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속 여행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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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때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같이 읽었던 <몽테크리스토 백작>도 참 좋았었다. 왜 난 두 작품이 같은 작가의 책이라고 생각했을까? 어릴 적 읽었던 책을 다 커서 새롭게 읽는다면, 그리고 아동용 혹은 청소년용으로 나온 책 말고 완역본을 읽으면 어떻게 다르게 읽힐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서 위 두 책을 검색해보았다. 작가가 달랐다. 아, 뭐부터 읽어보지.. 고민하다가 쥘 베른으로 선택했다. 쥘 베른의 책들을 검색해보니 이게 왠걸, <80일간의 세계일주> 말고도 그의 작품은 많았다. 대부분 모험 소설인 것 같았다. <해저 2만리>를 읽을까, <지구에서 달까지>를 읽을까. 그러다 결국 <지구 속 여행>을 선택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 여행이 아니라 지구 속! 땅 속으로 들어간단 말이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책을 집어들었다. 

주인공 악셀은 세계적인 광물학자이자 성질 급하고 완고하고 자기 뜻대로 하는 리덴부르크 교수를 삼촌으로 두고 있다. 어느 날 양피지로 된 고문서에서 아르네 사크누셈이란 자가 지구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리덴부르크 교수는 그 날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조카 악셀을 데리고 아이슬란드로 향한다. 스네펠스라는 사화산의 분화구 속으로 들어가면 지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이 무슨 해괴한 발상인가. 어떻게 땅 속으로 밑으로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긴,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구 속에서 열에 의해서든, 무엇에 의해서든, 속에 있는 것을 갑자기 뿜어내는 화산작용이란 것이 결국 땅에 구멍을 내어버린 것 아닌가. 거기가 또 무엇(암석, 화산재 등)에 의해서든 막힐 수도 있지만 미세한 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 구멍을 통해 땅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덧 나는 쥘 베른의 이상하고 신기한 상상 속 세상으로 한발짝 성큼 들어가버렸다. 

지질학이나 광물학 등 생소한 용어가 잔뜩 등장하지만 그럭저럭 술술 넘겨버리면 그만이다. 하나하나에 눈 크게 뜨고 볼 필요는 없으며 그저 리덴부르크 교수나 조카 악셀이 호기심 많은 모험가이기만 한 게 절대 아니라는 것만 알면 된다. 그들은 풍부한 지식으로 무장한 광물학자들이었다. 위험천만한 여행 속에서도 지층이 어쩌고, 시대가 어쩌고 하는 말을 하면서 눈을 반짝인다. 그런 전문적인 부분을 알아듣지 못해도 충분히 흥미로우며, 특히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재미있었다. 목표를 절대 굽히지 않고 냉철하게 분석하며, 아무리 근거있는 소리라도 자신의 성미에 맞지 않으면 무자르듯이 잘라버리지만, 악셀이 위험하게 되거나 큰 일을 겪으면 따뜻한 삼촌으로서의 본성이 슬그머니 나오기도 한다. 조카 악셀은 사랑하는 여인 그라우벤을 두고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에 따라나서면서 돌아갈 궁리만 하지만 막상 지구 속으로 들어서면 여기 지층이 무엇이고, 화석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순수한 청년이다. 게다가 이들을 도와주는 사냥꾼 한스는 말 한마디 허투로 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두 사람을 보좌한다. 

1828년에 태어나 1905년에 사망한 쥘 베른이 그 시대에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게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뛰어난 상상력과 그것을 풀어내는 이야기 능력이 존경스럽다. 이제 다음번엔 <해저 2만리>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어볼까나. 열림원에서 나온 쥘베른 컬렉션은 말 그대로 한 권씩 모아서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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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한 스푼의 기적 - 내 인생을 바꾸는 실천 성공학
윌리엄 워커 앳킨슨 지음, 권인택 엮음 / 파워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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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하다는 <시크릿>은 아직 읽지 않았다. 그 책을 먼저 읽은 오빠는 내게 마치 시크릿 교주가 된 것 마냥 책 속 내용의 위대함을 설파해주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그러니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때 나는 말했다. 모든 것이 생각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은 교통사고가 나고 싶어서 난 거냐!! 살짝 머뭇거렸던 오빠는 그것도 콕 집어서 그 생각이 아니어도 평소 부정적인 생각이 그런 사고를 부른 거라고 했다. 거기서 난 이야기를 끝냈다. 나한테는 별 흥미없는 얘기였다. 

<생각 한 스푼의 기적>은 조금 다를 줄 알았다. 그 흔한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지침서 역할을 하겠다고 당당하게 나에게 유혹했다. 한번만 더 믿어보자, 책을 골라 들었다. 책은 작고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생각의 파동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이 나온다. 

누구나의 마음 속에는 능동기능과 수동기능이 있는데 쌍둥이 형과 쌍둥이 동생으로 비유하여 설명해 놓은 부분은 흥미로웠다. 수동기능인 쌍둥이 동생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것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려는 성향이 강하고, 능동기능인 쌍둥이 형은 자기 의지로 적극적으로 일을 해결하려 드는 성격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 마음 속의 쌍둥이 동생을 잘 구슬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가는 부분이다. 대쪽같은 사람도 속에는 연약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고, 겉으로 보기에 비리비리해 보이는 사람이어도 강단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한 가지 특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생물이다. 

살아있고, 힘있는 눈을 만들기 위한 팁, 의지력을 강화할 수 있는 팁, 집중력을 강화하는 훈련 등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들을 따라하다보면,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살아있고, 적극적이고, 활기차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모든 일이 다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서는 일단 이런 일말의 의심조차 말고 믿어라고, 이미 이루었다고 믿어라고 얘기한다.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이루었다. 아, 기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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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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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년남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정확한 나이는 마흔일곱. 다니고 있는 회사의 경리부장. 아내와 예쁜 고등학생 딸이 하나 있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일상을 한편으론 지루해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해하는 보통사람이다.
이정도까지 읽고는 책을 덮을까 했다. 내 나이 또래의 이야기도 어쩔 땐 재미가 없을 정도인데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어봤자, 얼마나 공감을 하고 재밌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가네시로 가즈키'다. 가벼운 듯 유쾌한 글솜씨로 유명한 그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계속 책장을 넘겨본다. ('작가'가 누구인지가 책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신뢰할 수 있는 작가라면 조금 기대에서 어긋나더라도 끝까지 읽어보면 결국 '역시~'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스즈키 하지메라는 중년남성에게 어느 날 소중한 딸이 시부야의 노래방에서 근처 고등학교 남학생에게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연히 분노했지만 그 남학생이 고교 복싱 챔피언이고, 학교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무기력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좌절했고, 한편 복수할 마음을 가지고 남학생을 찾아간다. 그 학생의 고등학교를 찾아간다는 것이 근처의 꼴통 학교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고, 거기서 독특하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 그는 복수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씩 단계를 밟는다. 

스즈키가 고교 복싱 챔피언을 이기기 위해 약 두달 정도 유급휴가를 내고 몸을 만드는 과정이 쭉 이어진다. 박순신이라는 싸움의 달인이 그를 단련시키는데 무심한 듯 하면서도 세상을 초월한 듯한 대사만 읊는 그에게서 재일한국인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겪었어야 할 아픔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너무 폼만 재는 거 아닌가,, 하는 삐딱한 시선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건 둘째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있는 나에게 가장 신기했던 것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도 몸을 움직이고 싶어했던 것이다. 보통 체격에 배나온 아주 평범한 중년 남성이 두달정도 만에 대학생때보다 가슴이 더 딱딱해지는 근육맨이 되다니.. 내가 이렇게 따뜻한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과자를 먹으며 이 책을 읽어도 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마치 내가 스즈키가 된 것처럼 근육이 아픈 것 같고, 몸에 힘이 생기는 것 같고, 숨이 헐떡여지는 것 같았다. 몸이 가벼워지는 상쾌한 기분을 나도 느껴보고 싶었다. 

힘들게 몸을 단련하고, 싸움의 기술을 배운 후 드디어 결전의 날. 이시하라의 학교로 쳐들어간 스즈키는 상상 속에서 수없이 해본 결투를 시작한다. 이 결전 무대는 마치 <두사부일체>류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조폭영화를 연상시켰다. 교권이 땅바닥에 추락하고, 그렇게 만들 엉터리 교사들이 등장하고, 교권에 반항하는 학생들, 학교라는 신성한 의미는 상실되고 그저 멋진 결투장소가 되어버린. 그것이 씁쓸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두가지 감정이 섞여버렸다. 

이 소설은 가독성이 대단하다. 손에 쥐고는 금방 뒤로 훌훌 넘어가버린다. 무슨 무슨 수상작이고,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해도 읽기 힘들어서 독자에게 읽혀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너무 읽기 쉬워서 좀 아쉽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영화 속 장면들을 연상케 하는 스피디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 영화를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스즈키와 박순신을 영화 속 주인공들로 머릿속에 그려놓고 읽었다. 그게 독이 되기도 하지만, 득이 되기도 했다. 
 
미나가타, 야마시타 등 박순신의 무리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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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일기 - 장밋빛 상하이에 숨겨진 소소한 일상들
황석원 글 사진 / 시공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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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신문에 소개된 저자의 인터뷰를 먼저 읽었다. 20살 청년이 상하이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중에 상하이의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리포트를 쓰다가, 이렇게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했다. 겨우 20살에 그럴싸한 아이템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책 한 권 출간해놓고 온갖 폼 다 재는구나, 하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20살에 그렇게 멋지게 살아보지 못한 열등감에 배가 아파 뒤틀려버린 것이라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인정한다. 아니,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참 멋지게, 독특하게,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 청년이구나.

이 책은 제목 <상하이 일기> 그대로, '상하이'라는 도시에 집중하여 글을 이어간다.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않고, 상하이 속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도시 이야기를 끌어내고, 상하이의 건물들을 소개하면서도 도시 이야기를 끌어낸다. 그 일관성이 마음에 들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중국은, 그렇게나 좋아했던 <삼국지> 속 유비와 조조, 제갈공명 등의 이야기와, 우리나라 역사와 겹쳐지는 명,수,당,청 의 몇몇 사실 뿐이었다. 중국 현대사는 문외한이었다. 최근에 한창 시끄러웠던 티베트 사태의 원인과 과정 등도 솔직히 관심이 없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또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것은 아는데 늘 홍콩과 싱가폴이 헷갈리는 것이 문제다. 마오쩌둥, 등소평 등 중국의 유명한 정치가들의 이름은 알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중국 현대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으면서, 큰 영향을 받으면서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먼나라 이웃나라'였다. 일본만이 아니다. 

상하이의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멋진 야경, 그에 대비되는 허름한 뒷골목, 쓰레기통을 뒤지는 걸인들, 뒷통수가 무서워지는 불안한 치안, 길거리 음식을 사먹고 그 뒷감당은 책임지지 못하는 위생상태, 상하이니즈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드센 사람들 등등. 놀기 좋고 화려하고 중국답지 않은 국제도시의 위상에 걸맞는 상하이라는 도시는 매력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자존심 센 아가씨 같았다. 다가오는 것은 묵인하면서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 도도한 아가씨.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하지 않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인 상하이에서 지은이가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니, 모든 것이 재미있고 신기한 것으로 변해버렸다. 그 도시 뿐 아니라 어떤 사물, 어떤 사람이든 뭐든 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상하이라는 도시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솔직히 지은이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이 앞섰다. 중학교 졸업 후 중국에 홀로 유학가서 공부한 독립심이 대단하고,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사진작가, 화가 등 다양한 이력이 문화예술 방면에서 20살 청년이 얼마만큼 성장할지 지켜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손에 쏙 들어오는 책 크기에 상하이의 소소한 일상을 잘 포착한 사진들, 쉽게 쓰여진 글, 그의 첫 책은 성공적이라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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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석의 아이디어
최범석 지음 / 푸른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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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케이블 TV에서 <싱글즈 인 서울>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최범석 디자이너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참 멋있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고, 그 때부터 여기저기 나오는 그를 눈여겨 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은 일간지의 '사람사람' 란에 그의 브랜드가 파리의 백화점에 입성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마치 내 일인양 기뻐했다. 마치 내가 미리 이렇게 크게 될 줄 알고 키운 것마냥 으쓱했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다. 본인의 이름을 당당히 내세운 <최범석의 아이디어>. 안 읽어볼 수가 없겠지?

보통의 성공 에세이처럼 그가 처음 패션디자인이라는 세계에 입문한 이야기, 동대문에서 고생하며 옷 만들고 옷 팔던 이야기, 파리에 진출한 이야기 등이 시간 순서대로 적당한 자기자랑과 적당히 사람들 가슴에 열정이라는 불을 지필 몇 마디 문구를 기대하고 책을 폈다. 사실 그런 이야기가 궁금했다. 화면으로 나오는 멋진 비주얼로는 설명되지 않을 어떤 고독이나, 그의 생각들이 지면위에서는 어떻게 표현될까 싶어서. 하지만 나의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흔한 성공 에세이가 아니었다.
제목 그대로 <최범석의 아이디어>. 그의 디자인과 그의 생각들이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그의 아이디어 비밀창고를 공개한 책이다. 그는 빈티지에 열광하고, 현대 팝아트 예술에서 톡톡 튀는 영감을 얻고, 음악을 사랑하는 진짜 예술가이다. 비록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싹다 내게는 너무나 생소한 이름들이었지만. 그래서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면서 나와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보고, 즐기고, 느끼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이런 보통 사람들이 입는 옷을 만들고 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거야? 솔직히 동년배인 젊은 남성들은 그의 옷을 입으면서 왜 자신은 이렇게 지루하게, 평범하게 사나.. 생각하지 않을까? 그들은 그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회사와 술집과 집을 전전하는데 비해 이 멋진 디자이너는 파리를 지나 뉴욕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고 앞을 보고 나가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한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자원들을 보면서 나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고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두뇌 그림을 그려보면 최범석은 거의가 옷, 패션이고 또 팝아트, 음악 등등이겠고, 그럼 나는? 인간의 몸은 70%이상이 물이라는데 그럼 인간의 정신에 몇 %는 무엇이어야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그런 것이 있을까? 

생소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잔뜩 나오는 책의 앞부분보다는 그가 뉴욕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이 일기처럼 적힌 뒷부분이 더 재미있었다. (흔한 자기계발서나 성공에세이를 혐오하지만 그래도 재미를 느끼는 건 무슨 심리이지.) 그가 뉴욕컬렉션의 다른 디자이너들의 쇼를 구경하면서 아이디어를 얻고, 솔직하게 비판할 점은 비판하는 것이 재미있게 읽혔다. 

"유럽에서 일본은 아시아의 일본이 아니다. 미국이 북아메리카와 별 상관없는 것처럼 일본은 그냥 일본이다."(229쪽)
"일본 디자이너들도 자신을 아시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일본인이다." (229쪽)
파리컬렉션이냐 뉴욕컬렉션이냐 고민하는 중에 나온 글이다. 우리나라도 아시아의 4룡이라느니 철지난 촌스러운 이름 말고 그저 '대한민국'으로, 그저 '코리아'로 우뚝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최범석이 패션분야에서 그 일을 해냈으면 좋겠다. 아직 드러나진 않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해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디자이너 최범석의 디자인 레슨'이라는 광고 문구처럼 디자인을 공부하려는 젊은이들이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하지만 디자인이나 패션과 전혀 상관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새로운 별천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지금 디자이너 최범석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 뉴욕컬렉션에서 어떤 성과를 낼지 기대해보라고 큰소리치는 것을 들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책이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에 사진도 많고 상당히 이쁘다. 종이재질도 좋고, 실려있는 사진들의 자유로운 느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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