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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경제학 - 극빈국 10억 인구의 위기
폴 콜리어, 류현 / 살림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폴 콜리어 옥스퍼드대 아프리카 경제연구센터 소장님의 책입니다. 번역된 책이 여러 권이던데 전 이 <빈곤의 경제학(원제:The Bottom Billion)>이 처음입니다.
아프리카 경제학에 대해서는 폴 케네디가 <21세기 준비>에서 1962년 당시 1인당 GNP가 62달러 수준으로 비슷했던 가나와 한국을 비교한 것처럼 성공한 국가들을 돋보이게 하는 외모몰아주기 병풍 정도로만 접해봤습니다. 우석훈씨의 책에서 잠재성 높은 미답의 분야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연구여건상 택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던 정도만 기억에 있었죠.
폴 콜리어 교수는 책날개의 설명처럼 약 50여 개의 실패한 국가들에 거주하는 밑바닥 10억 인구가 직면하고 있는 빈곤 문제의 현실과 원인, 그리고 기존 선진국 원조시스템이 실패한 이유를 다루고, 제프리 삭스가 <빈곤의 종말>에서 다룬 접근법과 다른 자신의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국가들을 따라잡기는커녕 뒤처지고 와해되어가는 실패한 국가의 원인을 ‘분쟁의 덫’, ‘천연자원의 덫’,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 ‘작은 나라의 나쁜 통치의 덫’으로 분석한 부분이 인상깊어 꼼꼼히 읽었습니다. 조 스터드웰이 <아시아의 힘>에서 성공사례로 제시한 한국과 대만의 사례와 대조하며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교양서인 이 책에는 단 하나의 그래프나 표도 등장하지 않지만 폴 콜리어 교수의 연구는 철저히 정량적인 분석을 하고 있고, 자신의 모형에 들어간 가정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오차들에 대해서 충분히 서술하고 있는 점도 인상 깊더군요.
좌파와 우파의 원조에 대한 관념을 넘어 폴 콜리어 교수가 말한 ‘개발 원조’의 개념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성공적인 원조로 마셜플랜과 대만과 한국에 대한 원조, 이스라엘 원조를 꼽아봤을 때 유럽은 이미 근대화에 성공한 경험이 있었던 지역이고, 이스라엘도 구미 이민자들이 건국한 국가였기 때문에 1945년 이후 독립한 개발도상국 중에 성공한 원조인 대만과 한국에 대한 원조 사례가 ‘개발 원조’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더군요.
다자간투자협정(MAI)를 묘사하며 개도국을 착취하는 악의 사슬처럼 묘사하며 반대했던 선진국의 NGO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감탄한 부분이었고요. 당시 저도 NGO쪽 주장이 맞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입학하자마자 <티셔츠경제학>을 읽었어야 했는데.
영국의 <크리스천에이드>가 엉터리 논문까지 동원해가며 세계화 반대를 외치며 밑바닥 10억을 구제할 자유무역에 빗장을 걸고자 했던 사례에서는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폴 콜리어 교수는 밑바닥 10억을 구제할 다양한 수단을 제시하고 있으면서도 아마 앞으로 20년 후에도 그들이 성장의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리더가 사라진 세계에서 분야별 국제기구의 역량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바닥 10억의 현상황이 타개되길 바라는 의지를 담은 조언들에 감동했습니다. (비록 다 이해는 못했지만요.)
이 책을 읽으니 낭만적인 세계화 반대자들과 제3세계의 부패한 정치인 카르텔들이 손을 잡고 밑바닥 10억을 낭떠러지도 밀어내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도저히 찬성할 수가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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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쪽
우리가 주의 깊게 고찰해야 하는 것은 밑바닥 국가들의 경제 성장 실패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개발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중략)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경제 성장은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이득을 가져다 준다.
108쪽
독재 체제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가들은 거의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들뿐이다.
202쪽
좌파는 원조를 과거 식민주의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 보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이런 시각에서 밑바닥 국가들은 그저 희생자들일 뿐이다. (중략) 반대로 우파는 원조를 밑바닥 국가들이 선진국들을 향해 손을 벌리는 일종의 구걸행위 정도로 간주하는 것 같다. (중략) 이런 두 가지 입장 사이에는 ‘개발 원조’라고 하는 원조를 조금 더 건설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중략) 개발 원조는 밑바닥 국가들이 조금 더 빨리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248쪽
밑바닥 국가들에게 있어 1차 상품 위주에서 벗어난 수출 다변화는 중국과 인도의 부상에 따라 더욱 어려워졌다. 반면, 자본 도피는 글로벌 금융 통합으로 인해 더욱 수월해졌다. 해외 이주는 밑바닥 국가들 내부에서 빈부 격차가 계속 벌어짐에 따라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되었고, 특히 밑바닥 국가들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디아스포라들이 서구에 형성되면서 더욱 쉬워졌다.
303쪽
선거는 누가 집권할지 결정하지만 권력이 어떻게 사용될지 결정하지는 않는다. 선거 제도의 도입과 견제 및 균형의 원리가 도입되는 시차 때문에 갓 도입된 민주주의는 선거 경쟁을 별다른 역제 수단 없이, 즉 견제와 균형의 원리 없이 치러야 하는 국면을 필히 거칠 수밖에 없다.
336쪽
공정 무역 캠페인에 어떤 해악이 숨어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이와 다른 방식으로 밑바닥 국민들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의 문제는 이 것이 수혜자드을 현재 하고 있는 일, 예를 들어 커피를 생산하는 일에 그대로 묶어 두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