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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 - 40억년 전 어느 날의 우연
프랜시스 크릭 지음, 김명남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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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 : 40억 년 전 어느 날의 우연.

책 제목만으로도 경외심이 생겨 존댓말이 나올 지경이지만,

책의 큰 주제인 ‘정향 범종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또 갸웃한다.

‘이건 뭐 SF소설인가?’

왜냐하면,

정향 범종설은 한 마디로 생명의 기원은 지구 밖이라는 것이다.

운석에서 묻어온 어떤 생명의 씨앗이 지구에 뿌려졌다는 거지.

멍하니 읽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SF영화 한 장면이 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첫 장면이 바로 정향 범종설이다.

첫 장면은 ‘엔지니어’라고 하는 인간과 비슷한 외계인이 검은색 액체를 마신 후 물에 뛰어든다.

몸이 완전히 분해되어 물속에 없어진 후,

화면 가득 DNA 모양의 이중 나선이 분열 및 복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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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학자가 할 얘기인가?

과학서를 쓰랬더니 소설을 쓰고 앉았네라고 치부하기에는 또 저자가 너무 거물이다.

우리가 DNA 하면 생각이 나는 이중나선.

그래,

이거 이것만 나오면 갑자기 생물학자가 빙의하는 그 모양.

저자 프랜시스 크릭은 ‘DNA 이중나선 구조’라는 논문을 써 생명공학 혁명의 깃발을 처음 올린 사람이오,

제임스 왓슨, 모리스 월키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소설이라도 찰스 다윈만큼이나 생물학의 한 획을 그은 양반이면 뭔가 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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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다 읽은 내가 결론부터 말하면,

책을 덮을 때 즈음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생길 것이다.

너무 경이로워서 무신론자인 내가 신이 어디 숨어있나 두리번거릴 정도다.

책 제목만 보면 뭇사람들도 나처럼,

세포 하나에서 인간이 되는 과정이 신기하지만 그 정도인가?

아니지.

이 정도라면 내 머릿속으로 어떻게든 이해를 했겠지.

그게 아니지.

그 세포를 구성하는 초기 생명의 조각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얘기한다.

그냥 일반 분자가 평범한 일반 화학 반응이 우연의 우연을 걸쳐 DNA가 되고,

그 DNA는 스스로 분열 복제를 시작하며 세포를 만들게 된다.

세포까지 오면 최소한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간까지 되는 것은 뭐 그럴 수 있겠지.

분자로 크게 비유하자면,

그냥 아무런 의지도 없는 길에 있는 돌덩이들이 비바람 맞으며,

우연한 화학반응이 연속을 걸치다 보니 스스로 복제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팔다리가 쑥 생겨 처자식 만들어 대를 이어가는 꼴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종교가 없는 나조차 신이 정말 있건가 싶을 정도다.

아마 신이 있다면 그건 무구한 ‘시간’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런 엄청난 우연들을 빼곡히 세워서 돌멩이를 사람으로 만들 정도의 밀집된 우연들.

정말 몇 억 년의 시간이 주어지면,

 단순 돌덩이기에도 생명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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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전체적으로 훑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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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시간과 거리, 큰 것과 작은 것

2장 우주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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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장은 본격 생명에 대해 얘기 하기 앞서,

우주가 얼마나 넓고,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를 팍 죽이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지구에 생명체가 있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생명체가 생기는 데 필요한 시간을 한 번 느껴봐라 욘석들아!

 .

우주가 얼마나 넓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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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오렌지만 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9m 거리에서 궤도를 도는 모래알이다. 지구보다 11배 더 큰 목성은 태양으로부터 60m 거리에서, 즉 도시의 한 블록 거리만큼 떨어져서 공전하는 체리 씨다. 은하는 오렌지 1,000억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오렌지와 이웃 오렌지의 평균 거리는 1,600㎞다. -3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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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킬로면 대만 정도 거리다.

서울에 있는 오렌지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대만에 있는 오렌지다.

인터넷에서 하는 드립들이 과학에 근거한다고 느끼는 게,

안드로메다가 그나마 가장 가까운 은하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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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넓은 곳에서 하필 지구에 생명체가 어떻게 생겼을꼬.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걸까?

손에 잡힐 수 있는 사물을 통한 비유는 이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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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자체가 캄브리아기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에 해당한다고 하자. 대략 6억만 년이다. 그러면 한 페이지는 약 300만 년을 뜻하고, 한 줄은 약 9만 년, 한 글자나 빈칸은 약 1,300만 년이다. 이때 지구의 기원은 책 7권쯤 더 앞선 시점이었을 테고, 우주의 기원(정확한 연대는 대략적으로만 측정된다)은 그보다도 10권 더 앞섰을 것이다. 기록된 인류 역사는 이 책의 마지막 두세 글자 안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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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한 번에 한 글자(글자 하나가 1,500만 년)씩 천천히 읽는다면, 우리가 다루어야 할 시간이 얼마나 광활한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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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팍 죽었으니 인제 생명에 대한 생화학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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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생화학의 통일성

4장 생명의 일반적인 성격

5장 핵산과 분자 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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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에 대한 경외의 눈을 모두 깡그리 거둬 버리고,

단순 화학물질로 보면 결국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된 어떤 것이며,

이것들은 스스로 계속 복제를 할 수 있다.

생명의 속성이란 게 참으로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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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계는 자신의 지침을 직접 복제할 수 있어야 하고, 복제에 필요한 장치도 간접적으로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유전물질의 복제는 꽤 정확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돌연변이가 낮은 비율로 반드시 발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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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들이 평범한 일련의 화학작용이 계속 적절이 이루어지다 보면,

고분자 물질인 핵산과 단백질이 생성된 것이다.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이기 때문에 우리가 재현할 수 없을 뿐.

마치,

주사위 두 개를 굴렸는데 몇백만 번 계속 일이 두 개가 나오는 스네이크 아이가 계속 나오는 확률보다 더하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완전 100% 또라이는 아니란 얘기다.

정말 로또를 연달아 10년간 매주 맞을 확률만 한 우연한 길을 간다면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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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원시지구

7장 통계의 오류

8장 다른 적합한 행성들

9장 고등 문명들

10장 생명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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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비밀을 밝혀주겠다는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다.

인지 영역을 밥 먹듯이 벗어나는 얘기들 때문에.

몇십억 년 동안 온 지구 곳곳에서 발생한 화학반응 중 하나가 기가 막히게 우연과 우연으로 딱딱 반응하여 생명이 나온다.

물론 알겠는데 그 우연이란 게 너무 기가 막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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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마리 원숭이에게 10억 대의 타자기를 주더라도, 우주의 현재 수명에 해당하는 시간 내에 윌리엄 셰익스피어 의 소네트 4행 1연으로 이루어진 정형시 중 가장 대표적인 형식)가 정확하게 타이핑되어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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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목까지 나오고,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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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밝혀진 지식을 모두 숙지한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일까? 지금으로써는 생명의 발생이 어떤 면에서든 기적이나 다름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이 발생하기 위해서 충족 되어야 할 조건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이 말을 오해하지는 말자. 상당히 평범한 화학반응들이 적절하게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지구에서 생명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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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SF영화에 나올 법한 외계의 요소로 인해 지구에 생명이 탄생했다는 정향 범종설 주장이 슬슬 그럴싸해 보일 지경이다.

도무지 아무리 영겁의 시간을 줘도 저런 우연들이 계속되는 게 말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정말 지구에만 생명이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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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래,

신은 없지라고 생각이 든다.

Here is 스파르타는 아닌 불가지론!

그런데 이 최초의 생명체에 해당하는 핵산과 단백질이 발생 과정을 읽노라면,

음,

오히려 세상에 창조주라는 게 정말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이롭다.

40억이라는 시간 그 자체가 창조주인 게 아닐까.

창조주라는 게 어떤 형상이 아닌 시간 그 자체가 아니겠느냐는 철학적인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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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설계도를 주어진다 해도 워낙 우연한 산물이 필요하므로,

40억 년을 줘도 인간을 만들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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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그들은 무엇을 보냈는가

12장 로켓의 설계

13장 두 이론 비교하기

14장 다시 생각해보는 페르미의 질문

15장 왜 신경을 써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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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저자가 생각하는 정향 범종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렇게 접근해 본다.

만약 우리라면 어떻게 다른 은하계로 진출할 수 있을까?

우리 외의 문명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겠지.

너무 진지하게 하다 보니 SF영화 시나리오 같다고 느껴진다.

요약하면,

질량 때문에 사람은 안 돼요.

한정된 자원이라면 세균을 보내는 것이 적당하다.

현재 로켓 방식으로는 이론적으로 광속의 1/100밖에 속도를 못 내기 때문에 가까운 은하계까지 걸리는 시간이 몇천, 몇 만 년이다.

당연히 그만큼의 연료를 채우기 힘들다.

이 문제에 대해 과학자들의 기발한 상상들이 나온다.

지구에서 레이저를 쏴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식,

얇은 태양광 돛을 만들어 태양광의 흐름을 타서 멀리 까지 보내는 방법 등.

도대체 누가 상상력을 가지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했나.

상상력은 인문학의 전유물이 아닙디다.

과학이 펼치는 상상의 날개는 몇 곱절 더 커 보인다.

생명의 기원부터,

생명을 우주로 보내기 위한 온갖 상상들,

하지만 철저히 과학에 입각한 상상력은 백 년의 고독과 같은 마술적 사실주의처럼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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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끔찍한 부작용.

책은 우주, 생명, 진화 거창하디 거창한 주제를 다룬다.

인지 영역을 넘어서는 우주의 광활한 모습,

어쩌면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연한 우연으로 만들어진 생명,

거기서 진화 그리고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나타날 미래까지.

이런 것들에 푹 빠지다 보면,

이 우주의 작은 먼지의 흠집안에 껴 있는 때보다 미천한 내 인생!

뭐 이리 아웅다웅 사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인생 좀 막 살게 된다.

에라이 그냥 술이나 먹자,

에라이 그냥 퍼 자자,

에라이 야식이나 잔뜩 먹자,

회사 일도 귀찮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고 나면 못 노나니.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오히려 인생이 너무 복잡하여,

머릿속에서 잡념들이 광란의 파티를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읽어 보아라,

경이로운 세계에 압도되고 그 손 바닥위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도 있다.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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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 유럽 근대의 뿌리가 된 공자와 동양사상
황태연.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공자학원 수출

공자학원?

중국이 소프트파워전략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컨텐츠로 한 ‘공자학원’을 수출한다고 할 때,

교양 수업 수출 정도로 치부했었다.

공자, 맹자를 우숩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단지 ‘철학’이라는 개념보다는 약한 ‘인문교양’ 범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선입견 때문이겠지.

플라톤, 데이비드 흄, 칸트, 비트켄슈타인, 하버마스, 데리다를 공부한다고 하면 심오해 보이고,

공자, 맹자를 공부하면 왼지 나이 지긋한 부장들이 인문교양으로 읽는다는 편견이 있었다.

공자에 선듯 손이 안가는 이유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것을 추구하는 나에게 유교의 수직적인 가르침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허! 나이가 어린 놈이! 시키면 시키는데로’

‘조직문화에 순응해야지! 회식을 빠지면 도에 어긋나’

‘장유유서! 어른이 한 잔 주면 원샷!’

공자가 장유유서를 이런 개념에 쓰라고 가르친것은 아닐텐데,

장유유서를 ‘엑스 마키나(Ex Machina)’ 마냥 악용하는 ‘유교 꼰대’들이 있다보니 편견이 생겨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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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읽으며 내가 가진 두 가지 편견을 마주한다.

첫째, 동양철학은 서양 철학 보다 못하다는 편견.

책에서 딱 꼬집는다.

20세기 이래 오늘날까지 서구 학계는 계몽주의의 관계를 역서적으로 추정하고 심층적으로 탐구하면서 수많은 업적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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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서양에 대한 열등의식이 청산되지 않은 동아시아 지성계에는 공맹철학이 계몽주의에 미친 영향이 아직까지도 미지의 사실로 남아있다. 그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는 편이다.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지난 100여 년 동안 공자철학과 고유한 전통사상을 과격하게 부정하거나, 형식적으로만 명맥을 이어오며 서구 문화의 수입에 경도되어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동아시아 지성계는 공자를 새롭게 활용하는 데서도 서구 지성계에 뒤지고, 서구 철학 속에서 공자의 위상을 성찰하는 데서도 뒤져 있다 지구촌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살아 온 공자마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셈이다. P 110

둘째, 유교 사상이 현재 사회에 도움이 많이 될까라는 회의.

오늘날 1인당 GDP 8만 달러를 넘는 스위스의 경제적 풍요는 바로 중국을 모델로 한 1820년대 경제개혁에 의해 기초가 놓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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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대한 공자철학의 영향을 추적해온 경제학자 게를라흐는 2204년 논문 <유럽 속의 무위>에서 스위스를 마치 리틀 차이나처럼 소개한다.


30년 전쟁의 공포가 종식된 지 200년 만에 서부 유라시아의 산악지역이 백성의 복지를 위한 조화로운 통치의 새로운 비전을 창조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위사상의 전파가 없었다면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P 213

동아시아의 유토피아인 대동사회는 큰 도가 행해지고 모두가 하나 되는 사회다. 노인의 노후복지, 유야복지, 배우자나 자식이 없는 노인, 고아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민생복지 및 병자에 대한 보건복지, 고용안정 등이 완비된 복지국가다. 공자는 이 완전한 복지국가를 이상국가로 동경했던 것이다. P 178

좀 더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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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장 부터 시선을 끈다

시작부터 시선을 확 끈다.

별 기대 없이 읽던 난 일요일 오전 출발 비디오 여행에 빠지듯 읽어내려 갔다.

공자의 언행은 우리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얻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덕철학과 국가철학의 보고로 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P 16

1721년 7월 12일 프로이센제국의 할레 대학에서 총장 이임식 자리,

전임 총장 크리스티안 볼프가 요아힘 랑케에 총장직을 인계하며 한 연설이다.

날짜가 1721년이다.

1700년대는 아직 마녀사냥이 있는 시기.

예수 천국, 불신 진짜 불지옥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종교의 힘 없이 인간 본성의 힘만으로 놀라운 윤리적 행위가 가능하다고 얘기한 것이다.

언 듯 계몽주의 이전 중세와 중국을 쉽사리 연결하기 어려웠다.

상품교역은 했겠거니 했지만, 공자의 사상이 어떤 식으로 중세 지식인층에 전달된 건지 자못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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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다.

유럽의 근대화를 추진한 18세기 계몽주의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순수문학을 소생시킨 14~16세기의 서양 르네상스도 동아시아의 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시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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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부흥기에 유럽이 주로 동아시아로부터 선진적인 물질문명을 받아들여 르네상스의 물적 토대로 삼았던 반면, 계몽주의 시기에는 정신문명, 즉 공자의 철학사상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위한 혁명운동을 일으켰다. P 27

이 책은 한마디로 서양 사상사에 공자의 역할에 대해서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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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공맹 사상은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졌다.

기독교를 전파하러 중국에 간 선교사들에 의해 공맹 사상이 역으로 들어왔다.

이는 서양 철학에도 변화를 줘다.

공맹 철학이 유럽에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의 철학자들은 공감도덕론을 전혀 몰랐다. 공자가 도덕의 실마리를 연민, 동정심, 측은지심, 인에 등 천성적인 공감감정으로 보았지만, 유럽 철학자들은 이성(플라톤), 계시(기독교), 이기적 계약(에피쿠로스) 등을 도덕의 기초로 간주하는 전통 철학을 절대 진리인 양 계승, 답습하고 있었다. P 66

이쯤에서 에이 이거 너무 확대해석 아냐? 라고 생각할 때마다 서구 학계의 이야기로 기반을 다진다.

공맹 철학이 18세기 서구 계몽주의의 기폭제이자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이 거의 잊혔던 1960년대에 패스 모어는 비록 18세기 유럽 철학에 대한 공맹 철학의 직간접적 영향을 명확히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공맹 철학의 탁월성과 유럽적 영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감을 잡고 "17.18세기에 벌어진 일은 유럽사상의 공자화"라고 평가한다. P 81

진짠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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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면 낯익고 놀라운 이름들이 나온다.

우선,

이가 갈리는 양반인 라이프니츠.

이 양반이 뉴턴과 작당하고 미적분을 만든 덕에 수학상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 학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라이프니츠는 수학자이기 앞서 철학자인 것을 새삼 실감한다.

열렬한 공자 추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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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케네.

케네?

경제학사를 배우면 애덤 스미스를 소개하기 바로 직전 한 페이지 정도 소개되는 중농주의자 창시자 케네.

경제학에서는 그저 그런 지나가는 인물인데,

철학사에 나름 비중 있는 인물인 것에 놀란다.

동서양 철학 가교에 큰 역할을 한다.

정말?

사실이야? 라는 물음표를 계속 쏟아내며 읽게 된다.

왜냐하면, 그 마르크스가 인정한 사람이 중농주의자이자 경제표의 창시자 캐내다.

마르크스 자본론에도 큰 영향을 줬다.

그 말은 공자 사상도 마르크스 자본론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는 것 아닌가?

책을 읽으며 막장 드라마 삼각, 사각, 팔각관계 보듯 공자, 맹자와 얽힌 철학자를 보며 휘둥글해진다.

중국은 게네의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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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게네는 중국철학을 그리스 철학보다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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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게네의 특별한 아이디어들 대다수가 중국적인 것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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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게네가 경제표를 발표하기 2년 전, 루이 15세는 게네의 제안으로 중국 황제를 모델 삼아, 본 경치 기가 시작될 때 손수 쟁기로 밭을 가는 장엄한 의식을 거행한다. P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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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자, 맹자 철학을 성공적으로 수용한 나라들에 대해 나온다.

영국 그리고 스위스.

더 놀라운 것은 영국의 대표적인 정치제도인 의원내각제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거다.

서구의 의원내각제가 먼저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각은 중국에서 비롯된 정치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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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년 절 경이 중국의 내각을 연상하게 하는 추밀원 내각(Privy Council Ministry)을 기획하고 시험 운전함으로써 영국 내각제가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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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 명예혁명을 통해 마침내 영국 특유의 의원내각제적 제한 군주정을 창출한다. 이로써, 임금은 영유하나 간여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원칙은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The king reigns,, but does not rule)은 영국의 불문율로 번안되어 오늘날까지 행하지고 있다. P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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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확대해석하는 것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 때면 또 어김없이 뒷받침해주는 인용구가 튀어나온다.

미국 석학 놀련 제이컵슨은 다음과 같이 확언한다.

흄에게 가장 중심적인 개념 중 하나, 즉 보편적 공감의 이론이 맹자에게서 처음 비롯되고 흄의 동시대인, 특히 애덤 스미스 등 중요한 동시대인들의 윤리학을 밑받침해주고 있다는 것은 거의 우연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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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한 장, 한 장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한 가득하다.

이 책과 '출발 책 여행'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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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간 것

철학에 대해 아주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여기저기 구멍이 숑숑 뚫린 지식이다.

서양 철학을 동양 철학과 비교 그리고 그 역사를 동양에서 설명하는 동안,

서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커졌다.

합리주의, 경험주의, 에피쿠로스학파 그리고 공맹 사상의 비교를 통해 도대체 뭐가 다르고,

왜 이렇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동양사상에 따라 서양철학을 설명하니,

뿌리를 서양철학으로 해서 이해하기보다 훨씬 쉽다.

마치,

누구를 묘사할 때 그 사람의 특징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보다 누구나 아는 사람으로 비유하는 게 편하듯이.

‘김태희?’

서양 철학도 몸에 밴 유교사상을 기초로 설명하니 좀 더 와 닿는다고 할까.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이런 나의 얇은 서양, 동양철학 지식을 안 찢어지도록 질기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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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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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운 첫 만남

책을 훑어 봤다.

텔레파시, 염력, 마음 조정하기, 외계인의 두뇌.

목차에 이런 문장들이 눈에 띄니,

이 건 또 뭔 괴작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책 표지와 들면 팔목이 절여오는 두께는 진중한 책인데 목차는 허무맹랑한 주제가 아닌가?

근데 책 표지를 보면 '뉴욕타임스 인기 도서 1위'다.

게다가 잘은 모르지만,

저자 미치오 카쿠의 소개를 보면,

이론 물리학계의 석학이다.

이론 물리학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만인의 위로를 무참히 부숴버리는 분야다.

아인 슈타인, 리처드 파인먼 등 같은 양반들이 노는 물이란 말이다.

이런 사람이 소설을 쓰고자 텔레파시니 마음 조정하기 같은 괜한 소리를 하진 않았을 터.

충분한 과학적 근거로 쓴 내용일 테니,

두툼한 이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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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을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부 마음과 의식.

과거부터 최신 뇌과학의 세계를 소개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밝힌 뇌 지식을 총망라했다.

해외 토픽에 나온 인간 뇌에 나온 오만가지 실험에 대해 잘 정리되어있다.

이 중 천재라든지,

동물과 사람의 두뇌 차이에 대한 모형이 흥미롭다.

저자 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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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주로 공간 및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에서 이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반면,

인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과거와 미래)까지 고려하는 모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시공간 의식이론(space-time theory of consciousness)으로 부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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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이 모형으로는,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이런 시뮬레이션을 잘하는 사람,

더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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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 모형으로 유머와 개그를 분해해보면,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그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에 펀치 라인이 존재하여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말에 도달하면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따라서 누군가를 웃기려면 그의 예측능력을 의외의 방식으로 순식간에 와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머리가 좋다는 말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일반사람이 100가지의 시뮬레이션을 만든다면,

웃긴 사람은 120가지의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그들이 못 가진 20으로 예측 능력을 와해시킨다.

개인적으로 개그 웹툰 작가 중 최고는 귀와 이 말년이다.

도무지 이야기 전개가 예측이 안 된다.

한 편으로 형편없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측 능력 범위를 뛰어넘는 시뮬레이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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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마음으로 육체를 극복하다

내가 처음에 이 책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든 장이다.

텔레파시, 염력, 주문 제작된 생각과 기억들, 아인슈타인의 뇌 등에 관해 얘기한다.

우선 당신이 뇌과학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면,

뇌에 관한 현대과학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 읽기가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더이다.

지금 기술로도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는 패턴으로 약간은 읽을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이 설 현인지,

수지인지까지 정확히 못 맞추지만, 최소한 여자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측정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 또한 기술발달로 뇌의 활성화를 읽어내는 기계의 해상도가 높아지면 훨씬 정확해진다.

그 뿐인 줄 아나.

특정 TES라는 장치는 적 펄스로 붙어 폭팔적인 자기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다.

이런 장치가 뭔 역할을 하느냐고?

전기펄스로 뇌에서 미리 선택해놓은 영역의 활동을 둔화시키거나 아예 정지시킬 수 있다.

즉,

뇌 특정 부분을 일시적으로 정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아직 정교하진 않고 뇌의 깊은 부분은 불가능하다.

먼 미래에 기술이 발달할 수 있다.

한 번 보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서펀트의 능력은 어떤 부분이 발달해서가 아니다.

망각 기능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즉,

뇌는 기본적으로 뭐든지 기억할 수 있는 모양이다.

단지 필요가 없어서 측두엽에서 계속 망각 스위치를 눌러주는 것이다.

만약 이 기능을 정지시킬 수 있다면,

책 한번 보고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갑자기 수다쟁이가 된 것 같다.

이 정도로 놀라운 얘기가 가득하고,

한 편으로 무섭기까지 했다.

극장에 상영되는 공상과학 영화는 인제 0에서 1을 만드는 얘기가 아니다.

1을 100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불가능한 기술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 먹고 자고 하고 있는 이 시간에 지구 한편에서는 이런 기술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조정하려고 해!'라고 외쳐도 미친놈이 아닌 시대가 올 수도 있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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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변형된 의식.

2부의 내용 정도로도 해도 놀랄 노자인데,

3부에 오면 더 먼 미래에 관해 얘기가 나온다.

꿈속에서 헤매고, 마음을 조정하고, 의식을 바꾸고, 인공정신을 만들고 드디어 외계인의 마음마저 얘기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외계인에 대한 얘기는 흥미진진하다.

특히,

유머러스하게 다가온 주제가 하나 있었는데 외계인은 왜 지구를 방문하지 않는가? 이다.

그러고 보니 만약 있다면 왜 안 올까?

그들의 논리적인 설명을 들어보자.

“당신이 시골 길을 걷다가 개미집을 발견했다고 하자. 이럴 때 당신은 개미집에 얼굴을 들이밀고 “이봐, 너희 주려고 작은 방울이랑 구술을 가져왔어. 필요하다면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도 가르쳐줄게. 그러니까 나를 너희 우두머리한테 소개해줄래? 라고 할 것인가?”

글쎄,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또 이런 얘기를 한다.

외계행성에서 우주를 가로질러 이곳까지 올 정도라면 과학수준이 우리보다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 이상 앞섰을 것이고,

그들에게 우리는 길가의 개미떼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외계인이 오직 우리를 만나기 위해 수조*수조Km를 날아온다는 것은 지나치게 오만한 생각이다.

과학자들의 냉소적인 유머들이란.

이외에도 이런 상상 속 얘기들에 과학을 부단히 밀어 넣는 작업을 계속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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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의 책이려나

이 책을 간략 정리하면,

뇌과학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SF영화가 다르게 보일걸.

뇌과학을 읽다 보면 생각보다 발전이 빨라 섬 듯한 느낌도 들었다.

텔레파시가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고,

기억을 주입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과학기술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영혼을 구원한다는 사이언톨로지를 믿는 사람이나 반과학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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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고객 - 고객도 모르는 고객의 구매심리를 꿰뚫어보는 법칙
김경필 지음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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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다?
전통 경제학자들은 ‘예스, 그게 호모 이코노미쿠스’지!
반면,
경제학사에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학자들은 최근 기지개 켜며 다가와 말한다.
웃기네.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존재다.
자 이 개념을 경영의 세계에 가져와 보자.
기존 마케팅이론은 역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을 가정하고 만들어진다.
정말 그런가?
아이폰보다 얇디얇아진 지갑에 오른손을 얹고 합리적인 소비자 선서를 한 번 해보시라.
그 순간 인터넷의 바다가 갈라지며 지름신이 나타날 것이요,
한 손엔 카드 명세서,
한 손엔 상품을 들고 우리를 그윽하게 바라볼 것이다.
우리는 이성의 고객인가?
야성의 고객인가?
책의 짚는 포인트는 간단하다.
고객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않다.
맞다.
그들은 이성에 길들지 않은 야성의 고객이다.
어떻게 그들을 잡아야 하나?
책이 말하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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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고객을 찾아서

우리는 한 기업 안에서 일하는 구성원이면서도 퇴근 후에는 회사를 벗어나 한 명의 고객이 되어 구매 활동을 하기 때문에 고객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경제, 투자, 마케팅, 전략, R&D, 생산, 조직을 다루는 기업에 있을 때는 주로 이성으로 사고한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헌터(최근 유행하는 비오는 날 신는 여성 장화)를 준비하고 비가 오기를 기대하는 고객의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고, 헌터의 고객을 인식의 오류쯤으로 치부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고객으로서 우리는 비가 오면 헌터를 신고 기분 좋게 출근하지만, 사무실 안에서 우리는 ‘고객은 무조건 비 오는 날은 싫어할 것’이라는 이성적 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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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생의 고객: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애덤 스미스가 말한 합리적인 인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인가?
고객은!
고객을 모르는 대표적인 사례 하나를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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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야생 마케팅의 이해:기업에 요구되는 변화
인제 고객이 푸른 양복에 양 소매에 코스프를 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기업 앞에 있는 한 손에 부러진 나무 몽둥이를 든 털북숭이 바바리언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우선,
기업부터 변해야 한다.
그들을 이해하자!
어떻게?
소리를 듣는 기술, 리서치에 대해 말하는 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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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야생의 사고와 마케팅 기술: 기업의 실천
신상품은 수요의 변화가 아니라 생각의 변화로 구매된다.
결국 동력은 브랜드다.
브랜드의 스토리가 야생의 고객을 끌어들인다.
하늘의 떠 있는 수많은 별.
별의 집합이 아니라 별자리처럼 만들라는 것이다.
곰자리, 사자자리, 백조 자리,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에 이야기가 없었다면,
오직 천문학자만이 언덕 위에 밤하늘을 쳐다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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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을 때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게 된다.
왜 스티브 잡스가 절대로 고객 조사를 하지 말라고 했는지?
프랭클린 플래너보다는 몰스킨 노트를 찾는지.
에르메스 버킨이 왜 ‘우리 제품은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살 수 없어’라고 콧대를 세우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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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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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평 쓰기 싫어진다

서평 참 쓰기 싫게 만드는 책이다.
블로그에 서평 몇 줄 올려본 사람이라면 더할걸.
이건 뭐,
원빈과 찍은 직찍 사진 속 자신을 볼 때의 기분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헤르만 헤세가 손 수 고른 책의 서평을 모아 놓은 책이다.
서평의 질이 다르다.
우리가 친숙한,
읽어봤을 법 한 <안드레센 동화집>, <호밀밭 파수꾼>, <데미안>, <걸리버 여행기>의 서평을 읽고 있자면,
과연 내가 같은 책을 읽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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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사진과 같은 글이다.
왜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인가 싶지 않을 때가 있지 않나?
남산 올라가는 길은 오즈의 마법사의 노란 벽돌길이고,
안개 낀 충주호는 북유럽 신화의 배경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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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평들을 읽고 있자면,
내가 책을 읽긴 읽었었나 라는 의심마저 든다.
하지만 이런 좌절감을 잠깐 잊고 있자면,
위대한 작가의 렌즈를 통해 작품들을 다시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여기 소개된 책을 대부분 못 봐서 내 시각과 비교를 할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소개된 책의 80%는 들어 본 적도 없어 읽은 척은 물론,
아는 척 허세 부리기 못 할 것들이다.
헤게가 극찬한 크누트 함순의 <시대의 자식들>,
피오나 매클라우드의 <바람과 파도> 등은 저자나 책제목이나 낯설다.
첫 장을 넘겨 거인의 어깨위에 새로운 세계를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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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몇 가지
인상 깊은 게 너무 많겠지만,
이 서평을 쓰며 떠오리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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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헤세의 표현력.
글쓰기 충고 중 ‘형용사를 자제하라.’라는 것이 있다.
부사도 쓰지 말래,
형용사도 쓰지 말래 도대체 어떻게 표현하고 꾸미라는 것인가?
이 말 뒤는 이렇다.
‘형용사를 자제하고, 그 자리에 은유와 비유로 대체하라.’
헤세의 서평 곳곳에 이 말이 떠올리는 구간을 만난다.
도스토옙프스키의 책들은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기 힘든 것도 문제지만,
책 전반을 관통하는 우울한 분위기 때문에 페이지 넘기는 게 곤혹이다.
이 우울한 기운에 대해 헤세는 어떻게 비유했게?
‘천 페이지에 이르는 이 작품에서 어디 한 군데도 태양이 비치지 않으며, 어디 한 군데도 나무나 풀이 푸르게 자라지 않으며, 황량한 교외의 술집에 갇힌 밤 꾀꼬리 말고는 그 어떤 새도 노래하지 않는다. 계절도 풍경도 없으며, 인간들은 페테르부르크의 안갯속에 제각기 격리되어 산다. 그들은 공기를 숨 쉬며 땅을 밟는 것 같지도 않고, 운명의 강물 속에서 절망적으로 허우적대며 헤엄치고 있을 뿐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자명함, 선량한 미소, 그 어떤 태양도 이 세계에선 모두 사라져버린 듯하다.’
‘우울하다’를,
‘어느 한 군데도 태양이 비치지 않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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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아직 고전의 반열이 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이다.
오늘날이야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은 읽어야할 대표적 고전으로 분류되지만,
헤세가 이 서평을 썼을 시점에는 카프카가 죽은지 10여년 밖에 안되었다.
고전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아직 글쎄.
당시 카프카의 대한 헤세의 평가는 어땠을까?
‘1920년 무렵의 문학작품, 심하게 흔들리고 상처 입은 세대의 문제 많고 흥분한, 때로는 황홀경에 사로잡힌, 때로는 경박한 문학작품을 1940년대에 관찰하고 또 선별하게 된다면, 다른 수 많은 작품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카프카의 작품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소수에 속할 것이다.’
정말 카프카는 헤세의 예언데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소수가 되었다.
동시대 살았던 프라하의 사람들은 프라하를 ‘카프카의 고향!’ 이라고 생각하며 오는 관광객이 있을 거라곤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는 사후에 20세기 대표 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헤세의 예리한 눈이 인상적이다.
그의 연필을 쥔 ‘손’뿐만 아니라 책을 쥔 ‘눈동자’에도 건배를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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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아쉬운 점
마지막으로, 1차 세계 대전 직후 러시아에 대한 인상이다.
나에게 러시아인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드카’, 인터넷 세계에서 거친 러시아인의 나라를 지칭하는 ‘불곰국’, 종합격투기 챔피언 ‘효도르’, 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푸틴’이다.
20세기 초 헤세가 말하는 ‘러시아적 인간’을 들어보자.
‘위험하고 감동적이고 책임감 없고 그러면서 양심적이고 부드럽고 몽상적이며 잔인하고 깊이 어린애 같은 러시아적 인간’
‘대립들, 특성들, 도덕들을 넘어선 인간, 스스로 해체되어 장막 저편으로, 개체화의 원리 저편으로 되돌아가려는 인간이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20세기 초 문학에서 러시아적 인간은 스펙트럼 양쪽 끝의 특질을 동시에 담긴 존재로 인식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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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아쉬운 점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아쉬운 점 하나를 꼽으라면,
물론 개인 편차가 있겠지만.
이 책은 서평을 모아놓은 책이다.
대상 책을 읽지 않았다면 서평의 맛을 제대로 못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라고 꼬시는 서평이 아닌,
읽었던 책을 다시 곱씹게 하는 도돌리표 붙은 서평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본인은 목차의 책 중 10%나 제대로 있었을까?
10%밖에 없는 미각으로 맛있는 고급 요리를 맛봐야 한다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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