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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300일의 마음수업
이창재 지음 / 북라이프 / 2013년 12월
평점 :
작년 이맘때쯤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굉장히 큰 절이 있었는데 넓고 크고 화려하게 꾸며진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을 뵙고는 순간적으로 이런 법당의 작은 먼지 하나 닦아내며 살아도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한푼에 화내고 슬퍼하고 웃고 울고, 안 풀리는 일에 골머리를 싸매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돌아서면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마음 다치며 사는 것보다, 하루종일 부처님 계신 법당에서 향내 맡으며 이리 닦고 저리 닦으며 내 마음도 닦으며 살아도 좋겠다. 이 넓은 법당을 모두 내가 닦고 싶다.' 순간 일어난 마음이었지만, 내가 그런 마음을 일으켰다는 것이 한편으론 신기했고, 한편으론 놀라웠다. 하지만 금새 '나에게는 생활이 있고,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다.'라며 현실로 돌아와버렸다. 나는 이렇게 현실에 수긍해버렸지만 이 책 <길 위에서>에는 속세의 굴레에서 벗어나 부처님 법 안에서,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꾸준히 수행하고 정진하는 비구니 스님들이 있었다. 원래 다큐멘터리 영화로 먼저 제작되었고, 영상으로 못다한 이야기까지 더해서 책으로 펴낸 것이라고 하는데 사전정보없이 접한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꼭 목탁소리가 실제 들리는 영화를 찾아보고 싶게 한다.
절에 가서 간단히 삼배하며 기도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어딘가 여행을 가게 되면 꼭 그 지역에 유명한 절을 찾아간다. 고요하고 청정한 절의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사실 절도 알고 보면 스님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다. 누군가는 밥을 해야 스님들은 물론 절을 찾은 이들이 공양을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빨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속사정은 잘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을 하는 스님들이 따로 있고, 공부만 하는 스님들이 따로 있단는 것을. 팔공산 자락에 있는 백흥암.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절이다. 대략 공부하기 위해 백흥암을 찾은 수행스님이 40여명이다. 공양을 맡은 소임스님 몇 분은 40인분의 공양을 준비한다. 같은 스님인데 누구는 참선하고 기도하며 공부하는데 누구는 하루종일 밥만 하고 있어야 하면 누가 소임을 맡고 싶을까.. 라는 나의 얕은 생각은, 밥하는 것도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무너지고 말았다. "밥하는 것도 다 수행입니다. 뭘 해야 할 때 딴 생각을 하지 않고 집중하는 거지요.밥 할 때는 밥만 생각하면 돼요. 다른 생각을 하다 보면 밥을 태우거나 뜸을 잘못 들이게 돼요. 내가 하고 있는 행동, 거기에만 온전히 마음을 쏟으면 됩니다.... 쌀을 씻을 때, 쌀을 불릴 때, 물 양을 맞출 때, 불 조절을 할 때 한번에 하나씩 집중합니다." (101쪽)
또 한가지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문관 이야기였다. 무문관은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감옥같은 세평 남짓한 방안에서 하루 한끼만 먹으며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자신이 정한 기간동안 밖에 나오지 않고 혼자서 절대고독의 시간을 공부로 견뎌내는 곳이다. 하루 한끼도 방문 아래쪽에 급식구에서 받아 먹는다. 그런 좁은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다니.. 일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공부할 뭔가가 있을까? 우리가 책을 펼쳐서 연필로 써서 공부하는 것 말고, 마음 공부라는 것이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가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걸 이렇게나 처절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출가한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나의 존재가치에 대해 의문점이 들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출가했다고들 한다. 그런 사람들과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왜 더 깊은 궁금증을 가지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그냥 사니까 살고 있을까? 자기 비하는 아니어도 왠지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진다. 좀더 고차원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스님들처럼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머리를 깍고 절에 들어가 정진하고 수행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백일을 갓 넘긴 이쁜 아기가 내 품에 있는데, 하루종일 아기를 보다 보면 순간순간 울고 보채는 아기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집에 처박혀서 아기만 보고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내 자신이 한심해져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이 아이가 부처님이다~ 라고 생각하며 마음수행을 해보자! 라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들의 올곧은 정신을 본받아 주변에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고 내 업에 따라 이런 일이 생겼고 저런 일이 생겼다고 받아들이며 순간순간 깨어 있으면, 그 순간이 모여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거라고 믿으면서 오늘 하루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