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지음, 임호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다정스러운무관심 #페터슈탐 #문학과지성사

✨ 추천 독자
| 존재의 실존에 대해 자주 고민하는 사람
| 도플갱어와 운명, 환상을 믿는 사람
| 사랑의 속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싶은 사람

✨ 한 줄 후기
| 무수한 선택으로 나아가는 돌이킬 수 없는 걸음


페터 슈탐의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존재와 실존,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막달레나’와 글쓰기 중 글을 선택한 ‘크리스토프’는 어느 날 그를 닮은 ‘레나’를 만나고, 그 이전에 자신의 젊은 날을 쏙 빼닮은 ‘크리스’를 만난다.

🔖
p.44-45 이따금 저는 제가 맡은 역에 동화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연기하는 저 자신을 보게 돼요. 그럴 때면 제가 그 역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이 저를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p.83 사실 나는 그녀가 무대에 서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고, 우리의 사랑이 그녀의 가슴속에 깃든 유일한 가능성이 아닌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p.133 젊은 파토스에 휩싸여 나는 그녀와 글쓰기 중 하나를, 사랑과 자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사랑과 자유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공존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이 가진 수많은 마음 중 하나이다. 존재에 대한 탐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문학은 존재에 대한 우리의 고민에 도움을 준다.

본 소설은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독자는 화자(크로스토프)의 기억에 의지해 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화자의 말이 사실인지 왜곡된 기억인지 알 수 없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작가의 서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크리스토프’의 말을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 선택하게 하고, 선택은 곧 실존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실존주의에서 상정하는 ‘나’는 ‘이미 존재하는 나에 대해 결정하는 나’이다. 즉, 실존하는 나를 인지하고 그런 나에 대한 미래를 선택하는 나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본질에 앞서는 실존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불공평함은 모든 존재가 안고 가야 할 슬픔이자 내일이다).

실존주의와 연결하여 이 소설을 읽는다면 ’크리스토프‘는 ’크리스‘를 젊은 날의 자신이라 믿고 ’레나‘를 ’막달레나‘와 동일시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개체이고, 매순간 선택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내린 선택에는 편차가 있고, 이것은 곧 다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이 소설의 키워드는 ’돌이킬 수 없는‘이다. ’크리스토프‘가 ’레나‘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크리스토프‘가 ’크리스‘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과거의 ’크리스토프‘가 내린 선택을 현재의 ’크리스토프’가 수정할 수 없다는 것, 실존하는 존재는 선택과 결정을 통해 나아간다는 것, 후회는 또 다른 최선을 배우게 한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
가방에 넣고 다니기 좋아 틈틈이 읽은 책.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우리를 운명의 배 위에 띄울 수도 있지만, 나는 ‘무관심’ 보다는 ‘다정스러운’에 방점을 찍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