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그 생활이 깨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삼시 세끼 꼭 제 시간에 챙겨 먹어야 하고, 그게 흐트러지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배가 안고파도 끼니 때는 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 잠도 마찬가지. 늘 자던 그 시간에 자야하기 때문에 그걸 넘겨버리면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의 스트레스는 왜 이런 데서 작동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정한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빠직- 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남들에게도 마찬가지.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잘 살아내기를 바라고 그래서 잘 먹고 잘 자기를 바란다. 맛있는 것 먹고 잘 자서 건강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유일한 것이다. 그래서 잘 먹지도 않고 잘 자지도 않고 규칙적이지도 않은 생활을 하는 사람과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질 않는다. 사람이 다 자기 습관과 생활방식이 있는데, 거기다대고 바꾸라고 하는 건 나 스스로도 싫어하는 편이라, 그냥 알아서 잘 지내는 사람과 교류를 하고 싶다. 자기 삶에 만족하고 잘 지내는 사람.



요즘엔, 내가 이런 쪽에 강박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지내는 것'에 대한 강박. 지금은 헤어진 애인이 '혼자면서 너처럼 완벽한 사람은 없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걸 칭찬으로 들었지만, 이제와서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혼자 잘지냈나, 내가 이런 쪽으로 너무 강박이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왜이러는 걸까.


나도 잘 먹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잘 먹이고 싶다...잘 먹여서 살 찌우고 싶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헤어진 애인에게 저주를 내려야겠다. 오늘의 저주는, 


'맨날맨날 시도때도없이 내 생각나라, 아주 그냥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내 생각 나라' 이다.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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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우리의 목적지였다. 네비에 바다를 찍어놓고 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틀었는데, 라디오에서는 DJ 가 MAROON5 의 <sugar>란 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뮤직비디오를 아주 많은 사람들이 봤다, 뮤직비디오가 참 달콤하다, 결혼하는 여러 커플이 나오는데 그 중 연기자가 아닌 실제 커플이 두 커플 섞여 있다,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평소에 마룬파이브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담 리바인의 목소리도 딱히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실상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는 손에 꼽는다- 관심도 없었는데, 실제 커플이 섞여 있다는 그 뮤직비디오만큼은 궁금했다. 옆에서 동행은 운전을 하는데, 나는 이 뮤직비디오를 볼 생각에 얼른 검색했다. 조수석에 앉아 혼자 뮤직비디오를 보는 일은 어쩐지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그 순간은 꾹 참았다. 


우리는 결국 바다를 보진 못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검색되는 뮤직비디오는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바다에 큰 흥미가 없었고, 평소에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딘가에서 기뻐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는 쪽이 훨씬 흥미로웠고, 바다보다는 그래서 이 뮤비가 좋았다. 레스토랑이었나, 패스트푸드점이었나, 나는 바다에 닿지 못한 동행과 함께 이 뮤직비디오를 봤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여자의 근육이 대단히 인상깊다. 나는 여자나 남자나 근육질이 참말 좋단 말이지.


처음, 바다는 우리의 목적지였다, 라고 쓰고 보니,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소설 속 문장이 떠올랐다. 거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주로 바다 위에서 데이트를 하는데, 바다는 그들의 친구였다, 라는 말이 나왔더랬다.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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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저녁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퇴근하고 집에 가 밥을 먹을라치면 저녁 7시30분은 족히 넘어, 11시경 잠드는 내게 식사 시간으로는 다소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퇴근하면서 회사 근처에서 밥을 사먹고 들어가자니, 늘상 순댓국에 뼈해장국에.. 소주를 곁들여야 하는 술안주 느낌이라,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남동생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라 했다. 풀무원 잇슬림인가 하는 걸 매일 배달시켜 먹을까, 했는데, 남동생은 내 생각을 듣더니 비용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집에 밥 있는데 그냥 밥 싸가지고 다니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경제적이기도 하지만, 혹여라도 매일 배달시키는 도시락을 먹지 못하고 밀리게 될 때는 큰 낭패일 터. 매일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귀찮고, 집에 가 설거지 하는 일도 영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그릇 하나에 밥과 반찬을 눌러 담으면 설거지도 간단하겠지, 싶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주에는 근무일 총 5일중 3일을 싸왔는데, 2일은 술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온 어느 하루, 동료가 '오늘 술마시자' 했는데, 도시락을 싸오고 보니, 그 밥을 처치하기가 곤란해 술약속에 거절을 말하게 되더라. 오늘도 마찬가지, 친구가 술마시자, 했는데, '도시락 싸와서 안돼' 하고 거절할 수 있었다.


반찬까지 싸면 냄새도 나고 번거로울 것 같아, 지난주에는 내내 볶아 왔었다. 닭가슴살과 마늘을 넣고 볶거나 계란이나 김치를 넣고 볶았는데, 이렇게 사흘 볶음밥을 먹으니 지겹다. 그냥 밥을 먹고 싶다. 주말에 엄마한테, 엄마 김치는 부담스럽고, 뭐 밑반찬 없을까, 했더니, 부지런히 시장 다녀오셔서는 우엉조림이며 버섯조림을 해두셨다. 덕분에 도시락통에 밥을 꾹꾹 눌러담고, 한 쪽에 엄마가 만들어준 밑반찬을 넣었다. 너무 신났다.



도시락은 이상한 설레임을 줬다. 어서 먹고 싶다는 설레임!

점심은 동료와 나가서 짬뽕을 먹었는데, 저녁에 맛있는 도시락 있으니까 굳이 점심 다 먹지 않아도 돼! 하는 일종의 해방감이 찾아왔다. 마치 그동안 저녁이 부실해서 점심 잘 챙겨먹었던 것 같은 이상한 논리가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오늘 짬뽕은 남길 수 있었다. 나는 도시락이 있으니까!



우엉조림과 버섯조림 그리고 김치볶음을 반찬으로 한 가벼운 도시락이었는데, 어서 퇴근시간이 되어 다들 퇴근하기만 기다리게 됐다. 퇴근시간이 다가올수록, 으어어~ 도시락 먹는다, 도시락!! 하고 너무 신났다. 그리고 방금 막 다 먹었는데, 진짜 너무 맛있다! 밥은 너무 좋은 것이야!! 



도시락 너무 설레인다!



지난주에는 도시락 먹고 집에 가서 술과 안주를 먹어 뭔가 메롱인 상태가 됐지만, 오늘은 집에 가면 바로 양치하고 자야겠다. 



도시락 진짜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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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6-11-2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락 싸와서 안돼˝. ㅎㅎㅎ 재밌어요. 왠지 다정하게 들리고. ㅎㅎㅎ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 반찬을 먹은지가 십년은 지났네요. 저는 오뎅조림을 제일 좋아했더랬는데.
김치 볶음도 좋았구요.

오늘 집에 가서 양치하고 바로 주무시는데 성공하셨나요? ㅎㅎ ( 전 실패할 때가 더 많아서리 ㅎㅎ )

헤마 2016-11-29 07:59   좋아요 0 | URL
집에 갔는데 남동생이 콩나물에 고추장 넣고 밥을 비벼 먹더라고요. 아, 정말 어찌나 먹고 싶은지, 미역국 한 사발 퍼서는 남동생한테 ‘나도 좀 줘‘ 하고 또 밥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사실 거의 실패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술약속 있어서 도시락 안싸왔어요. 헤헷.

아, 몬스터님, 그리고 저,

2016-11-29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들고 싶지 않아서 이 책을 내내 읽는데, 읽다보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그러니까 거의 마지막 즈음,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하기로 결정했을 때, 갑자기 욱씬 거렸다. 어쩌면 그 사람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하다가 실제로 그렇게 가정을 이룰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하고 살고 싶어하다가, 그렇게 살게 되겠지, 생각하는 순간, 욱씬거렸다. 왜 .....



"우린 끝난 사이였어. 당신도 분명히 알았고."

제스는 일어나 있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기억에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니콜스 씨도 일어나 있었다.

"우리 관계에 대해선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 알겠어? 하지만 우린 당신이 떠난 후에 최저 생계비로 겨우겨우 살았어. 그런데 이제 당신은 딴 사람하고 살면서 그 사람 애들을 부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우리 애들을 위해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고 해놓고 말이야. 그래, 그런 일이라면 난 분명히 안 좋은 반응을 보일 거야, 마티."

"내 돈으로 사는 거 아니야. 린지 돈으로 사는 거지. 당신 애들을 위해 린지 돈을 쓸 수는 없어."

"내 애들이라고? 내 애들?" (p.362)



며칠전에 내게 있었던 대화가 너무 생각나서 이 부분을 읽는데 너무 힘들었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든, 사실만 놓고 보자면 그는 나를 떠났고 다른 여자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니까. 책 속에서 마티는 '린지 돈으로' 라는 핑계를 댔지만, 현실의 내게는 .. 관두자. 부질없지, 다. 이렇게 여기서 백날 써봤자 뭐가 달라진다고...




제스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비가 내리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그녀 앞에 금발의 여인이 서 있었다. 검은 모직 원피스에 어울리는 구두를 신었고, 매장이나 은행에서 일하지만 록음악도 즐긴다는 인상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이 선택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잘랐다.

"마티가 여기 있나요?"

제스가 말했다. 여자는 입을 열ㄷ스 하다가 제스를 위아래로 훑어 봤다. 슬리퍼를 신은 발과 구겨진 하얀 바지를. 그러고는 몇 초 후에 살짝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보고, 제스는 그녀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는 제스가 누군지 알았다.

"기다리세요."

여자가 말했다. 

문이 반쯤 닫히고, 좁은 복도를 향해 그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트? 마트?"

마트.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와 티비 프로에 관해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한풀 꺾여 들려왔다. 여자의 목소리가 확 낮아졌다. 제스는 반투명 유리판 뒤로 그들의 그림자를 봤다. 그러고는 문이 열리고, 그가 서 있었다.

마티는 머리를 길렀다. 길게 기른 앞머리는 10대처럼 세심하게 옆으로 넘겨져 있었다. 제스가 알지 못하는 짙은 남색 청바지를 입었고, 살이 많이 빠졌다. 마치 제스가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제스."

제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둘은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그가 힘겹게 침을 삼켰다.

"말하려고 했어."

그 순간까지도 제스는 마음 한구석으로 이것이 진실임을 믿지 않으려 했다. 뭔가 커다란 착오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티는 친구와 지내고 있다거나, 마티의 상태가 다시 안 좋아졌는데 자존심 강한 마리아 코스탠자가 이를 인정하지 않은 거라고.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착오가 아니었다.

제스는 목소리를 되찾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여기야? 그동안 당신이 지낸 곳이……여기란 말이야?"

제스는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며, 더없이 깔끔한 앞쪽 정원과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이는 거실을 빤히 바라봤다. 진입로에 주차된 차에 엉덩이가 부딪혀, 제스는 한 손을 뻗어 균형을 잡았다.

"그동안 내내? 지난 2년 동안 우린 근근이 먹고 살았는데, 당신은 이런 고급스런 집에서 신형……신형 토요타를 굴리며 살았다고?" (p.353-354)



마티는 제스가 힘든 걸 모르지 않았다. 제스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몇 번이나 얘기했으니까. 그는 그녀가 힘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티가 자신이 편한 길을 택하고, 자신이 고생으로 밀어 넣은 여자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더이상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마티의 선택이다. 그의 선택이다. 언제나 우리는 선택 앞에 놓여있고,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게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취했다면 무언가를 놓아야 할것이다. 다, 당신 팔자다. 당신이 선택했고, 당신이 책임 져야 한다. 그 뒤에 찾아오는 기쁨도 당신 것이듯이, 슬픔도 당신 것이다. 후회도 당신 것이다. 



"난 지난 2년간 파산 상태였어요. 그런데도 마티를 보호하면서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더하지 않으려고, 자기 아이들 일로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구요. 그런데 그러는 동안 마티는 새 여자 친구와 저렇게 잘 살고 있었어요." (p.372)



분노만이 남지는 않기를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할 권리가 있으니까. 당연히 그걸 선택해야 하니까. 

다 괜찮을 것이다.

나도 괜찮을 것이다.




그들은 병원을 나서 하얀 빛이 쏟아지는 봄날의 거리로 들어섰다. 이해하기 어렵게도, 현실은 삶의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듯했다. 차들은 좁은 공간으로 후진을 하고, 버스는 사람들을 토해내고, 근처 난간을 칠하는 일꾼의 라디오 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다. (p.407)

지금은 머릿속이 온통 에드로 가득 찼다. 에드가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에드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어둠 속에서 속삭이듯 부르는 소리로 들렸다. 그가 커피를 건네며 가볍게 손이 스치면, 전기가 온몸을 궤뚫고 지나갔다. 그의 눈길이 그녀에게 머물면 기분이 좋았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p.421-422)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그가 제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봤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진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요. 내 삶 전체가 재앙으로 바뀌었는데, 난 그냥……괜찮았어요. 당신을 보면 안심이 돼요." (p.425)

"그럼 기다릴게요."
에드가 그녀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정말이냐고 묻듯이.
"기다릴 거예요. 당신이 원한다면요." (p.433)

제스는 이를 닦은 후, 욕실 불을 끄고 방으로 돌아갔다. 에드는 이미 거대한 호텔 침대에 누워, 그녀가 들어오도록 이불을 젖히고 있었다. 그가 침대 옆 스탠드를 껐고, 제스는 어둠 속에서 그의 곁으로 누웠다. 촉촉한 피부가 닿는 걸 느끼며, 매일 밤이 이렇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제스는 과연 그의 다리를 휘감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않고 조용히 그의 곁에 누워 있을 수 있을까. (p.432-433)

처음에 니키는 제스가 괜히 과장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물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제스는 여전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니키와 탠지는 제스의 방 앞을 서성이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고나서는 차와 토스트를 준비해 가져갔지만, 제스는 벽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창문은 여전히 열려 있고, 바깥은 제법 쌀쌀했다. 니키는 창문을 닫고, 사다리와 드릴을 차고에 가져다두려고 밖으로 나갔다. 차고는 롤스로이스가 없으니 휑해 보였다. 니키가 한두 시간 후에 접시를 가지러 돌아가보니, 차와 토스트는 차갑게 식은 채 침대 옆 탁자에 놓여 있었다. (p.443)

두 사람이 함께 그런 시간을 보내놓고 어떻게 단칼에 관계를 끊을 수 있는지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한순간 더없이 행복해 보이다가 다음 순간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될 수 있는지. 나이가 들면 그런 문제들이 전부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보아하니 아닌 모양이었다.(p.476)

"죄송해요. 아저씨 물건들은 거기 있는데 전부 박스에 담겨 있었어요. 이젠 거기 살지 않나봐요."
놀랄 것도 없는 소식이었지만, 제스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얻어맞기라도 한 듯 양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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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p.35)

인간은 웃어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 법이다. (p.137)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모든 어리석은 일은 우리 자신의 본성의 여러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도 최악의 측면과 최선의 측면을 아울러 인간 조건 전체가 담겨 있으며, 따라서 적당한, 아니 엉뚱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 역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p.206-207)

어떤 것에 계속 눈이 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자꾸 보게 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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