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 - 울산 대공장 노동자의 생애와 노동운동, 202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2023 ICAS 한국어 우수 학술도서 최우수 선정
유형근 지음 / 산지니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곰솥에 3회째 끓이는 사골국물 같은 주제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한 명이 오롯히 한 권으로 정리한 글로 읽고 싶었는데 읽고 보니 만족스럽습니다.

부산대 유형근 교수님께서 노동계급의 형성이 지역과 도시 차원의 중범위연구로 다루어져야 한다는데 주목해서, 2007년부터 약 15년 동안 잡아온 연구주제인 '1980년대부터 약 40년 동안의 울산 대공장(현대차와 현대중공업 중심)의 1세대 생산직 노동자들의 생애사를 교차해서 본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변형 과정'을 담아내셨네요.

울산을 공업도시로 만들고자 한 계획이 간척사업을 통해 대자본가가 된 일본인 이케다 스케타다가 1930년대에 제안한 울산공업도시계획부터 시작하는 도입부도 매력적이었고요.

울산 대공장의 사내하청은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이은 사내하청의 선별적 정규직 채용, 산업용 로봇 추가 구매, 정년퇴직자 재고용을 표방했지만 기간제 고용의 우회수단으로 보이는 촉탁직으로 바뀌긴 했고, 저자도 말미에 희망어린 기대를 표시했지만, 책 제목처럼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을 되돌리는 건 80세 노인을 청년으로 회춘시키는 것처럼 불가능에 가깝다는게 책을 덮으며 느낀 소감입니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이중화를 원청과 하청노조간 연대로 푸는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노동운동계에서 계속 요구해온 것이 '하청노조가 원청 사용자와 합법적으로 교섭할 수 있도록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확대'하는 방법이었지요.

그게 '노란봉투법'이라는 네이밍으로 불법파업에 대한 조합원들의 책임의 개별화와 손배청구권 남용금지라는 소구력 높은 아이템에 편승했다고 욕을 먹긴 하지만, 사실 이 내용은 이미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원청 사용자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한다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봤던 대법원 판례가 조문화된 것일 뿐입니다.

다만, 이미 기업별 노조와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라는 경로의존성이 낳은 '분절된 노동, 변협된 계급'의 결과물들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 판례와 법령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과연 얼마나 확보될지 모르겠습니다.

외국기업에서 성과보상체계로 운용하는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은 회사와 노동자가 위험과 수익을 분담하는데 반해, 호황기에는 정률의 이윤을 분배받으면서, 불황기에 위험은 회사와 주주만 부담하고, 자신들의 고용안정성은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인센티브체계를 공정하다고 납득하기 어렵네요.

-------------------------

131쪽

(1990년대 중반) 노조 집행부의 교체 이후 이러한 직능자격 제도의 도입은 완전히 무산되었다. 노조가 조합원들 간의 개별 경쟁을 조장하면서 단결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도입을 반대했던 것이다. 직능자격제도 도입 무산은 이후 현대자동차의 임금체계가 내부노동시장에서의 숙련형성이나 직무가치에 대한 고려 없이 연공을 중심으로 한 비경쟁적 요소가 지배하게 된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조형제, 2008)

271쪽

노동조합으로서는 생계비 원리에 기반한 임금 극대화의 전통적인 제도적 수단의 효력이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대안적인 수단을 보유하게 된 것이고, 사용자 측으로서는 임금과 경영성과의 연계를 보다 긴밀히 하고 목표 생산량 달성을 위한 유인책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성과배분제는 두 집단 간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324쪽

(2000년 체결된 현대차의) 완전고용보장합의는 정규직 노동자의 수량적 경직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조가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의 수량적 유연성을 허용하기로 양보한 협약이었고, 이를 통해 그동안 암묵적으로 용인돼온 기업내 이중노동시장이 제도화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주무현, 20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