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 완결판, 두 제국 군주의 리더십 대격돌!
김형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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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형오씨의 이 책 <술탄과 황제>에 대해서는 출간 당시 언론에 호평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약간 코웃음을 치면서 당시엔 읽어볼 생각도 안하고 넘겼던 걸로 기억합니다. 5선을 하면서 18대 국회의 국회의장을 지냈던 이가 전반기 국회의장 임무를 마치고 은퇴하고 나서 펴낸 역사교양서가 얼마나 충실할까 싶었거든요.

 

시기적으로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전직 대법관이 편의점을 열어서 화제가 되었던 것과 비슷한 뉴스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의도 정치를 20년가량 해왔던 사람이 1453년 이후로 무수한 전문 학자들이 연구해온 주제인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대한 책을 썼다는 패기가 만용으로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은 제게 잘 쓴 교양 역사서 이상의 인상을 줬습니다. 이 책의 내용보다 (비록 박사학위 소지자이긴 하지만) 아카데미아 소속이라고 볼 수 없는 이가 전공자에 필적할만한 교양서적을 펴낸 국내 사례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정말 존경할만한 이 시대의 어른이고 이런 분들이 우리나라의 저력이라고 생각됩니다.(국회의장 퇴임 후 방문교수로 이스탄불에 체류하는 동안 전직 국회의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현지 공관 등으로부터 연구에 필요한 적극적인 지원을 받긴 한 것 같지만요.)

 

어차피 전문성으로는 평생 이 분야를 연구한 학자들의 서적을 뛰어넘기 어려운 제약을 일단 신선한 형식으로 참신한 구성으로 돌파한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책 구성의 아이디어를 얻은 순간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그가 얼마나 간절히 이 주제에 천착했고 책으로 펴내고 싶었는지가 느껴지더군요.

 

책에 등장하는 많은 그림들과 연표, 서지목록의 나열이 아니라 약간의 서평을 곁들인 적지 않은 참고문헌 목록들 역시 저자가 이 책을 쓰기위해 들인 노력을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내보여줍니다.

 

게다가 ‘골든 혼과 갈라타 언덕(http://hyongo.com/2020)’과 ‘루멜리 히사르(http://hyongo.com/1984)’처럼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할 지형지물들에 대해서 QR코드로 자신의 블로그 포스팅으로 연결해서 독자들이 자신이 답사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답사기 포스팅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2016년도 아니고 2012년에 나온 책에 말이죠.

 

QR코드로 연결된 우리나이로 70세인 전직 국회의장이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http://hyongo.com/ 인데 포스팅이 1974개나 있네요. ’디지로그(Digital+Analog)’의 인상깊은 사례였습니다. 많지 않은 선수로 국회의장이 된 것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군요. 심지어 올해 3월에 이 책의 개정증보판까지 내셨네요. 개정판 제목은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정말 존경스러운 열정입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총평하면 예전에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중 하나인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그녀의 ‘사일런트 마이너리티’를 섞어놓은 느낌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은 훨씬 더 충실한 것 같았고요. 저자의 의도대로 오스만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당시 심리와 인물의 개성에 대해서 잘 묘사하기도 했더군요.

 

이 책을 보면서 저는 첫째로 외교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범위는 아니지만(물론 술탄의 외교전략과 이에 대한 황제의 대응도 나오긴 합니다만) 전쟁이 발생하기 전부터 터키의 동맹 및 중립외교로 인해, 예상된 침공에 대한 구원요청의 실패와 황제의 로마카톨릭과 정교통합에 대한 반발, 베네치아 공화국의 늦은 결정 등 외교적으로 전쟁의 승패가 상당부분 결정되어 있었죠. 패배자임에도 훌륭했던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부족했던 점이 이 부분이 아닐지. 인간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말 존경하지만 그가 주창한 ‘동북아균형자론’과 ‘배일외교’는 국내적으로는 호소력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콘스탄티누스 11세와 겹쳐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다음 대통령은 국제정치에 대한 훈련이 좀 되어 있는 분이길...

 

둘째로 역시 종교는 인간의 진화의 산물이구나 싶었습니다. 공방의 당사자가 무신론자들의 집단(혹은 그나마 가장 가까운 베네치아 공화국)이었다고 가정해보니 과연 종교라는 발명품 없이 다른 밈(문화적 유전자)들만으로 이렇게 서로 사력을 다한 공격과 방어가 조직되고 지탱될 수 있다고 생각하긴 어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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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금속의 세계사 : 인류의 문명을 바꾼 7가지 금속 이야기 - 인류의 문명을 바꾼 7가지 금속 이야기
김동환.배석 지음 / 다산에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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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의 세계사>란 제목과 ‘인류의 문명의 바꾼 7가지 금속 이야기’라는 부제가 매력적으로 보였던 책입니다. 제1저자 김동환 박사님은 호주에서 국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사설연구소와 컨설턴트로 활동하시는 분이고 제2저자 배석님은 금속공학 박사님으로 대기업 연구소에서 부품&소재 연구 실무를 하시는 분이더군요.

 

처음에 훌훌 넘겨보니 입말로 썰을 푸는 느낌의 책이라 박대정심한 정통 학술서로 입문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약간 고민했네요. 뭐 제가 금속의 역사를 알아서 일에 써먹을 것도 아니라 그냥 이 책으로 충분하다 싶어서 그냥 읽었죠.

 

이 책을 보니 터키와 레반트, 이란과 이라크 징역이 고대사의 타임캡슐인 것 같아 한 달 이상 길게 가보고 싶은데 언제쯤 갈 수 있을는지. 루브르의 중근동 유적을 처음 봤을 때도 엄청나게 충격 받았는데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고고학이나 역사박물관 정도는 가볼 생각입니다.

 

가벼운 필체로 써내려간 이 책이 괜찮았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원소주기율표를 배우면서 가지게 된 고정관념과 달리 기원전까지 인류가 사용했던 금속이 겨우 일곱 가지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줬기 때문이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접경지대의 텔 타프 유적에서 발견된 송곳을 통해 약 7천년 전에 발견(화학적으로 추출)된 것으로 확인한 최초의 금속 ‘구리’부터 ‘납(기원전 6500년)’, ‘은(기원전 5000년)’, ‘금(기원전 4700년)’, ‘주석(기원전 3300년)’, ‘철(기원전 2100년)’, ‘수은(기원전 1500년)’의 순서로 발견된 일곱 가지 금속을 소위 ‘고대 금속’이라고 부른다네요.

 

그 다음에 발견된 금속은 거의 2천년 가까이 흐른 후에 발견된 비소(AD 1250)이고 다음은 아연(AD 1400)이라고 합니다. 18세기 프랑스의 라부아지에 이후에서야 지금 쓰이는 많은 금속들이 화학적으로 발견되었고요.

 

금속의 정의도 중학교 기술이나 공업시간에 배웠을텐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접했습니다. “열이나 전기를 잘 전도하고, 펴지고(전성) 늘어나는 성질(연성)이 풍부하며, 특수한 광택을 가진 홑원소 물질. 수은을 제외하고는 상온에서 고체”를 금속이라 불러야 한다네요.

 

전 그동안 최초로 목탄을 통해서 강철을 제련해낸 집단이 힛타이트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터키의 카만-카마휘위크 유적지 발굴 정보를 통해서 힛타이트인들이 정착하기 500년 전에 이미 아나톨리아 고원에 강철 야금술을 습득한 집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더군요.

 

재미있는 잡지식도 많습니다. 요새 금수저 담론을 불러일으킨 영어 관용구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표현이 세르반테스가 쓴 <재치있는 시골귀족 돈 키호테 데 라만차> 중 산초 판사의 대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네요.

 

또, 입자가속기에서 수은을 이온화하여 아광속으로 가속시키고 베릴륨과 충돌시키면 수은의 원자핵이 부서지면서 개중 0.01% 이상이 금의 원자핵으로 변한대요. EU의 거대강입자가속기를 2만년 넘게 계속 돌리면 금 한돈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섬짓한 사실인데 형광등에는 수은을 많이 사용하는 작업장의 공기 기준치보다 최대 400배나 높은 수은 입자가 꽉 들어 차 있다고 합니다. 수은 증기는 무색, 무취, 무미라서 인지할 수가 없다고 하니 형광등은 절대 깨지 말고 꼭 분리수거 하세요. (이래서 형광등 분리수거함이 따로 있었군요. 어릴 때 폐형광등으로 칼싸움하고 팍팍 깨면서 놀았던 기억 나는데...)

 

그나저나 이집트 신왕국의 람세스2세가 이끄는 청동기로 무장한 2만 군대와 강철로 무장한 힛타이트의 무와탈리 2세의 3만 5천 군대가 시리아 왕국의 패권을 두고 맞붙은 ‘카데시 전투’의 광경이 어땠을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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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우리나라도 이미 2004년 12월에 1원 동전과 5원 동전의 발행을 중단했다. 그 때문에 1원 단위 값에는 반올림이 적용된다.

 

59쪽

 

지구화학자 클레어 페터슨은 그런란드 지역에서 눈 속의 납농도를 조사한 결과 GM이 유연휘발류를 생산하기 시작한 1923년 이전에 쌓인 눈 속에서는 납이 거의 존재하지 않은 데 반해, 그 이후 눈 속의 납 동나가 꾸준히 증가한 사실을 발견했다.  
(중략)
그의 끈질 노력으로 1970년 미국에서 청정대기법이 제정되었고 1986년에는 드디어 유연휘발유의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미국인의 혈중 납 농도가 무려 80%나 감소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200년 <네이션>은 “우리 몸 속의 납 농도는 한 세기 이전 사람들보다 625배 많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62쪽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장품에는 미량의 납 성분이 들어간다. 특히 립스틱은 납의 함유량이 높은 편이라 조심할 필요가 있다. 미국국립보건원에 따르면 여성들은 평생 최고 3kg 가량의 립스틱을 먹거나 흡수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93쪽

 

은은 650가지 이상의 세균을 죽일 수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은에서 발생한 이온은 세균의 세포벽 안에 들어가 세포막을 손상시킨다. 또 세균의 단백질 성분에 변화를 일으켜 세포의 활성화를 막는다. 이 과정에서 결국 세포는 파괴되고 만다. 다만 은은 어디까지나 향균제다. 세포분열을 하는 세균에게만 통할 뿐, 애초에 세포벽이 없는 바이러스는 무찌를 수 없다.
(중략)
강한 항균력과 다르게 독을 감별하는 은의 능력은 그다지 탁월하지 않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은은 독성 물질은 황화합물과 반응한다”라고 해야 빈틈없이 안전한 상식이 된다.

 

146쪽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그의 대표작 <노동과 나날>에서 인간의 역사는 1. 황금시대, 2. 은시대, 3. 청동시대, 4. 영웅시대, 5. 철시대라는 연속된 다섯 시대로 나뉜다고 말하고 각각의 시대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청동기와 철기 시대구분이 이렇게 오래 전부터..)

 

209쪽

 

인기 좋은 금속의 비결은? 그냥 철의 역학적 성질 그 자체다. 우선 매장량이 많다 보니 값이 꽤나 저렴하다. 게다가 성형이 쉽고, 다른 원소나 금속과도 잘 어울려 합금 만들기가 용이하다. 덕분에 철의 경도와 강도를 쉽고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단결정철’의 인장강도를 10, 경도는 3이라고 했을 때 탄소, 규소, 니켈, 몰리브덴으로 합금한 ‘오스폼드 강’의 인장강도는 2930까지, 경도는 1200까지 높아지게 된다. 순철에다가 0.035~1.7%의 탄소를 첨가하면 갑자기 1천배 이상으로 강하고 질긴 강철도 변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납으로 금을 만들어 내는 마법 같은 수준의 변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55쪽
환경부는 2012년부터 2년 동안 전국의 어린이(만6세)부터 청소년(만18세) 1820명을 대상으로 체내 유해 물질 농도와 환경 노출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수은 농도는 1.93데시리터였고, 청소년의 수은 농도는 1.90데시리터인 것으로 나왔다. 이는 캐나다보다 7배나 높고 독일보다는 무려 19배나 높은 수치다.
(수은 광산 개발금지와 2020년부터 수은사용제품 제조 및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2013년 미나미타 협약은 아직 미발효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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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의 역사 - 매일 5억 명의 직장인이 일하러 가면서 겪는 일들
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책세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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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의 역사(원제는 Rush Hour)>의 저자 이언 게이틀리(Iain Gately)는 홍콩 태생으로 케임브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하신 분인데 다른 쓰신 책이 <담배와 문명>, <음주:알코올의 문화사>네요.(왠지 오탱 형이 생각나네요.) 제임스 워드가 쓴 <문구의 모험>처럼 지난 수백년 동안 우리네 일상에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필수적이었던 분야에 대해 풍부한 지식의 좌판을 펼친 것 같은 책입니다. 최근들어 근본적인 변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라는 점도 같지요.


제1부 '통근의 탄생, 성장, 승리'는 저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출퇴근이 탄생한 시기부터 현재까지 개인들이 일터와 쉼터를 분리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원거리를 출퇴근하는 행위의 역사에 대한 요약입니다. 제2부 '지옥철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현재의 통근에 대한 이야기이고, 마지막 제3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는 근미래의 통근에 대한 여러 관점과 예견들을 소개하면서 나름의 예측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저자 자신도 햄프셔에서 런던까지 하루에 왕복 4시간 이상을 통근에 할애하고 있으면서도 통근 예찬론자에 가깝다는 사실이 재미있더군요. 직장에서의 근력소모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큰 편이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뭐 그래도 통근이라는 행위가 평균적으로 도시인들의 24시간 중 상당한 기간을 차지하고, 통근에 소요되는 시간 전후에도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물론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가볍게 읽어볼 가치가 있었습니다. 일단 교외(suburb)란 표현도 통근으로 인해 생겼으니까요.


저자는 최초의 통근을 철도가 개통된 1833년 개통 당일 스톡턴-달링턴 철도의 기관차가 이끄는 21량의 석탄화차에 붙은 'Experiment(실험)'이란 이름의 객차가 매년 20만 명의 승객을 실어나른 것으로 보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당시 벌크화물의 주된 운반수단으로 쓰이던 운하 운영업체들의 과도한 이용료 요구와 여름의 가뭄이나 겨울의 결빙으로 인한 화물운송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치했던 철도에서 몰랐던 잠재력을 발견한 것이죠.


건설 및 토목 업계에서 회사의 신뢰도를 상징하는 시공실적을 왜 Track Record라고 부르는지 몰랐는데 이 책을 보니 1846년 한 해에만 영국 내에서 1만 5천 킬로미터의 철도건설 사업제안이 의회를 통과되었을 정도의 철도 광풍 시대에 사업 시행자들의 '선로 건설 기록'에서 유래했더군요. ㅎㅎ

또, 철도의 정기권 제도가 사전 구매자들에게 휴가철 내내 할인 혜택을 제공하던 영국 해안지대의 증기선 운영자들을 모방했다고 합니다.


지금 철도는 안전의 대명사이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철도는 정말 위험한 탈 것이어서 매표소에서 승차권뿐만 아니라 Railway Passengers' Assurance Company라는 보험회사의 생명보험 상품도 함께 판매했다고 하네요.


철도로 인해 표준 시간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시계산업이 발달하고 손목시계가 널리 퍼진 것은 많이들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마을마다 자기 교회 종소리로 알 수 있는 고유의 시간으로 살던 사람들이 철도로 인해 1분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되었을테니.


철도 통근시 통근자들 사이의 '침묵의 규약'이 관습으로 형성되면서 열차 내에서 소비되는 책과 신문의 범람과 이로 인한 문맹률의 하락을 불러왔다고 하는데 비싼 운임과 정기권 비용을 낼만한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이었으니 그런 것 아닐까 싶어서 갸우뚱 했습니다.


미국과 달리 영국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당시엔 '동력 수레' 수준의 개념이었죠.)의 도입이 늦었던 이유를 1865년에 제정된 도로상기관차법에서 기계식 차량이 공용 도로에서 운행할 경우 사람 한 명이 60보 앞에서 걸어가면서 붉은 깃발을 흔들고 나팔을 불어야 하며, 차량 속도는 교외에서는 시속 6km, 도시에서는 시속 3km를 넘을 수가 없고, 그런 차량을 운전 및 조종하려면 최소한 세 명 이상을 고용해야 한다고 규제하고 있었던 영향도 있다고 하는데 법이 기술발전을 가로막았던 좋은 사례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무절제한 자동차 열풍을 비판하는 말들도 많지만 당시 19세기말 축력(말)에 의존한 교통에 기반한 대도시의 끔찍한 상황을 보면 그리 쉽게 비판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1989년 뉴욕에서 열린 국제도시계획학회의 최우선 의제가 말로 인한 공해 해결이었을까요? 농부들이 추수기에 바쁘다보니 말똥을 수거해가지 않을 경우에 공터에 말똥이 20미터 높이로 쌓였을 지경이었으니 그 악취와 침출수, 세균오염 등은 오죽했을까 싶네요.


모델 T를 만든 헨리 포드가 '이 도시는 죽을 운명이다. 우리는 도시를 떠남으로써 도시 무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선언하고 디트로이트로부터 15km 떨어진 곳에 2천에이커의 부지를 확보하는 등 '교외'라는 개념을 통찰했다는 것도 신기하더군요.


최초의 교통 신호등은 존 피크 나이트란 사람이 고안해서 1868년 런던의 한 교차로에 설치된 것이라고 합니다. 붉은 색과 초록 색의 가스등을 이용해서 정지 신호와 출발 신호를 보내는 장치였는데 설치 한 달만에 폭발해버렸다고 하네요.


사랑스러운 디자인의 베스파(Vespa:말벌)는 1946년 엔리코 피아조에 의해 로마 골프 클럽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초반 중국과 수교를 했을 때 베이징의 넓은 도로를 가득 채운 똑같은 색깔과 모양의 자동차 물결이 엄청 신기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옷도 비슷한 인민복을 입은 사람들이라 더 강렬했었죠. 기어가 하나 뿐이고, 핸들은 비치크루저 스타일로 휘어있으며, 원시적인 브레이크(1932년에 생산된 자전거 모델을 본뜬)였던 이 자전거는 무려 5억대 이상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달용이라는 선입견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되지는 못하지만 정말 편리하고 고장안나는 혼다의 자랑 C100 오토바이(대림혼다의 citi100이 혼다 오토바이의 라이센스 버전이죠. 이걸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한 젊은이도 있는데 고장 한번 안났다고 하더군요.)도 과거의 노새처럼 볼품없다고 여겨져서 주목받지 못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통수단입니다.


개인적으로 왜 자전거전용도로를 붉은 색으로 칠하는지 몰라 궁금했는데 의문을 해결했습니다. 항공에서 '활주로 지연'을 tarmac delay라고 하는데 'tarmac'의 원뜻은 '쇄석과 타르를 섞어 굳힌 포장재료'를 뜻하더군요. 1970년 영국 버킹엄셔주의 도시인 밀턴 케이스의 도시기본계획에 따라 최초로 설치된 자전거 도로가 tarmac으로 포장해서 붉은길(Redway)'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휴우 1부에서 인상깊었던 내용들을 정리하는 것도 이렇게 길다니. 말씀드렸던 것처럼 2부는 현재의 통근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치한들의 성추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성 전용 객차(이름이 '꽃의 열차')가 1912년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니 생각보다 빠르네요.


뭄바이의 통근 노선인 뭄바이 교외철도는 1953년 영국이 인도대륙철도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건설한 철도인데 지금도 매일 사망자가 10명씩 나오고, 지난 10년 동안 사망자가 3만 6천명이라는데 이 숫자가 너무 아득해서 현실로 와닿지가 않네요. 우리나라에서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대략 4천명 정도인데...


자동차 통근자들에게 도로 정체는 열차나 버스 통근자들이 겪는 승객 욱여넣기(이게 표준어였군요.)와 같은 느낌이죠. 출퇴근길 정체에 시달리는 통근자들을 칭하는 Road Rage로 인해 이름을 떨친 러시 림보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들이 좋더군요. '도로를 따라 똑같은 방향으로, 속도 제한을 준수하고 맘대로 멈출 수도 없는 제약으로 인해 긴장은 가중되고', '공식적인 의사소통용 몸짓 언어를 갖고있지 않은 제약(비상깜빡이를 빼고요.)', '서로 마주볼 수 없고 상대방의 꽁무니만을 보게되는 비대면 상황의 지속', '운전자가 욕을 하고 소지를 질러도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무기력감' 등의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설명들이 유용했습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는 운전 중 예의범절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청정지대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이죠. 기리야마 본진의 신상목 사장님께서 일본 거주 시절에 경험한 일본인들의 운전습관에 대한 글을 봤는데 일본의 운전자들이 운전석의 선(禪) 수행자처럼 보였고, 예의범절을 교환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처럼 존경스럽더군요.


호주의 Perth 시에서는 30분 내외의 여행 시간에 맞춰 대중교통을 재편했고, 그 결과로 근린 조성과 보행자 친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Neo-Uranism의 전형으로 꼽힌다고 하는데 BRT와 자전거를 활용해서 도시 중심 어디에서도 대중교통과 도보로 30분 이내에 행정중심복합도시 어느 곳이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세종시도 비슷한 지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한창 건설 중인 도시인 관계로 평가는 하지 않겠습니다. ㅠ.ㅠ)


통근자들의 소비성향이 휴대성, 소형화, 연결성을 추구하는 신제품들의 개발이라는 혁신을 촉진했다는 저자의 분석도 일리가 있더군요. 저는 최초의 상업용 휴대전화 서비스가 고속철도에 처음 도입되었는지도 몰랐거든요.


그리고 산업혁명 이전 영국의 상류층과 중산층에게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시간이 아닌 사교의 기회였기 때문에 아침을 먹고 나와 저녁 식사 전까지 따로 식사를 하는 문화가 없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소위 신사들은 침묵과 고독 속에서 음식을 집어삼키는 것을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차라리 굶었다고 합니다. 뭐 결국은 lunch가 슬금슬금 일상으로 들어왔지만요.


헥헥 쓰는 것도 힘드네요. 이언 게이틀리는 마지막 3부에서는 통근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구 선진국들이 인도와 같은 해외로 전화상담 등의 업무를 아웃소싱하면서 자국 내 통근수요는 줄게 되지만 오히려 새로 들어선 전화상담센터 주변의 도로 정체는 증가하게 되는 점을 비꼬고, 정부가 아무리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권장하더라도 고용된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집에 일하다보면 고용주가 언젠가는 다른 어딘가의 누군가가 더 적은 월급을 받고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지 않을까 두려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터로 출근해 능력 뿐이 아니라 얼굴도 보여주고, 정수기 앞에서 서로의 아이 이름까지 묻고 답하는 잡담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게 유리하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수긍이 가더군요. 내 업무의 아웃소싱을 방지하기 위한 특효약이 통근인 셈이죠.


IT업체의 경우 구글버스와 같이 통근수단을 제공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원격 근로의 아킬레스 건인 자료 보안의 문제때문이라는 점은 미처 몰랐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것이 연료를 아끼고 매연을 덜 배출할지는 몰라도 이로 인해 IT분야에 추가로 투입되어야 하는 에너지와의 비교도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현재 IT업계가 전세게 전기의 10%나 사용하고 있다네요. 저자는 원격 근무시 보안 및 버퍼 유지로 인해 일반적인 서버 데이터보다 많은 용량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또한 저자는 싱클레어의 C5나 세그웨이, 외바퀴 전기스쿠너 라이너 등 대안적인 퍼스널 교통수단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자동차를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마이크로 모빌리티들이 장애인 보조용 의자차나 브롬톤 자전거의 영역을 빼앗아올 수 있을지 의문이고요. 이는 기술적이거나 편의성 부분의 문제가 아닌 인도와 차도 구분과 같은 법적이고 관습적인 부분의 제약때문일 겁니다.


저자는 통근으로 인해 현대인들이 겪고있는 이런 고난들을 열거하고 있고, 통근시간의 증가를 삶의 질이 저하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국제기구의 판단기준도 소개하지만 통근자들은 불행한 사람이고 통근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한 개념이 1939년 뉴욕의 세계박람회에서 GM의 후원으로 설치한 1960년대의 미국에 대한 상상 모형에 등장했었고, 앨런 머스크의 하이퍼루프를 가동시키는 진공 튜브 열차와 유사한 공기 압축식 철도가 이미 1847년에 건설되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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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쪽


처음에는 철도 회사마다 운행 시간표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시간이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대부분의 회사들이 1840년 11월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가 도입한 '철도 표준시간(GMT:Greenwich Mean Time)'을 채택하게 되었다.


82쪽


'통근하다(commute)'라는 단어는 패터슨-허드슨강 철도에서 유래했다. 1843년에 승객 가운데 일정 기간 동안의 승차 요금을 미리 '일괄 지불(commute)'하고 싶은 사람, 즉 할인을 조건으로 정기권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회사의 대리인과 만나 약정서를 작성"하라는 권유가 있었던 것이다.


145쪽


최초의 상업용 자동차 라디오는 1930년에 Galvin Corporation이 개발한 Motorola 제품이었으며, 나중에는 이 상표명이 회사 이름이 되었다.


245쪽


SUV 판매량이 급증한 원인으로 미국 남성들의 남성성 회복과 군용 장비에 대한 애호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일반 승용차보다 월등히 큰 크기에 있었다. 사람들은 더 큰 차량을 보면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큰 차량에 탄 사람은 스트레스가 덜하다. SUV는 바로 이런 위협의 인식에 맞춰서 진화했으며, 그 어떤 도전에도 끄떡없는 능력을 강조하는 광고의 지원을 받았다.


284쪽


최초의 상업용 휴대전화 서비스는 1969년 뉴욕과 워싱텅 DC를 오가는 고속철도 메트로라이너 열차에 처음 도입되었다.


316쪽


통근자들이 마주하는 모든 표지판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거기에 적힌 내용은 단계적 공개의 원칙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중략) 정보는 반드시 알 필요가 있을 때 중져야 한다. 선택지가 너무 많을 경우 군중이 얼어붙게 되고, 런던 지하철의 통로 내에 막힘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396쪽


사우스 데번 철도회사는 1847년 전설적인 공학자 킹덤 브루넬이 설계한 공기 압축식 철도 구간을 건설했으며, 조용하고 매연이 없는 대기 속에서 최대 시속 110km의 속도로 엑서터에서 뉴턴 애벗까지 승객을 실어 날랐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쥐들이 가죽 풀무를 갉아서 구멍을 내고 금속제 설비가 바닷바람에 부식되면서, 겨우 이듬해에 가동이 중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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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는 움직인다 -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
송민순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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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집권기 외교부장관으로 일하셨던 송민순 전 장관님의 회고록을 지난 주말에 읽었습니다. 얼마 전 문재인 후보와 관련된 논란으로 인해 화제가 된 책이기도 하죠.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4부로 나뉘는 550페이지 가량의 책입니다.

책 제목 '빙하는 움직인다'는 북핵문제가 불거진 때로부터 근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해결은 제자리걸음인 현 생황과 바위처럼 자리를 지키는 것 같지만 매년 움직이는 빙하처럼 북핵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를 담은 표현입니다 1999년 6차 4자회담에 차석대표로 참석했을 때 언론 회견에서 본인이 했던 '회담이 빙하의 움직임과 같다'는 말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전 33년 간 외교관 업무를 해온 전직 관료가 정성을 기울여 쓴 회고록이라 궁금했습니다. 얼마 전 읽었던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의 책이나 이 책처럼 공공의 영역에 오래 종사한 분들이 회고록을 많이 펴내주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퇴직 후 감투 찾아쓰기 급급해하는 문화는 제발 없어지고, 회고록을 집필해서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도움도 주고, 그들 앞에서 떳떳하게 일했다고 자부하는 공직문화가 형셩되면 좋겠네요.

제1부는 1989년 위성이 탐지해낸 영변핵시설로 인해 시작된 핵문제가 1993년 북한의 NPT탈퇴 선언과 '서울 불바다' 발언 등 등 험악한 대치 국면으로 갔던 시기를 다룹니다. 김영삼 정권 시절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주고 중유 50만톤을 공급하고, 조미관계 정상화의 대가로 핵개발을 폐기하는 제네바합의(94.10)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라는 국제기구가 설립되었고 협의 당사자도 아니었던 한국이 경수로 건설비용의 70%가량을 부담하면서 말이 많았죠.

임기말 클린턴 정부의 의욕적인 노력으로 제네바 합의의 이행이 잘 되는 듯 했지만 2000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군사용 미사일 or 위성발사용 로켓)와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으로 인해 클린턴 임기내 평화기조 정착은 무산됩니다.

2003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경수로는 2002년에서야 첫 콘크리트 타설을 할 정도로 지지부진 하였고(합의 직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 --;),  2001년 출범한 조지 부시 2세 행정부는 2002년 북한의 우라늄농축 의혹을 제기하며 제네바 합의를  선언합니다. 당시 저자는 싱가폴 참사관, 하버드 유학, 외교부 북미국장, 외교통상비서관 등으로 정책결정의 핵심에 있지는 않았기에 관찰한 사실관계 위주로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제2부에서 다루는 2003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제2차 북핵위기는 미북중간 3자 회담, 한국이 추가된 4자 회담을 거쳐 러시아와 일본도 참여한 6자 회담으로 다자관계를 통해 2005년 '9.19 성명'으로 합의에 이르게된 과정과 그 이행에서 암초가 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계좌문제 등을 다룹니다. 저자는 이 시기 외교부 차관보(당시 장관은 반기문), 6자 회담 한국 수석대표를 맡아 북핵과 관련된 외교정책을 주도했습니다.

고만고만한 소국이 강대국들을 상대로 국제안보와 관한 민감한 사안을 다루며 자국의 이익을 지켜나가는 다자회담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러한 협상테이블에서 합의를 도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접해볼 수 있어서 감사할 정도였습니다.

제3부는 저자가 노무현 정권 때 신설된 외교안보실장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아 노무현 정권과 조지 부시 2세 대통령간의 조율을 하고 BDA문제 해결 후 '9.19성명'의 이행을 위한 실행계획인 2007년 '2.13합의' 에 도달하기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상대국 대표들과 1대1로 대화하는 내용들이 가장 인상깊더군요. 본인의 구상을 한 장의 종이에 정리해서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 그 자리에 당연히 요구되는 능력이지만 자리에 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핵실험으로 인한 미국과 한국 국내 정치의 비판, 겨우 2500만달러의 자금동결로 인해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호기를 놓치게 된 경위, 미국 내 강경파들의 북한에 대한 깊은 불신과 BDA를 둘러싸고 결정적인 순간 드러난 중국의 체면중시로 인해 날아간 기회는 정말 아쉽더군요. 이젠 중국의 굴기로 인해 2007년 당시보다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지요. ㅠ.ㅠ 게다가 중국이 베이징에서 의장국이 되는 등 6자 회담에 나름 투자를 많이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미국에 MD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이미 경북에 THAAD 배치가 초일기에 들어왔으니 다자협의의 가능성은 더 낮아졌지요.

제4부는 '2.13합의'의 추진을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이라는 플랜이 한미양국의 정권교체기로 인해 사실상 무산된 상황에서 좀 더 포괄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위 UN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표결과 관련된 '북한보고 논란'이 이 안에 몇 페이지 가량 언급되어 잇지요.

저는 문재인 후보가 이라크에서 샘물교회 선교단을 납치한 탈레반 단체가 요구했던 신임장(아그레망?)을 발급하자고 했다는 사실에 좀 놀랐습니다. 사실관계를 두고 다툼이 있지만 대북인권결의안 찬성 여부에 대한 북한의 의사를 물어보자는 말을 했다면 외교문제에 대한 판단력에 의구심이 들고요.

이미 얼마나 형편없는 인물인지야 인질 협상 성공 후 요원 사진 노출, 2015년 새누리당 입당신청 및 재보선 공천신청 등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이 책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더군요. 송민순 전장관님이 이 책 전체에서 혐오의 감정을 표출한(은근하게나마) 유일한 인물이 김만복인 것 같습니다. 노대통령은 왜 이런 함량미달을 국정원장으로...

저자가 우회적으로 비판한 임기막판 실효적인 북핵문제 해결에 전념해야할 시점에 남북정상회담 병행추진, 아마추어적인 '종전선언' 논의 등도 아쉬웠고요. 다만 당시 야당쪽이 군사작전권은 갖지 않겠다고 하면서 걸핏하면 대북 강경 군사행동을 주문하는 '안락의자의 전사'들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쪽 손을 들어줄 생각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미국의 전략과 역할분담, 국군의 역량강화 차원에서 필요했던 전시 전작권 이행을 무기한 연기한 분들이니.

재미있는 여담들이 많은데 항공과 관련해서 1997년 호놀룰루에서 열린 한국의 미사일 개발능력에 대한 한미간 실무회담에서 미국이 미사일 관련 기술 이전 허가의 조건으로 '한국 민간기업의 드론 개발과 생산 금지'를 요구했었는데 당시 ADD와 항우연이 포함된 협상단을 이끈 저자가 이를 막아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저자는 핵무장한 북한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반도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한다는 신념으로 한반도 비핵화 외교를 추진해왔고, 입부 33년만인 2008년 2월 말일 '어떤 국가도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면 해결의 객체가 되어버린다는 냉혹한 역사의 교훈을 다시 새기면서 스스로 우리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 되어달라'는 퇴임사를 남기고 외교 일선을 떠났습니다.(민주당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역임)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한국 오교의 핵심을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퇴로가 없는 선택을 강요받지 않도록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는 데 있고, 사드 배치 가능성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드를 배치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분단은 이미 70년이 넘었고, 북핵문제에 대한 그간의 노력이 무산된 상황입니다. 작년 9월 북한의 제5차 핵실험에 이어 잠수함 발사 미사일 실험까지 했지만 저자는 아직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북미수교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지렛대로 우리가 분단과 핵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방안을요.

그런데 저자가 예정된 출간일을 1년이나 넘길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서 펴낸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총선 직전의 정쟁의 도구로만 소비되어버리고 공론장에서 별다른 논의가 된 것 같지 않아 아쉽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보다보니 실제로 역량도 별로 없는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부 산하의 통일국 정도로 개편하는 것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노대통령과 저자가 나눈 대화 중에 '값아서'라는 표현이 나오길래 오타인가 했는데 '갋다'라는 경상도 방언이 있었다니. ㅎㅎ '애써 따지고 괴롭히다'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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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1979년 인도는 위성발사용 로켓을 조립 장소에서 발사 장소까지 소달구지로 운반했다. (첨단장비를 원시적인 수단으로 운반했을 때의 영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어쩌면 보안유지를 위한 허허실실 책략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74쪽

한반도 분단 후 70년간 북한은 3명의 지도자가 통치한 반면, 미국과 한국은 각각 12명과 11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정치 시계의 속도가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대북정책을수립해 손에 잡히는 결과를 보여주려면 다음 대선 또는 중간선거까지 길어야 2년 정도밖에 여유가 없다. 북한은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이처럼 짧은 시간표에 맞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260쪽

동아태 차관보는 세계 6개 지역을 나누어 담당하는 책임자의 한명이고 국무부에는 통틀어 35개의 차관보급 직책이 있다. 국무장관이 차관보로부터 상세히 보고를 받을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270쪽

레바논 파병은 이라크와 달리 유엔 깃발 아래의 평화유지군이었다. 한국은 규율이 잡힌 강한 군대를 가진 국가 가운데 역사, 인종, 종교, 정치 면에서 중동에 편견이 없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이다. 레바논 파병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분명했다.

364쪽

우리의 미래에 대한 본질적 문젱는 관여자가 적을수록 좋다. 어떤 나라도 한번 발을 디디면 그냥 떠나지는 않는다. 때로는 다자대화가 한반도의 분단구조를 관리하는 데는 유용할 경우도 있지만, 분단을 넘어 현상을 변경하려면 참여자가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377쪽

2006년 북한의 대외무역 의존도는 줄잡아 15% 선에 불과했는데 그마저도 70%이상이 중국과의 교역이었다. 당시 우리 국내에서도 금융제재의 결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금강산과 개성을 통해 흘러들어가는 돈줄의 차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돈을 합쳐봐야 북한 전체 외화유입 규모의 대략 2% 선에 해당되었다. 실효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의 긴장만 더 고조시켰을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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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재구성 - 현대 일본이 부끄러워하는 진짜 일본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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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해서 애번 오스노스가 쓴 <야망의 시대>, 피터 헤슬러의 <컨트리 드라이빙>처럼 통찰력있는 이방인 기자가 자신이 체류한 나라를 예리하게 관찰한 모범적인 책입니다. 저자 패트릭 스미스는 20년 가량 아시아 특파원으로 일해왔고 1987~1991년에 해럴드 트리뷴의 도쿄 지국장으로 일본에 체류했더군요.

비록 이 책이 1998년에 출간되었지만 거의 20년이 지난 시점인 지금 읽어도 여전히 타당한 분석이라는 게 일본의 비극인 것 같습니다.

업무상 일본 법을 찾아볼 일이 종종 있는데도 일본국 헌법(소위 '평화헌법')이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고 올해까지 70년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저자 패트릭 스미스 덕분에 평화헌법 제9조에 대한 개정 논의에 대해서 아베 신조가 A급 전범 용의자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라는 딱지까지 붙여가며 '정상국가화'라는 개헌파의 주장을 매도하는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 진영의 주장에 대해 마뜩찮아 하면서도 전쟁책임 인정에 소극적인 극우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던 애매함을 후련하게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쟁 항복 후 미국이 대신 만들어준 헌법을 70년 동안 계속 사용해왔던 국민들이 불쌍하고 극악인 일본 정치인들의 리더쉽이 한심해서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아무리 헌법과 민주주의를 가르쳐봐야 뭐하나요? 1920년대의 짧았던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태평양전쟁 종전 직우 몇 달을 제외하고 주권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없었는데요. 우리나라의 1987년처럼 강렬한 체험은 아닐지 몰라도 외국의 간섭없이 내부적으로 헌법을 개정해보는 경험을 해보길 바랍니다. 저자의 말처럼 일본인들이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권리도 있다고 보고요.

요시다 시게루와 기시 노부스케가 틀을 짠 일본주식회사와 미일안보조약 시스템이 그 수명을 다한 이후에도 나카소네 야스히로, 호소카와 모리히로의 시스템 개편이 실패했는데 아베 신조의 이번 시도는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송민순 전 장관의 <빙하는 움직인다>를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제1,2차 북핵위기에 대응하는 6자 회담에서 일본 외무성이 보였던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집착이 참 바보스러워보였거든요. 일본과 비슷한 입장이었던 러시아가 국외자로서 객관적으로 살펴보면서 종종 통찰력있는 조언을 해주던 것과 비교되더군요.

읽으면서 일본이 유럽의 독일과 같은 존재가 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미국에 종속된 존재로 남아있는 덕분에 한국이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자율성을 누려온 측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일본의 정치인들이 일본의 정상국가화에 성공한다면, 미국은 더 이상 지금처럼 일본을 지시나 푸대접으로 별생각없이 다룰 수 없겠죠. 그렇게 되면 일본의 하위버전인 한국이 그동안 일본이 맡아왔던 역할을 담당해야할 것이고,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는 제주도로 옮겨올 수 있겠죠. 제가 바라는 상황은 물론 아니지만 우리를 위해 일본이 계속 이대로 미숙한 상태로 남아있으라고 저주를 내리기는 좀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읽었던 일본에 대한 서구학자들의 책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소위 '국화회' 의 시각이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만주침략부터 태평양전쟁 종전까지의 시기를 일시적인 일탈로 보고, 일본의 아름다운 '전통'과 미국이 이식한 민주주의가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잘 착근이 되었다는 시각말이죠.

역자 후기에서 번역자 노시내씨가 술회한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패트릭 스미스의 지적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도 정확히 해당하는 내용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개인성을 억누르고 집단에게 극도의 충설을 바치는 무사 전통, 봉건주의, 계급의식, 외국인 차별, 지역차별(제주도나 전라도차별과 부라쿠나 오키나와 차별에 비교하면 아주..), 텐노와 궁내청(아키히토 천황의 자진 퇴위에 박수를~),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한 '개인성의 충분한 발현이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에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해야한다'는 탁견이 패트릭 스미스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핵심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이 개인들의 '공적 개성'을 인정하는 근대국가가 되기를 기원하는 애정이 담겨있지요.

이 책에서 인용한 나쓰메 소세키의 강연 중 '제가 말씀드리는 개인주의라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중략) 나는 나의 길을 마음대로 갈 뿐이고, 동시에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 나름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때로는 불가피하게 인간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고독한 것입니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의 지적이고요.

일본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줬고, 일본이라는 거울에 한국을 비춰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이 여행가기 좋은 나라뿐만 아니라 이민가고 싶어지는 나라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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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쪽

맥아더는 일본 평화 헌법을 총사령부의 기념물로 삼고 싶었다. 일본 평화 헌법은 맥아더가 필리핀 방어 임무를 수행하던 1935년에 미국 헌법을 본따 제정된 필리핀 헌법을 모델로 한 것이다.

65쪽

과거 요시다 협정이나 현재 일본이 서방 안보 협조체제 내에서 처한 위치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걸프전에 대해 도쿄가 보여준 어설픈 행동은, 부분적으로는 미국이 일본에 만들어준 법 때문이라는 사실을 미국 정부에서 까마득히 잊고 지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일본 정부 관료들은 또 그들대로, 예의상 그와 같은 사실을 드러내놓고 지적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지 오래됐다.

351쪽

731부대는 세균전 부대로, 다른 부대와는 달리 유일하게 텐노의 칙령으로 설치가 허가되었다.

406쪽

일본사회에는 외로움이 만연해 있다. 일본에 정착하는 사람들은 금방 느낀다. 일본인이 된다는 것은 혼자가 됨을 뜻한다. '타자'로부터 단절될 뿐 아니라 각 개인의 내면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자기와 진짜 자기 사이에 분열이 일어난다. 일본인이 스스로를 너무도 철저하게 타자화해왔기 때문이다.

420쪽

부락민의 옛 선조는 동물이나 사람 시체와 관련이 있었다. 동물을 도살하거나 가죽을 무두질하거나 무덤을 팠다. 신토 신앙은 그런 일을 불결함의 상징으로 보았고 부락민의 지위는 그런 시각의 반영이었다.

453쪽

극우가 역사를 부정하고 역사적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말에 좀더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느낀다. 백발이 된 노병들은 비록 꺼림칙한 방법으로 표현할지언정 여전히 자존심, 주권, 일본인다음 같은 관념을 지니고 있다. 오직 극우만 홀로 그런 관념들을 대변하면서 희화시키는 현 상황은, '국제주의자'들이 이 부분을 포기해버린 탓이기도 하다.

480쪽

일본은 내적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되 대외적으로는 자신과 외국이 다르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역설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일본이 이런 사고에 능숙해지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국가적 목표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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