 쏠림에서 벗어나고, 그제서야 드러나는 미립과 기미와 이치들에 주목해 보세요. 기명과 실제의 이론들은 이렇게 생성됩니다. 수입상과 유통상이다 못해 아예 표절의 동네 속에서 나번득이는 짓이 이젠 부끄럽지 않나요. 그래서 낮아지고 낮아지는 게 요령이지요. 그래야만 높아지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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