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백년의 꿈과 현실, 시진핑의 중국은 어디로 향해 가는가?
임명묵 지음 / 에이지21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원래 내 독서스타일은 남독이지만 페북덕분에 영미권 학계의 세계적인 대가들과 오랜 실무 경험으로 다져진 전문가들이 쓴 책들을 꾸준히 읽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국내 유명인이 쓴 책들을 보면 왜 생각이 그렇게 이어졌는지 근거를 납득하기 어렵거나, 한참 전부터 업데이트가 안된 사실이 뻔히 보이는 지적인 게으름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책도 유명인이 써야 잘 팔리는 시대지만 이런 책이 나와야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명인 분들도 스스로 망신을 자초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아까운 나무이 베어져서 펄프가 되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김정운씨의 말처럼 이제 지식은 편집이다. 그런데 편집은 쉬워보일 수 있지만 결코 쉽지 않다. 양질의 글재료를 알아볼 수 있는 명철함, 두터운 텍스트 안에서 다양한 분야 석학들이 제시한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를 추출할 수 있는 통찰력,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것들을 연결할 수 있는 맥락 창조능력, 벽돌책들을 꾸준히 읽고, 정리해서 글을 쓰는 우직한 부지런함, 이 모든 능력들을 갖춰야지 아무말 대잔치로 빠질 위험이 있는 짜깁기가 아닌 편집의 힘을 보여줄 수 있으니.

저자가 온라인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2016년부터 쭉 지켜봐온 입장이라 아재돌(아재들의 아이돌)의 첫 책을 한 장씩 넘기며 읽으니 느낌이 각별하다. 광대한 페북 세상에서 저자의 존재를 알 수 있게 소개해주신 산타크로체님과 여러 권의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기까지 본인의 경험과 인맥을 전폭적으로 공유해주시고, 원고를 채근하는 편집자의 역할까지 맡아주린 홍춘욱 박사님 덕분에 자비출판이나 강매, 매절계약 없이 좋은 출판사에서 이십대 초반 학부생의 책이 훌륭한 출판사에서 나온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여전히 이름값만 믿고 함량미달의 글들(심지어 다른 사람이 써준 글이기도)을 폐지묶음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저자는 우리 한국인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앞에 둔 장님들'이고, 중국의 바로 옆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할 일은 '거대한 코끼리 옆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왕이면 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시진핑(습근평)이 왜 등소평이 설계한 집단지도체제와 도광양회 노선을 버리고, 집권 3기로 일인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표방하며 미국과의 충돌도 감내하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접해보셨으면 좋겠다.

나도 저자의 글을 접하기 전에 이런저런 글들과 언론의 기고문들을 통해 나름의 시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한 지난 50년간 중국이 겪어온 사건들과 공산당 지도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한 논리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더 설득력이 있었다. 나도 참고문헌 중에 열 권을 읽었지만 이를 온전하게 녹여내서 자기 시각으로 연결하는 문장들을 읽으며 과연 같은 책을 읽은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특히, 등소평이 제시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삼대노선 중에서 왜 도광양회를 버렸는지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탁월하다.

내가 느낀 유일한 옥의 티라면 106~108p는 앞에서 분석했던 내용의 요약이라 빠졌어도 되지 않았나 싶은 정도였다.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슬로우뉴스 연재글에서 봤던 사진들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홍대선님의 <테무진 to the 칸>처럼 이미지 저작권때문일 듯).

아무래도 한국인들이 이 책에서 저자가 간결하게 설명한 중국의 정치시스템과 인명들, 이들간의 인맥에 대해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중국현대 정치에 대한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아래 링크로 따온 한청훤님의 <시진핑의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시리즈를 통해 등소평이 설계한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와 시진핑이 걸어온 길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과 같이 보시길 권한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ahbee&logNo=220832481647&categoryNo=6&parentCategoryNo=6&viewDate=¤tPage=5&postListTopCurrentPage=&from=postList&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5
난 책 뒷날개에서 작가가 추천하는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읽어봐야지.

책값 만오천원이 돈을 버는 이들에게도 푼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두가 부동산에 관한 책들만 사보는 이콘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서운할 것 같다. 중국에 대한 이해를 넓혀서 투자나 업무에 써먹을 기회가 없더라도 십오억의 욕망을 이끄는 이웃나라의 선장이 어떻게 키를 잡게 되었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이야기꾼의 설명에도 지갑을 좀 여는 여유가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처럼 감사의 말은 책 맨 뒤에 들어가는게 맞는 것 같다. 책 읽은 사람 입장에서는 본문을 읽기도 전에 저자가 모르는 사람들 이름과 그들에 대한 상찬이 줄줄 나오는 것은 연말 방송국 연예대상 수상자들이 판박이처럼 말하는 감사인사처럼 지루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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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쪽

요즈음 중국 정치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찾을 수 있는 주제는 세 가지다. 첫째, 당국이 제시하는 매우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대책'이다. 둘째, 당 중앙에서 제시하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공식 노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대책과 공식 노선 뒤에서 어떤 거래가 오갈지 살펴보는 '추측성 기사'다. 하지만 중국 정치인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혹은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하는지의 이야기는 찾기 힘들다.

138쪽

시진핑 시대는 덩샤오핑 시대와의 단절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가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국의 지도부가 하나의 목표와 전제를 공유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유해져야 하며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이룩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세력이자 정당성을 갖춘 유일한 세력은 중국공산당이다."

140쪽

그동안 많은 관찰자는 마오쩌둥으로의 회귀, 독재 일인체제의 구축, 야심과 권력욕이라는 관점에서 시진핑을 바라보았다. 여기에는 분명 진실도 담겨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시각만을 갖기를 거부한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의 지도부가 노선과 파벌, 인물과 자신들의 세계 인식을 바탕으로 끌어낸 논리적 결과물이다.

221쪽

중국은 인접국 전체에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이를 정치적 이익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실 다른 주변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훨씬 나은 위치에 있다. 예컨대 미얀마, 라오스, 키르기스스탄 등의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은 명백한 선진국이자 강국이다. 여전히 중국이 넘보기 힘든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중국에 쉽사리 휘둘릴 만큼 규모가 작은 나라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롭게 변해가는 이 거대한 코끼리와 공존하는 법을 가장 먼저 깨우쳐야 할 주체는 바로 한국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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