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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메릴 호
한가을 지음 / 엔블록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어느날 갑자기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면? (시간여행이라는 간단한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엄마가 우주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느날 갑자기 18세기의 바다에 떨어져서 해적들과 싸우면서 목숨을 지켜야 한다면?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무슨 일을 하든 어떠랴.
주인공 주모이는 아버지의 공장이 사채업자들에게 넘어갈지도 모르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마치라는 특이한 소녀와 함께 평행우주간의 모험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해양역사와 배, 무기 등에 관한 작가의 풍부한 배경지식이 화려하게 꽃피고 있다. 이런 분야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대단함에 입이 쩍 벌어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청소년 문학이라고 분류되어 있다. 주인공도 14살 정도의 중학생인데 그 중학생이 아무리 어릴 적부터 범선을 좋아하고 해양소설을 읽었다 해도 그렇게 전문적이고 해박할 수 있는지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나이가 어려도 충분히 관심 가는 분야에 공부를 하고 어른 못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평범한 중학생으로 설정이 되었다면 더 공감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한복판에서 보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에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이리저리 피터지는 싸움을 하는 장면은 긴박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이었다. 마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첫 전투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약간 잔인한 묘사들이 눈에 거슬렸다. 영화나 소설, 아니 그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고 인정이 없지만 그래도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의 책에서 이런 세세한 묘사들은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무 '청소년'이라는 문구에 얽매여서 선입견을 갖고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채업자로 위장한 엠엠엘단은 모이의 아버지에게서 사라져버린 아내를 그리워하고 미워하는 그 마음을 빼앗아가려고 했다. 공장이나 돈이나 집이나 이런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의 한 부분을 지워버리겠다고 한다. 당장에 필요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뜬금없다 생각이 들면서도, 그 마음이 없어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려서 슬프고 밉고 잊어버리고 싶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그와 사랑했던 추억들, 기억들을 지워버리면 삶이 반짝거리지 못할 것 같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현실에서는 매번 그 말을 지킬 수 없더라도.
해양모험소설로 약간의 어려운 말들이 나오긴 하지만 재밌게 술술 읽어 나갈 수 있었다. 갑자기 바다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수욕장이 아닌 망망대해 한복판. 그냥 시원하게 넘쳐나는 그 물들을 보고 싶다. 보고 있으면 갑자기 다른 세계로 가는 웜홀이 열리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