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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 - 조선의 귀양터 남해 유배지를 찾아서
박진욱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간만에 참으로 독특한 여행서를 읽었다
이 책은 서문에서 소개하듯 느리게 살았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당쟁에서 패배하여 유배되어 형벌 같지 않은 형벌을 받으며 생의 치열함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그 시간 속에 아름다운 공간으로 존재 했던 남해를 안내하는 책이다
그러고 보면 조선 시대의 유배는 권력 쟁탈에서 멀러졌을 뿐 알고 보면 요즘 말로 하며 안식년 휴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남쪽의 따듯한 곳에서 좋은 경치를 보며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을 터이니 말이다 물론 치열한 권력 다툼에서 멀어진 것 자체로 보면 권력을 잃은 자체로 패배감에 휩쌓일 수도 있으나 한 인간의 일생을 두고 보면 그렇듯 사색의 시간을 가진 것이 결코 나쁘진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책의 구성도 재미있다 본문 중 봉천사 묘정비 단락에서 이이명이 처음 귀양 왔을 때 봉천 가까이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30년 뒤 두 번째 귀양을 왔을 때도 처음 살던 집을 수리하여 살았다는 내용을 서술한 후 ‘ 일찍이 부군(김만중)이 귀양살이 하면서 초당에 매화를 두 그루 심었는데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부군이 돌아가시자 두 그루 매화 또한 쓸쓸히 말라 죽어 갔다 이때 이 공(이이명)이 섬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부군의 귀양집에 들렀다가 시들어가는 매화를 보고 자신의 귀양집 뜰에 옮겨 심었다 그랬더니 매화는 다시 무성하게 자랐다 ’ 라는 김만중의 후손이 지은 ‘ 서포연보 ’ 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작가가 이이명의 집터를 찾으려면 두 그루 매화나무를 찾아야 한다 매화나무의 수령이 500년도 더 되었지만 200년 된 매화 나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언덕을 내려오니 노인이 물었다 “집터를 찾았는가?” “예, 겨우 찾았습니다” “그래, 그거 찾아갖고 뭐할 끼고?”.. 이렇게 과거의 유배 흔적과 그 흔적을 찾는 현재와의 만남을 소개하고 여운을 남기며 한 단락을 마무리 하고 있는데 읽으며 깊은 감흥에 빠지게 하였다
이처럼 여러 일화를 소개 하고 유적지만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현지주민을 만나기도 하고 어우러지면서 남해 곳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실제 독자가 여행을 하는 듯 하기도 하고 옛 이야기에 빠져 유배된 자의 심정에 감정을 이입해 보는 상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삶과 면면을 보면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자본주의와 물질 문명의 홍수 속에 느림의 미학을 찾고자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미학을 남해라는 자연과 유재된 자가 가지는 심성의 느림을 접목시킨 것이다 하루하루 때우듯 바쁘게 사는 현대인인 우리가 한 번쯤 읽고 언제가는 나도 이런 여행을 해야지 하는 마음의 결심을 세우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