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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ㅣ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년남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정확한 나이는 마흔일곱. 다니고 있는 회사의 경리부장. 아내와 예쁜 고등학생 딸이 하나 있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일상을 한편으론 지루해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해하는 보통사람이다.
이정도까지 읽고는 책을 덮을까 했다. 내 나이 또래의 이야기도 어쩔 땐 재미가 없을 정도인데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어봤자, 얼마나 공감을 하고 재밌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가네시로 가즈키'다. 가벼운 듯 유쾌한 글솜씨로 유명한 그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계속 책장을 넘겨본다. ('작가'가 누구인지가 책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신뢰할 수 있는 작가라면 조금 기대에서 어긋나더라도 끝까지 읽어보면 결국 '역시~'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스즈키 하지메라는 중년남성에게 어느 날 소중한 딸이 시부야의 노래방에서 근처 고등학교 남학생에게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연히 분노했지만 그 남학생이 고교 복싱 챔피언이고, 학교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무기력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좌절했고, 한편 복수할 마음을 가지고 남학생을 찾아간다. 그 학생의 고등학교를 찾아간다는 것이 근처의 꼴통 학교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고, 거기서 독특하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 그는 복수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씩 단계를 밟는다.
스즈키가 고교 복싱 챔피언을 이기기 위해 약 두달 정도 유급휴가를 내고 몸을 만드는 과정이 쭉 이어진다. 박순신이라는 싸움의 달인이 그를 단련시키는데 무심한 듯 하면서도 세상을 초월한 듯한 대사만 읊는 그에게서 재일한국인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겪었어야 할 아픔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너무 폼만 재는 거 아닌가,, 하는 삐딱한 시선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건 둘째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있는 나에게 가장 신기했던 것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도 몸을 움직이고 싶어했던 것이다. 보통 체격에 배나온 아주 평범한 중년 남성이 두달정도 만에 대학생때보다 가슴이 더 딱딱해지는 근육맨이 되다니.. 내가 이렇게 따뜻한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과자를 먹으며 이 책을 읽어도 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마치 내가 스즈키가 된 것처럼 근육이 아픈 것 같고, 몸에 힘이 생기는 것 같고, 숨이 헐떡여지는 것 같았다. 몸이 가벼워지는 상쾌한 기분을 나도 느껴보고 싶었다.
힘들게 몸을 단련하고, 싸움의 기술을 배운 후 드디어 결전의 날. 이시하라의 학교로 쳐들어간 스즈키는 상상 속에서 수없이 해본 결투를 시작한다. 이 결전 무대는 마치 <두사부일체>류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조폭영화를 연상시켰다. 교권이 땅바닥에 추락하고, 그렇게 만들 엉터리 교사들이 등장하고, 교권에 반항하는 학생들, 학교라는 신성한 의미는 상실되고 그저 멋진 결투장소가 되어버린. 그것이 씁쓸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두가지 감정이 섞여버렸다.
이 소설은 가독성이 대단하다. 손에 쥐고는 금방 뒤로 훌훌 넘어가버린다. 무슨 무슨 수상작이고,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해도 읽기 힘들어서 독자에게 읽혀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너무 읽기 쉬워서 좀 아쉽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영화 속 장면들을 연상케 하는 스피디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 영화를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스즈키와 박순신을 영화 속 주인공들로 머릿속에 그려놓고 읽었다. 그게 독이 되기도 하지만, 득이 되기도 했다.
미나가타, 야마시타 등 박순신의 무리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