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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 조심하라, 마음을 놓친 허깨비 인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4년 6월
평점 :
임원이 좋아할 만한 책
‘위하여! 위하여! 위! 하! 여!’
몇 년 전까지 만해도 술자리 건배사는 구호 형식이 많았는데,
요사이 그 자리를 괴이한 사자성어 형식의 건배사가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너!나!잘!해!
너와 나의 잘나가는 새해를 위해.
같은.
세 글자도 많다.
2010년 경만호 대한적십자 부총재를 한 방에 보낸 격 떨어지는 '오바마(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라든지.
이런 족보 없는 사이비 사자성어도 있지만,
최근 임원들은 난해한 사자성어 인용하여 건배사를 한다.
구구절절 사자성어의 배경이 된 인문고전을 소개하여 지적인 면을 부각한다.
'I am your 임원!'
이 또한 경영진들 끼 경쟁이 붙어서인지 서로서로 더 어렵고 낯선 사자성어를 술자리에 데려온다.
나는 술자리에서 늘 이런 건배사를 들을 때마다,
벅찬 가슴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지금 고기를 뒤집어야 해!'
그리고 집게를 들고 생각한다.
'근데 도대체 이런 사자성어는 다 어디서 나온 거람?'
‘이 양반들이 논어, 맹자 등 모든 인문고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진 않을 텐데’
이 궁금증은 마침 김영사에서 해결해 줬다.
<조심>이란 책으로.
촤르륵 훑어 보니,
사자성어 책이다.
게다가 임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두루 갖춘 사자성어 책이다.
우선, 사람들이 모른다.
두 번째, 그럴싸한 인문 고전을 기반으로 한다.
누가 들으면,
‘그런 것도 읽고 제법인데’ 생각할 만한.
셋째, 묵직한 메세지가 있다.
사자성어치고 묵직한 메세지 없는 건 없겠지만.
뭐 침어낙안 폐월수화처럼 여성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자성어도 있군.
몇 개쯤 기억해 두었다가 나이 먹고 건배사에 써볼 만하다.
꽤 잘 자라준 꼰대 취급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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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세 가지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사자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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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육폐
술 먹고 개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구나.
음주육폐는 명나라 때 사조제가 문해피사에 말한 음주의 여섯 가지 폐해다.
화성 여행도 가능할 21세기에도 너무 잘 통용된다.
1단계 몸가짐 상의 패덕상의.
평소에 쌓아온 덕을 무너뜨리고 점잖던 거동을 잃게 된다.
술 먹고 개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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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대인 상의 기쟁생흔.
없어도 될 다툼을 일으키고 공연한 사단을 부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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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위학상의 폐시실사 공부에 힘 쏟아야 할 젊은이들이 때를 놓치고 할 일을 잃게 하는 원흉이 술이다.
술 먹고 학고, 투고, 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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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
치가에 있어서 초도생간.
가장이 늘 취해 정신을 못 차리거나 걸핏하면 폭력을 휘드르니 그 틈에 도둑이 들고 간특한 일이 벌어진다.
‘EBS 남편이 달라졌어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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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관리가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손위실중.
관장이 직임은 거들떠보지 않고 술 취해 추태를 일삼으니 위엄은 손상되고 무거움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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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위정 상의 전도착란.
책임자가 앞으로 고꾸라지는지 뒤로 자빠지는지도 분간을 못 하니 하는 일마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될 게 뻔하다.
워싱턴DC 호텔에서 윤창중 전 대변인이 몸소 보였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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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매리
치수를 믿지 말고 네 발을 믿어라.
정나라 사람이 신을 사러 장에 갔다.
신발가게에 들어가서 신발을 사려던 순간 아차!
'여보게 내가 발 치수 적어둔 종이를 깜빡 두고 왔네. 내 얼른 가서 가져옴세'
오잉?
그는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 종이를 가지고 왔다.
하지만 신발 장수는 이미 가게를 닫았다.
Closed.
곁에 있던 이는 어이 없어 물었다.
'어째서 직접 신어보질 않았소?'
그는 말했다.
'자로 잰 치수는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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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회의하다 느끼는 심정을 사자성어로 표현할 수 있구나! 생각이 든다.
특정 업무를 시간 내에 못 끝낼 것 같다며 대책 회의를 한다.
‘어떻게 끝낼 것인가’를 가지고 한 시간, 두 시간 회를 한다.
그 시간에 일해야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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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복청복
정약용은 사람이 누리는 복을 열복과 청복으로 나눴다.
열복은 누구나 원하는 그야말로 화끈한 복.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를 누리며 떵떵거리고 사는 복이 열복이다.
청복은 욕심 없이 맑고 소박하게 한세상을 건너가는 것이다.
가진 것이야 넉넉지 않아도 만족할 줄 아니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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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복이 왜 복일까?
겸손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뜻이 아니다.
행복을 느끼기 위한 역치가 낮은 것, 인생 사는데 고정비용이 낮은 것도 복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풋사랑 때 상대와의 몇 글자의 문자, 몇 마디의 통화에도 뇌 속에서 도파민과 세로토닌 칵테일 파티가 밤새 열린다.
나이가 꽉 차고 결혼 적령기에 만남은 도파민, 세로토닌 칵테일 파티가 열리기까지 선제 되는 조건이 많아진다.
만족의 역치는 높아지고, 행복을 유지하는 고정비용이 높아진다.
청복을 가진 사람은 역치는 쉬이 높아지지 않고 적은 고정비용으로도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건 개인의 의지 문제라기보다 타고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정 복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