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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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홈 #문지혁 #문학과지성사

✨한 줄 정리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야기


문지혁의 『고잉 홈』은 삶의 터전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긴 이민자 혹운 유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다. 아홉 편의 이야기는 한국과 미국,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못한 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드넓고도 단순한 미국 땅에 적응하여 살려는 그들의 노력 어린 시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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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현은 항상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그 드넓음. 다른 하나는 그 단순함.

p.141 그녀가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이유는 사명감이나 헌신 때문이 아니었다. 해결하고 싶은 사회의 부조리나 시스템의 허점도 딱히 없었다. 영은 그냥 『뉴욕타임스』 기자가 되고 싶었다. 커가면서 영은 자신의 꿈이 속물적이라고 느꼈지만 동시에 크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뭐 어때서? 그녀는 속물적인 욕망을 대의와 정의로꾸미고 포장하는 데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런 그들에 비해 자신이 딱히 나을 것은 없지만, 세속적인 꿈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건 적어도 죄 하나를 덜 짓는 거라고 믿었다.


사람은 대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원한다. 그렇기에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하기도 한다.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고잉 홈'은 저마다의 이유로 미국행을 선택한 이민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는(좀 더 정확히는 '돌아가고자 하는') 소설집이다. 인물들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한국을 떠나 미국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땅을 터전 삼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한국에서의 삶만큼이나 녹록지 않다.

이방인으로서의 불안은 인물들이 미국행을 선택한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결과지만, 작가는 그들을 마냥 위태로운 상태로 두지 않는다(작가는 소설집의 제목을 '뜰 안의 볕'으로 생각하고 썼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아홉 편의 소설 모두 그들에게 다가올 볕을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집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조용히 응원하며 독자에게도 너만의 집이 있는지, 넌지시 질문한다.

'고잉 홈'은 미국행을 택한 이민자들의 이야기지만, 또 다른 삶을 꿈꾸며 삶의 터전을 옮긴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여기서 나는 '또 다른 삶을 꿈꾸며'에 방점을 찍고 싶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발전하는 개인의 모습. 그들이 열망한 기대와 희망은 지금, 여기 있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있는 것이기에 독자는 책을 읽으며 그들이 품은 희망과 기대를, 그들의 선택을 돌아보게 된다.

이 속에서 '집'의 개념은 다르게 확장된다. 단순히 생활하는 공간으로써의 집이 아닌 '나'라는 자아가 온전하게 들어찬 공간으로써의 집. 그속에서 '나'는 온전한 나를 이루고,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순간이 되면 집은 한 번 더 몸집을 부풀려 삶이 된다. 하지만 집(삶)은 언제나 멀리 있고, 지금의 힘듦을 감수하며 나아간다 할지라도 집(삶)으로 향하는 길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박혜진 평론가의 글 중 '과정이라는 지옥에서 성장을 분실한 채'라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이들이, 우리가 원하는 건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공간이자 시간인데,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자문하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그 순간을 ‘비겁'이라고 표현했고, 나는 그 대목에서 가슴이 콕 찔린 기분이었다.

가슴이 콕 찔린 기분, '비겁한가?' 자문하는 순간들.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나날, 오고 가며 잃게 되는 것들, 그러나 끝내 얻는 것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오래도록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떠남으로써. 머무르지 않고 나아감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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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지음, 임호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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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다정스러운무관심 #페터슈탐 #문학과지성사

✨ 추천 독자
| 존재의 실존에 대해 자주 고민하는 사람
| 도플갱어와 운명, 환상을 믿는 사람
| 사랑의 속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싶은 사람

✨ 한 줄 후기
| 무수한 선택으로 나아가는 돌이킬 수 없는 걸음


페터 슈탐의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존재와 실존,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막달레나’와 글쓰기 중 글을 선택한 ‘크리스토프’는 어느 날 그를 닮은 ‘레나’를 만나고, 그 이전에 자신의 젊은 날을 쏙 빼닮은 ‘크리스’를 만난다.

🔖
p.44-45 이따금 저는 제가 맡은 역에 동화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연기하는 저 자신을 보게 돼요. 그럴 때면 제가 그 역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이 저를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p.83 사실 나는 그녀가 무대에 서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고, 우리의 사랑이 그녀의 가슴속에 깃든 유일한 가능성이 아닌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p.133 젊은 파토스에 휩싸여 나는 그녀와 글쓰기 중 하나를, 사랑과 자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사랑과 자유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공존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이 가진 수많은 마음 중 하나이다. 존재에 대한 탐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문학은 존재에 대한 우리의 고민에 도움을 준다.

본 소설은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독자는 화자(크로스토프)의 기억에 의지해 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화자의 말이 사실인지 왜곡된 기억인지 알 수 없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작가의 서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크리스토프’의 말을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 선택하게 하고, 선택은 곧 실존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실존주의에서 상정하는 ‘나’는 ‘이미 존재하는 나에 대해 결정하는 나’이다. 즉, 실존하는 나를 인지하고 그런 나에 대한 미래를 선택하는 나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본질에 앞서는 실존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불공평함은 모든 존재가 안고 가야 할 슬픔이자 내일이다).

실존주의와 연결하여 이 소설을 읽는다면 ’크리스토프‘는 ’크리스‘를 젊은 날의 자신이라 믿고 ’레나‘를 ’막달레나‘와 동일시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개체이고, 매순간 선택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내린 선택에는 편차가 있고, 이것은 곧 다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이 소설의 키워드는 ’돌이킬 수 없는‘이다. ’크리스토프‘가 ’레나‘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크리스토프‘가 ’크리스‘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과거의 ’크리스토프‘가 내린 선택을 현재의 ’크리스토프’가 수정할 수 없다는 것, 실존하는 존재는 선택과 결정을 통해 나아간다는 것, 후회는 또 다른 최선을 배우게 한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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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넣고 다니기 좋아 틈틈이 읽은 책.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우리를 운명의 배 위에 띄울 수도 있지만, 나는 ‘무관심’ 보다는 ‘다정스러운’에 방점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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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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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마들렌 #박서련 #한겨레출판

💟 추천 독자
가식 없는 솔직한 화법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나’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 한 줄 후기
다름의 경계를 지우고 ‘나’를 향해 나아가는 화자들


박서련 소설가의 『나, 나, 마들렌』은 좀비 아포칼립스, 트렌스젠더의 임신, 상실과 애도 등이 담긴 소설집이다. 마치 화자의 삶을 살아본 것 같은 그의 화법은 독자를 더욱 끌어당기고, 독자를 화자 가까이에 세워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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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 야, 난 죽음에도 속도가 있다고 생각해.
문득 떠오른 그 말은 남편이 내게 한 것이었다.
늙고 병들어서 천천히 죽는 사람들이 있고 한 방에 탕 죽는 사람들이 있잖아.
남편은 손가락을 총구 삼아 내게 겨누면서 말했다.
넌 빨리 죽고 싶냐, 천천히 죽고 싶냐?
남편의 물음에 나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했다.
나한테 야, 라고 안 하면 안돼?
/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p.87 네가 사랑하는 젤로는 너를 사랑해서 어른이 되어버렸어. / <젤로의 변성기>


사람들은 때로 어떤 기준을 두고 그것의 안과 밖, 경계를 나누지만, 어느 쪽에 서서 반대쪽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경계의 바깥과 안은 서로 교차된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발표한 박서련의 소설을 묶은 이 책은 모두 다른 이야기임에도 ‘나를,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를 굳이 숨기지 않는 태도는 현실을 조금 벗어난 이야기와 작가가 가진 솔직한 화법을 통해 드러난다. 때로 화자는 차갑게 행동함으로써 제 마음을 숨기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뜨거운 마음이 존재한다.

작가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동성을 사랑하는 마음, 트렌스젠더의 임신 고민과 같은 경계 밖의 것(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경계의 안이 되고, 이는 곧 경계의 무의미함으로 나아간다)을 이야기 한다. 담담하고도 대담한 화자들은 그것으로 ‘다름’을 지우고, 자기 자신이라는 고유함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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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가진 솔직함과 대담함, 다양하게 뻗어 나가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 박서련의 소설을 읽을 때면 화자를 떠올리게 되고 그가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를 그것을 지워내려 하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존재. 그래서 오래 남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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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밝은 검정으로 - 타투로 새긴 삶의 빛과 그림자
류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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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밝은검정으로 #류한경 #한겨레출판

💟 추천 독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
타투 속 새겨진 누군가의 삶이 궁금한 사람
타투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

💟 한 줄 후기
타투에 새긴 상처와 삶, 누군가의 이야기


류한경의 『가장 밝은 검정으로』는 몸에 타투를 새긴 시인, 래퍼, 배우, 사진가, 타투이스트 등 10인의 이야기와 타투가 담긴 사진집이다. 이 책은 대답하는 사람은 있으나 질문하는 이는 없고, 그러나 읽는 이는 그 질문을 알고 있는, 동시에 누군가의 몸에 새긴 타투를 함께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듣는 책이다. 그들 몸에 새긴 타투를 바라보는 일은 곧 내 삶에 그어진 경계를 바라보는 일과 같다.

🔖
p.20 많은 사람이 어떤 의미를 몸에 지니려고 타투를 하는데, 나에게 타투는 의미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의미가 억압으로 작용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 시인 김선오

p.107 귀걸이 대신 귀 뒤에 타투를 새겼다. 머리를 묶었을 때 에뻐 보일 것 같았다. 내가 볼 수 없는 위치라 자주 잊고 살지만, 누군가 발견해줄 때마다 보물처럼 발견되는 기쁨이 있다. / 작가 홍승은

p.125 사람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자신이 어떤 지향을 갖고 살아왔는지 잊기도 한다. 게다가 나는 조울증이 있어서 울증 삽화가 심하게 오면 모든 것을 부정해버린다. 그런 시기에 이 타투를 보면 희미한 삶의 의지가 생긴다.
삶과 죽음의 비밀이 적힌 커닝 페이퍼 같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상징으로 피부를 채워서, 잊기 쉬운 것을 계속 확인하고 각성한다. / 무당 홍칼리


사진집 속 열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타투를 새긴다. 누군가는 그것이 예뻐서 타투를 새기고, 누군가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몸에 흔적을 남긴다. 그렇기에 타투는 곧 내가 되고 나의 지난 시간, 내일이 된다.

한국 사회에 살면서 나는 무엇을 가장 괴로워했나. 돌이켜보면 나를 괴롭힌 건 하고 싶은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사이에서 충돌하는 마음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가는 길이었고, 하고 싶은 건 내가 원하는 일이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점차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택하는 아이, 어른이 되었다.

타투에 대한 시선이 어떻든 타투를 한 사람들은 주변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을 바라보며 그것을 따라 걸은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타투는 개성 혹은 반항 사이에 있지만 나는 그것을 개성, 선택, 나라는 범주에 두고 싶다.

저마다 삶을 이겨내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은 모두 다를 것이고 타투도 그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무언가에 대한 기준과 범주, 틀이 명확한 이곳에서 타투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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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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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워크 #이얼프레스 #한겨레출판

💟 추천 독자
노동의 불공평함에 관심이 있는 사람
비도덕적으로 이루어지는 산업과 그 종사자들의 트라우마를 알고 싶은 사람
시스템의 도구 혹은 피해자에 대해 생각해보고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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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커와 선량한 시민 중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이얼 프레스의 『더티 워크(DIRTY WORK)』는 다수가 기피하는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과 그들에게 기대어 문제를 묵과하는 ‘선량한 사람들’, 사회 시스템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나쁜 노동자’를 만드는 사회구조를 담은 책이다. 총 4부로 나뉜 책은 교도소 내 정신병동 근무자와 드론 전투원, 도축 산업 종사자의 노동 환경에 주목하고 그들이 그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노동 현장에서 얻은 트라우마를 조명한다.

🔖
p.85 "난 세상 이쪽에는 옳은 일이 있고 저쪽에는 그른 일이 있다고, 옳고 그름은 그렇게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옳은 일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옳은 일을 할 거라고도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애초에 옳은 일을 하고 싶어서 그 자리에 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중략) '나는 시스템의 피해자였을까, 아니면 시 스템의 도구였을까? 난 어느 쪽에 섰던 것일까?'

p.195 그러므로 도덕적 외상은 "근본까지 닿아 있는 도덕적 신념을 위배하는 행위를 스스로 행하거나 막지 못하거나 목격하는 일"과 관계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산업재해다. 더티 워크를 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러한 산업재해를 당한다.

p.322 에버렛 휴스의 말을 빌리면, 더티 워커는 "우리 모두의 대리인"으로서 사회의 다수 시민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불미스러운 일을 수행하는데도 위임자인 우리는 더티 워커에게 거리를 두고 그들을 멸시한다.


더티 워크는 곧 ‘나는 하기 싫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책에서는 그 예시로 미국 내 교도소 직원과 드론 전투원, 도살업자, 시추 작업자, 실리콘 밸리의 화이트 칼라를 보여준다.

화이트 칼라를 제외한 앞의 직업군은 다수가 기피하는 일이자 우리 국민이 아닌 이주민, 즉 가난한 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직업이다. 작가는 산업 내 종사자를 만나 그들이 겪은 노동 환경과 그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들으며 가난한 자들에게 피를 묻히는 사회 시스템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나아가 그들의 노동력으로 깔끔하게 도축된 고기를 먹는 ‘선량한 시민들’에게도 더티 워크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이 책은 미국 사회 속 더티 워크로 치부되는 직업을 조명하고 있기에 약간의 이질감을 느낄지 모르겠으나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시스템과 그것을 방관하는 시민들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시스템의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고민하며 악몽을 꾸는 이들에게, 정말이지 우리의 책임은 단 하나도 없는 것인가 스스로 돌아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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