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살아라 - 신정일이 쓴 조선의 진보주의자들
신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보수냐 진보냐 갈림길에서 선택하라고 할 때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까. 보수와 진보의 정확한 정의도 잘 알지 못하는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똑바로 살아라>. '신정일이 쓴 조선의 진보주의자들'이라는 거창한 소제목까지 달고서 머리카락 한올, 수염 한올이 서슬퍼렇게 살아있는 선배의 눈동자를 책표지 전면에 장식해놓은 이 책. 지은이 신정일은 조선사에서 진보주의자 12명을 뽑아내어 그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는 내가 잘 아는 이름도 많았으나, 낯설은 이름도 눈에 띄었다. 

중종의 신임을 얻어 개혁을 시도하였다가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결국은 개혁에 실패한 조광조 이야기, 국사책에서 말로만 들었던 '문체반정'의 주인공 박지원의 이야기, <택리지>로 유명한 이중환의 이야기 등등 중고등학교 국사 수업시간에 들었던 배경지식만 있다면 재미나게 읽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황진이를 자유롭게 살다간 진정한 페미니스트로 묘사한 점도 신선했다. (물론 얼마전 한창 황진이 붐이 일었을 때 다 나온 관점이지만.)

하지만 조선사 600년의 역사에서 딱 12명을 추려냈는데, 그 기준이 사뭇 모호하다. 평소 잘 알고 있던 조광조, 허균, 박지원, 정약용, 김옥균 등에는 동의는 하지만 진부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반면에 정여립, 김개남, 강일순은 고개가 갸우뚱해지면서 커다란 의문부호가 생겼다. 왜 진보주의자에 이 사람들이 들어갈까. 

정여립은 기축옥사를 일으킨 반역자라고 알고 있었다. 국사책에 몇 줄 그렇게 나왔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이후 호남지역의 인사들은 거의 벼슬길이 막혀버렸다는 정도였다. 그런게 그가 진보주의자라고? 무슨 말일까. 반역 이라는 말은 당연히 그 당시의 집권층이 얹어준 불명예스러운 이름일테지만, 그가 과연 무슨 일을 했길래.

정여립은 왕위세습을 부인하고, 충군사상을 부인하고, 국가는 천하의 공물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왕위 세습을 부인했다니, 얼마나 깨어있는 생각인가. 너무나 당연히 임금은 대물림을 하는 시절에 말이다. 국사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점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역사란 승리한 자의 몫이라지만, 나는 당연히 정여립은 반역자, 어이없게 반역을 도모하다 실패하여 죽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니.

동학농민혁명을 얘기하면 반드시 따라나오는 이름은 '전봉준'이다. 그런데 12명에 전봉준의 이름은 없고 김개남이 들어가있었다. 시험공부를 할 때 전봉준은 당연히 외워야 하는 이름이고, 김개남과 손화중은 외워두면 좋은 이름이었는데. 책에서는 전봉준은 온건주의이고 김개남은 급진주의였다고 한다. 둘다 농민의 입장에서 개혁을 하고자 했지만 전봉준이 전세를 살피고 한발 물러서는 정책을 취했다면 김개남은 늘 돌진을 외쳤다고 한다. 저자는 그래서 김개남을 진보주의자로 꼽았다. 전봉준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그를 밝은 햇빛 아래로 끌어낸 것이다. 그런 저자의 신선한 발상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사실 급진적인 개혁은 늘 커다란 희생을 동반하므로 과연 그것이 옳았는가 하는 판단을 내리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온 강일순은 솔직히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조선이라는 꽉 막힌 나라에서 새로운 종교를 창시한 업적이 있다는데 글쎄 소개되어 있는 사례들을 읽어보면 사이비 종교의 교주 같아 보이는데.. 그래서 이 부분은 저자와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아무리 열린 생각으로 책을 읽는다 해도 기본적으로 나는 그 당시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 있는 21세기에서 판단을 하는 것이므로 그 때의 진보주의를 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국사 교과서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 왕의 업적에 따라 서술된 정보들을 배우다가 이런 새로운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는 역사를 읽으니 재미도 있고, 아는 사실은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모르고 있던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열심히 책을 읽다 보면 한번씩 나오는 오자, 탈자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마지막 교정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좋았을 걸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