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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니스트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안문영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책 표지에 '신이 외면한 저주받은 천재. 신을 거부한 완벽주의자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나는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 내가 완벽주의자가 아니라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으면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내가 체험하지 못하는 천재들의 고매한 정신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보고자 하는 욕심이리라. 그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버금간다는 책 소개글도 나를 유혹하였다. 그래서 이 책 <오르가니스트>도 그런 욕심과 호기심에서 선택하여 읽게 되었다.
1803년 에쉬베르크에서 요하네스 엘리아스 알더가 태어난다. 그는 유리 깨지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하지 못하고 갇혀 있기도 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날 숲속에서 엄청난 청각의 경험을 하게 되고 목소리는 울림이 좋은 저음으로 바뀌게 되지만, 대신 짙은 담록색의 눈동자가 소 오줌마냥 누런 빛으로 바뀌고 만다. 저주받은 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안고 살지만 엘리아스는 목소리를 갈고 다듬고, 에쉬베르크 성당에서 오르간이라는 신비로운 악기를 만나고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오르간을 연주하게 된다. 신이 내려주신 그 재능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한다. 사촌 엘스베트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때문에 삶의 의욕을 포기하고 아무도 갖지 못한 음악적 재능마저 내팽겨쳐버리고 만다.
<향수>에서는 후각이 발달한 비뚤어진 천재가 나오는 데 비해, <오르가니스트>에는 청각이 엄청나게 발달하여 자연 만물, 주위 사람들, 음악의 모든 소리를 음표 하나하나로 분석하여 들을 수 있고, 한 번 들은 것을 더욱 훌륭하게 재창조할 수 있는 음악적 천재가 나온다. 그는 불행하게도 악보를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지만 그가 연주하는 음악은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들었다 놓았다 죄었다 풀었다 하는 힘을 가졌다. 왜 신은 한 가지를 주면서 다른 한 가지는 주지 않는 것일까. 야속하게 느껴질 뿐이다.
엘리아스의 음악적 재능과 그 연주가 이 소설의 한 축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엘스베트를 향한 그의 사랑이다. 그는 사촌여동생 엘스베트가 태어날 때 이미 그 어린 아기의 심장박동을 가려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심장박동과 똑같은 것을 알아차리고 이미 그 때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불쌍한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 헤메야 한단 말이냐? 그들은 이 연인에서 저 연인으로 다급하게 쫓아다니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미 까마득한 옛날부터 한 인간을 점지해주셨다는 사실을 몰라. 그들과 똑같은 심장박동을 지닌 한 인간을 말이지. 참으로 소인들이야! 그들은 믿음도 없고, 또 하나님이 그들에게 시간과 장소를 알려줄 때까지 참고 기다릴 줄도 모른다니까!" (184쪽)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비록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깨끗하고 고결한 사랑을 탐내는 것이다.
이 책은 신에게 순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거기에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 인간관계들을 세심하게 묘사해놓았다.
엘스베트가 루카스 알더와 결혼하여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절규하며 신을 원망하는 엘리아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소리친다. "나, 요하네스 엘리아스 알더가 몰락한다면, 그것은 내 의지이지. 당신의 의지가 아니란 말이야!"(228쪽) 자기 두 발로 똑바로 바닥을 디디고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저 하늘 위 어디 있는지, 실은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신의 의지대로 좌지우지되는,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약한 모습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강한 면모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마치 내가 감히 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차마 그러지 못하는데 그는 마구 소리질러주었다. 그 때 엘리아스는 붕대를 감고 있는 어떤 아이를 보게 되고 이 환상 속에서 결국 기절하게 된다. 그 후 그의 누런 눈동자는 본래의 담록색으로 변하게 되지만, 엘스베트를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는 이제 그 무서운 사랑의 올가미에서는 벗어났지만 더이상 삶의 의미를 잃은 것이다. 가장 힘들게 하는 그 무엇이 사실은 그를 가장 살게 만들고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었다. 슬픈 일이다.
에쉬베르크에는 세번의 대화재가 발생한다. 첫번째 화재는 누군가의 방화인 것이 분명한데, 범인이 누구인지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그 사이 다른 용의자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희생된다. 마녀사냥식으로 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고가서 여럿이서 살해해버리고 만다. 그 중에는 엘리아스의 아버지 제프도 있었는데 아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는 죽을 때까지 괴로워하면서 산다. 군중심리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하지 못할 일을 여럿이 모이게 되면 별다른 죄책감이나 저항 없이 너나할 것 없이 달려들어 해치워버리는 것이다. 사실은 이렇게 괴로워하며, 후회하며, 돌이켜 눈물짓는 나약한 인간이면서..
엘리아스는 엘스베트를 너무나 사랑했고, 음악을 사랑하고 그 재능을 조금 꽃피운 죄밖에 없다. 그는 <향수>에서 진정 아름다운 향기를 위해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그루누이처럼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고, 잔인한 면도 없는, 어찌보면 평범한 속내를 가진 청년이었다. 그에게는 그저 엘스베트 한 명만 있으면 되었는데,, 그 한 명이 없어서 그는 자신을 버렸다.
사랑,,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