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는 움직인다 -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
송민순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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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집권기 외교부장관으로 일하셨던 송민순 전 장관님의 회고록을 지난 주말에 읽었습니다. 얼마 전 문재인 후보와 관련된 논란으로 인해 화제가 된 책이기도 하죠.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4부로 나뉘는 550페이지 가량의 책입니다.

책 제목 '빙하는 움직인다'는 북핵문제가 불거진 때로부터 근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해결은 제자리걸음인 현 생황과 바위처럼 자리를 지키는 것 같지만 매년 움직이는 빙하처럼 북핵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를 담은 표현입니다 1999년 6차 4자회담에 차석대표로 참석했을 때 언론 회견에서 본인이 했던 '회담이 빙하의 움직임과 같다'는 말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전 33년 간 외교관 업무를 해온 전직 관료가 정성을 기울여 쓴 회고록이라 궁금했습니다. 얼마 전 읽었던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의 책이나 이 책처럼 공공의 영역에 오래 종사한 분들이 회고록을 많이 펴내주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퇴직 후 감투 찾아쓰기 급급해하는 문화는 제발 없어지고, 회고록을 집필해서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도움도 주고, 그들 앞에서 떳떳하게 일했다고 자부하는 공직문화가 형셩되면 좋겠네요.

제1부는 1989년 위성이 탐지해낸 영변핵시설로 인해 시작된 핵문제가 1993년 북한의 NPT탈퇴 선언과 '서울 불바다' 발언 등 등 험악한 대치 국면으로 갔던 시기를 다룹니다. 김영삼 정권 시절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주고 중유 50만톤을 공급하고, 조미관계 정상화의 대가로 핵개발을 폐기하는 제네바합의(94.10)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라는 국제기구가 설립되었고 협의 당사자도 아니었던 한국이 경수로 건설비용의 70%가량을 부담하면서 말이 많았죠.

임기말 클린턴 정부의 의욕적인 노력으로 제네바 합의의 이행이 잘 되는 듯 했지만 2000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군사용 미사일 or 위성발사용 로켓)와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으로 인해 클린턴 임기내 평화기조 정착은 무산됩니다.

2003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경수로는 2002년에서야 첫 콘크리트 타설을 할 정도로 지지부진 하였고(합의 직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 --;),  2001년 출범한 조지 부시 2세 행정부는 2002년 북한의 우라늄농축 의혹을 제기하며 제네바 합의를  선언합니다. 당시 저자는 싱가폴 참사관, 하버드 유학, 외교부 북미국장, 외교통상비서관 등으로 정책결정의 핵심에 있지는 않았기에 관찰한 사실관계 위주로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제2부에서 다루는 2003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제2차 북핵위기는 미북중간 3자 회담, 한국이 추가된 4자 회담을 거쳐 러시아와 일본도 참여한 6자 회담으로 다자관계를 통해 2005년 '9.19 성명'으로 합의에 이르게된 과정과 그 이행에서 암초가 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계좌문제 등을 다룹니다. 저자는 이 시기 외교부 차관보(당시 장관은 반기문), 6자 회담 한국 수석대표를 맡아 북핵과 관련된 외교정책을 주도했습니다.

고만고만한 소국이 강대국들을 상대로 국제안보와 관한 민감한 사안을 다루며 자국의 이익을 지켜나가는 다자회담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러한 협상테이블에서 합의를 도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접해볼 수 있어서 감사할 정도였습니다.

제3부는 저자가 노무현 정권 때 신설된 외교안보실장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아 노무현 정권과 조지 부시 2세 대통령간의 조율을 하고 BDA문제 해결 후 '9.19성명'의 이행을 위한 실행계획인 2007년 '2.13합의' 에 도달하기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상대국 대표들과 1대1로 대화하는 내용들이 가장 인상깊더군요. 본인의 구상을 한 장의 종이에 정리해서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 그 자리에 당연히 요구되는 능력이지만 자리에 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핵실험으로 인한 미국과 한국 국내 정치의 비판, 겨우 2500만달러의 자금동결로 인해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호기를 놓치게 된 경위, 미국 내 강경파들의 북한에 대한 깊은 불신과 BDA를 둘러싸고 결정적인 순간 드러난 중국의 체면중시로 인해 날아간 기회는 정말 아쉽더군요. 이젠 중국의 굴기로 인해 2007년 당시보다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지요. ㅠ.ㅠ 게다가 중국이 베이징에서 의장국이 되는 등 6자 회담에 나름 투자를 많이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미국에 MD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이미 경북에 THAAD 배치가 초일기에 들어왔으니 다자협의의 가능성은 더 낮아졌지요.

제4부는 '2.13합의'의 추진을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이라는 플랜이 한미양국의 정권교체기로 인해 사실상 무산된 상황에서 좀 더 포괄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위 UN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표결과 관련된 '북한보고 논란'이 이 안에 몇 페이지 가량 언급되어 잇지요.

저는 문재인 후보가 이라크에서 샘물교회 선교단을 납치한 탈레반 단체가 요구했던 신임장(아그레망?)을 발급하자고 했다는 사실에 좀 놀랐습니다. 사실관계를 두고 다툼이 있지만 대북인권결의안 찬성 여부에 대한 북한의 의사를 물어보자는 말을 했다면 외교문제에 대한 판단력에 의구심이 들고요.

이미 얼마나 형편없는 인물인지야 인질 협상 성공 후 요원 사진 노출, 2015년 새누리당 입당신청 및 재보선 공천신청 등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이 책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더군요. 송민순 전장관님이 이 책 전체에서 혐오의 감정을 표출한(은근하게나마) 유일한 인물이 김만복인 것 같습니다. 노대통령은 왜 이런 함량미달을 국정원장으로...

저자가 우회적으로 비판한 임기막판 실효적인 북핵문제 해결에 전념해야할 시점에 남북정상회담 병행추진, 아마추어적인 '종전선언' 논의 등도 아쉬웠고요. 다만 당시 야당쪽이 군사작전권은 갖지 않겠다고 하면서 걸핏하면 대북 강경 군사행동을 주문하는 '안락의자의 전사'들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쪽 손을 들어줄 생각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미국의 전략과 역할분담, 국군의 역량강화 차원에서 필요했던 전시 전작권 이행을 무기한 연기한 분들이니.

재미있는 여담들이 많은데 항공과 관련해서 1997년 호놀룰루에서 열린 한국의 미사일 개발능력에 대한 한미간 실무회담에서 미국이 미사일 관련 기술 이전 허가의 조건으로 '한국 민간기업의 드론 개발과 생산 금지'를 요구했었는데 당시 ADD와 항우연이 포함된 협상단을 이끈 저자가 이를 막아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저자는 핵무장한 북한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반도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한다는 신념으로 한반도 비핵화 외교를 추진해왔고, 입부 33년만인 2008년 2월 말일 '어떤 국가도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면 해결의 객체가 되어버린다는 냉혹한 역사의 교훈을 다시 새기면서 스스로 우리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 되어달라'는 퇴임사를 남기고 외교 일선을 떠났습니다.(민주당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역임)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한국 오교의 핵심을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퇴로가 없는 선택을 강요받지 않도록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는 데 있고, 사드 배치 가능성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드를 배치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분단은 이미 70년이 넘었고, 북핵문제에 대한 그간의 노력이 무산된 상황입니다. 작년 9월 북한의 제5차 핵실험에 이어 잠수함 발사 미사일 실험까지 했지만 저자는 아직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북미수교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지렛대로 우리가 분단과 핵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방안을요.

그런데 저자가 예정된 출간일을 1년이나 넘길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서 펴낸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총선 직전의 정쟁의 도구로만 소비되어버리고 공론장에서 별다른 논의가 된 것 같지 않아 아쉽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보다보니 실제로 역량도 별로 없는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부 산하의 통일국 정도로 개편하는 것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노대통령과 저자가 나눈 대화 중에 '값아서'라는 표현이 나오길래 오타인가 했는데 '갋다'라는 경상도 방언이 있었다니. ㅎㅎ '애써 따지고 괴롭히다'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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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1979년 인도는 위성발사용 로켓을 조립 장소에서 발사 장소까지 소달구지로 운반했다. (첨단장비를 원시적인 수단으로 운반했을 때의 영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어쩌면 보안유지를 위한 허허실실 책략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74쪽

한반도 분단 후 70년간 북한은 3명의 지도자가 통치한 반면, 미국과 한국은 각각 12명과 11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정치 시계의 속도가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대북정책을수립해 손에 잡히는 결과를 보여주려면 다음 대선 또는 중간선거까지 길어야 2년 정도밖에 여유가 없다. 북한은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이처럼 짧은 시간표에 맞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260쪽

동아태 차관보는 세계 6개 지역을 나누어 담당하는 책임자의 한명이고 국무부에는 통틀어 35개의 차관보급 직책이 있다. 국무장관이 차관보로부터 상세히 보고를 받을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270쪽

레바논 파병은 이라크와 달리 유엔 깃발 아래의 평화유지군이었다. 한국은 규율이 잡힌 강한 군대를 가진 국가 가운데 역사, 인종, 종교, 정치 면에서 중동에 편견이 없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이다. 레바논 파병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분명했다.

364쪽

우리의 미래에 대한 본질적 문젱는 관여자가 적을수록 좋다. 어떤 나라도 한번 발을 디디면 그냥 떠나지는 않는다. 때로는 다자대화가 한반도의 분단구조를 관리하는 데는 유용할 경우도 있지만, 분단을 넘어 현상을 변경하려면 참여자가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377쪽

2006년 북한의 대외무역 의존도는 줄잡아 15% 선에 불과했는데 그마저도 70%이상이 중국과의 교역이었다. 당시 우리 국내에서도 금융제재의 결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금강산과 개성을 통해 흘러들어가는 돈줄의 차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돈을 합쳐봐야 북한 전체 외화유입 규모의 대략 2% 선에 해당되었다. 실효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의 긴장만 더 고조시켰을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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