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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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계약자라는 말이 사실 생소하다. ‘계약’이라는 말 자체를 많이 들어본 적도 없었고 아직 ‘계약’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처럼 종이에 내 이름을 적고 싸인을 한다는 것이 내 눈에는 ‘내 이름을 내걸다’라는 의미로 비치기도 했다. 그래서 계약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빠져들었던 하나의 이유를 꼽자면 ‘계약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미 정답은 책 표지에 나와 있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쌍둥이처럼 똑 닮은 둘의 정체는 ‘나’였다. 너도, 다른 사람들도 아닌 주인공 알음이었다. 알음에게 계약자는 거미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곰돌이가 되기도 했다. 다양한 형태로 알음을 맞은 주인공은 알음 그녀 자신이었다. 나에게는 이 책이 약간 어렵게 느껴졌다.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 하나하나가 분명 무언가를 나타내고,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걸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비, 율, 소희, 꽁알, 알음, 그녀의 가족. 계약자와 알음이 만나는 순간, 바로 알음이 원하는 것을 얻고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들이 꼬이는 것만 같고 마지막엔 알음과 소희가 등을 돌리게 되는 장면까지 나오게 된다. 혼자가 되어야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말 또한 나에게는 정말 심오하게 들렸다. 이 말은 마치, 내가 경험해야만 느낄 수 있는 문장인 것 같았다.

잃을 게 없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특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음이 혼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엉겨붙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혼자여서 알음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결국에는 남의 도움, 남이 자신의 무언가를 들어준다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내 소원을 말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였다.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다. 알음은 소희의 불만이라든지 한탄을 들으며, 그녀가 복에 겨웠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자신보다는 힘들지 않겠지 하며. 하지만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 또한 다른 아이들의 고민을 들을 때마다 가끔 ‘저것도 고민이라고. 나보다는 덜하네’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럼 나만 그럴까? 그 아이들도 똑같이 내 고민을 들으며 자신들 보다는 덜 힘들다 생각할 것이다. 알음이 계약자의 정체를 찾기까지, 그녀의 그간 행동은 미성숙하고 아이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계약자를 찾고 나선 어떠했는가, 알음이 만의 그림까지 그리게 되었다. 계약대로 지켜나가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이라도 계약자를 만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살아가면서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부딪히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계약자를 만나는 데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상, 그 누구도 계약자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계약자를 만났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항상 나에게 무엇인가를 하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계약자의 말을 무시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마음속 어딘가가 찝찝해질 뿐이다. 그 찝찝함이 자국으로 남지 않게 하도록 나는 오늘도 계약자의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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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3
사가와 미츠하루 지음, 장은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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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스케에게 닥쳐온 불행은 그가 주도해서 닥쳐온 것이 아니었다. 아빠의 바람과 은행에서 횡령한 돈 사건이 드러나면서 자신이 다니던 중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결국 이모가 운영하는 보육시설에 맡겨지는 데, 엄마와 이모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사실 혈연이라는 관계는 결코 무시할 수도 없다. 엄마와 멀리 떨어지게 된 대신 앞으로 요스케를 돌봐줄 사람은 이모이기 때문이다. 보호자 역할을 하는 이모를,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멀리 할 수도 없다. 그건 오로지 엄마와 이모뿐만의 관계이고 그것 때문에 요스케까지 관계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보장될 수도 없다. 마치 부부가 이혼은 했지만 자녀가 엄마 쪽, 아빠 쪽과도 만날 수 있고 이야기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부부, 어른들의 관계에 아이들까지 얽매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모의 보육시설에서 살게 되는 요스케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게 되는 타쿠야와도 친해진다. 보육시설에 맡겨지는 아이들의 뒷배경은 화려하고 다양하다. 입양해서 잘 사는 듯싶었으나 양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보육원에 내맡겨지는 아이, 학대나 폭력 등으로 맡겨진 아이 등등. 그것에 비하면 요스케는 ‘잠시’ 머무는 것에 불과하다. 자신보다 더 좋지 않은 환경, 상황에 머물러 있는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게 되는 요스케는 남들은 경험하지 못할 일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와 이모의 대조되는 성격과 행동이 요스케에게 눈을 뜨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이모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반면에 엄마는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 엄마의 아래에서 돌보아졌던 요스케에게 당연히 이모라는 존재와 이모의 가치관에서 조금 놀라 했을 것이다. 이모에겐 결혼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고, 현재 요스케는 엄마 아빠와 멀리 떨어지고 학교에서까지 쫓겨난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아직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요스케에게 엄청난 인생의 굴곡이 아닐 수야 없다. 호보사에 맡겨진 아이들도 안정적이지 못했던 가족관계 등으로 첫 번째 실패를 맞이한다. 축복받으며 태어나 가족과 함께 자라야 할 나이에 호보사 아이들은 그러지 못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과 자라난다는 것이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실패로 보일 수도 있다. 갑자기 호보사를 나간 노즈키 선배도 보이스 피싱 등으로 생계를 꾸려 나갈 걸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국 경찰에 잡혀 마지막엔 호보사에 다시 들어오게 된다. 그들이 호보사에 맡겨졌기 때문에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원망하며 떠난 노즈키 선배는 또 다른 실패를 맞이했고 마지막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호보사의 아이들에게 더는 낭떠러지라던가 실패할 곳, 떨어질 곳은 없다. 있다면야 올라갈 곳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이 하나가 되어 실패를 이겨낸 것이다. 참으로 쿨하고 박력 넘치는 이모의 몫도 한 건 했다. 만약 아이들을 들들 볶기에 바빴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찾거나 공부하는 것조차 힘겨워 했을 수 있다. 책에서 이야기를 해나가는 요스케에게서 이모에 대한 생각,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뒷부분에서 이모를 이야기하는 요스케에게 이모라는 존재는 그에게 롤모델로 바뀐 것 같다.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안정적인 길을 놔두고 실패든 성공이든, 무언가를 향해 모험을 떠난다는 뜻이다. 결국엔 다시 연극의 품으로 돌아가는 이모를 보며, 참 요스케의 이모는 멋지신 분이구나라고 느꼈다. 새로운 곳을 향해 걸어간 결과 이모는 자신이 원했고 좋아했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일이 잘될지 못 될지는 해봐야 안다. 그러나 그 일을 꼭 해야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힘들다. 한 마디로 ‘나는 일을 벌이겠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말이 쉽지 정말로 해내는 사람은 적을 거라 생각한다. 인제 요스케의 이모는 요스케뿐만이 아닌 나에게도 롤모델로 자리 잡아 진 것만 같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는 일도 그만큼 어렵다. 실패가 오지 않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야 중요치 않으니까.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 거라면, 차라리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길을 향해 걸어가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실은 이게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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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꿈은 뭐니? - 10대를 위한 행복한 진로
백은영 지음, 고현열 그림 / 이지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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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뭐니? 라는 질문에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친구들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또 한 나는 뭐라 답할 수 있을까? 참 많이 고민했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뚜렷한데도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나 같은 경우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뚜렷했고 작가라는 꿈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네가 장래에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작가’요, 라고 대답은 할 수 있으나 정확한 직업은 말할 수가 없다. 뚜렷하게 세운 목표, 구체적인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미래를 위해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잠도 몇 시간밖에 자지 못하는데 그에 비해 나는 무엇을 하는 걸까 하고 고민도 참 많이 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다. 그럴 때마다 내렸던 결론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중 제일 명쾌한 것을 내놓으라 하면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공부하자’였다. 청소년에게 꿈이란 지금 막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 준비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을 공부, 준비밖에는 없다. 그러니 고민할 시간을 아껴 공부해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목표에 다가서는 것은 어떨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로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수록 고민은 사라지긴커녕 더 부풀어져만 간다. 그때 나에게 해답을 주었던 것이 네 꿈은 뭐니? 라는 책과 백은영 작가의 강의였다. 자음과 모음 기자단 활동으로 모임에 갔을 때 짧지만 정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좋은 강의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돈을 투자하는 시대가 아니다. 인재는 많다. 그 중 창의력이 좋은,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를 스카우트해 간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진다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누굴 위해 좋은 것일까? 부모를 위해? 날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나는 나 자신이 주도한다. ‘나’라는 이름 앞에 또 다른 사람이 날 주도한다면 그만한 실세가 또 어디 있을까. 학원에 매달리기에 급급하고 코피를 밤마다 쏟아가며 공부를 하는 자신을 생각해보자. 누구를 위해 학원에 다니는 것이고 누구를 위해 코피를 쏟는 것일까.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 등등 공부에 대한 나의 주도성이 확실하다면 상관없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정말 내 꿈이 무엇인지 막막하고 남들보다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주변 친구들에게. 한 챕터 챕터마다 여태껏 궁금하지만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던 질문들이 들어 있어 좋았다. 또한 아직 우리 사회가 그렇게 삭막하지 않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말해주고도 싶다. 어느 길로 향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도와주시는 진로 선생님이 계시니 말이다. 학교에서도 진로 시간이 따로 생기고 테스트를 통해 알아볼 수도 있어 예전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이제 남은 것은 내 꿈을 찾는 것.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한 번쯤 고민해본 친구라면 가능성은 무한하다. 아직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 것. 남은 남이고 자신은 자신이다. 친구와 내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생김새, 이름, 머리스타일.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르듯 말이다.

진학, 진로와 고민을 하느라 스트레스에 쌓여있던 나를 구원해준 백은영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내 삶의 주인은 나. 날 이끌어갈 사람도 나. 내가 나를 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겠다. 남들이 겪어보지 않다고, 경험해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외롭고 무서울지 몰라도 좋은 모험이 될 것이다. 그 모험을 이제 내가 시작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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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아빠애인 열다섯 아빠딸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2
이근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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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연애의 차이점은, 결혼은 생활이 중심이고 연애는 사랑 없이는 정말로 할 수 없다는 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아빠의 옛 애인의 집에서 산다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게 느껴진다. 아빠의 애인이었던 여자의 집에 아빠의 딸인 내가 같이 산다...... 주인공인 문영이가 지서영이라는 라디오 디제이와 몇 주 동안 같이 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같이 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동안에 문영이가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하는 게 낫다. 아이들은 아이들로서의 고민이 있는 것이고 어른은 어른들로서의 나름의 고민이 있다. 부모와 자녀와의 충돌, 나이와 거리가 조금 있는 사람들 간의 충돌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무슨 충돌이 일어나든 간에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배려’가 아닐까. 상대는 어른이니까, 혹은 청소년이니까 내가 상대의 눈높이로 혹은 이해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이 어른의 눈높이를 맞춰간다는 것은 어렵지만 만약 내가 ‘어른’이라는 가정하에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영화를 보다가도 간혹 화가 나는 장면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당부하는 장면에서 ‘잘할 수 있지? 잘할 거라 믿어.’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왜 항상 어른들은 자녀, 혹은 청소년에게 묻지도 않고 혼자 대답으로 단정 짓는 것일까. 몇 초 만의 간격으로 생각할 시간만 주었더라면 우리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다. 소설에 나오는 문영의 아빠도 그렇다. 아이의 처지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다 보니 문영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이 책에서 놀랐던 점은 10대 청소년의 심리가 정확히 잘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몇 년 후면 성인이 될 테지만 남은 기간 동안 참지 못하고 끓어올라오는 욕구들. 십 대에만 느끼고, 가질 수 있는 욕구, 생각. 하지만 아직은 미성숙하고,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우린 아직 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다. 소설에 나오는 문영의 친구들이 어른처럼 화장하고 나이트클럽에 들어서는 장면을 보고 조금 웃었다. 뉴스, 혹은 드라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모든 매체에선 아직 익숙하지 않고 자극적인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에 다가가야 하는 선이 불분명해지는 때가 청소년이라고 생각한다. 선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정확히 보이지 않는.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하며 고민도 하게 되는 시기. 그때 옳은 곳으로 끓어다 주는 사람, 즉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청소년보다는 경험, 지식이 많은 어른이 충분히 우리에게 충고해줄 수도 있고 도와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끔은 쓴소리도 하지만 그만큼의 사랑도 줄 수 있는 어른.

사춘기와 사추기. 말의 한끝 차이지만 같은 고민으로 뭉치는 그들은 나이를 떠나 ‘친구’같은 사이가 된다. 지제이와 문영. 한 사람에겐 옛 애인. 한 사람에겐 아빠.

질풍노도의 시기이면서도 알고 보면 단순한 청소년. 마흔으로 넘어가기 전, 아슬아슬한 끝에 서 있는 서른아홉.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조선 시대 때에는 여든다섯의 나이로 과거에 합격한 선비도 계시는데 21세기의 우리는 앞으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걸까? 100세 시대가 곧 열리는 시점, 마당에 열다섯과 서른아홉이 가지는 고민이란 아무것도 아닐지도. 하루에 한 개씩 고민이 생성돼서 미칠 것 같은 나도 항상 그 앞을 바라보며 걷는 중이다. 걷고, 걷고, 또 걷고. 사람은 한 방향으로만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가다가 왼쪽으로 꺾을 수도 있고 지하로 내려갈 수도 있고 혹은 우주로 가는 길을 개척에 위로 튀어 오를 수도 있다. 안개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할 것 같다면 갤 때까지 쉬는 것도 ‘일’이다.

주변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안절부절못절하거나 늦어진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한번 쉬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럼 더 늦는 게 아니냐고 묻겠지만 사실 쉬는 것만큼 빨리 답, 길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 테니까. 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뛰기만 하면 어쩌다 도랑에 빠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걸 알고서도 걷는 사람이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푹 쉬다 보면 길이 보이고 그 길이 내가 걸어야 할, 개척할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

문영에게 지제이와 함께 했던 날은 안개가 걷힐 때까지 쉬어다 간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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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 제22회 스바루 소설 신인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1
아사이 료 지음, 이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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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기리시마가 누구길래? 라는 생각은 표지를 보고부터 느낄 수 있다. 무슨 일 때문에 기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두게 되었을까, 참 추측을 많이 하게 해주는 제목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책 속에서는 단 한 페이지도 기리시마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기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두었다는 얘기 하나로 교내 동아리에 영향을 끼친다.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것이 기리시마가 마치 모든 동아리와 연결되어 보이는 듯하다. 친하지 않더라도, 얼굴을 잘은 모르더라도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웃이란 느낌이 조금 강하다. 일본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  

 

각 학급에는 ‘톱’ 클래스에 드는 아이들이 몇 명씩 존재하고 그들은 무리지어 다닌다. 성격 또한 다른 학생들과는 조금씩 다르다. 톱이 있다면 ‘아래’에 존재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톱’ 클래스를 만들어 낸 건 자신들을 아래라 칭하는 아이들이 아닐까. 처음부터 톱이란 틀 안에 들어간 아이들은 없다. 몇 명이서 끼리끼리 모이고 몰려 지낸 것이 다른 아이들 눈에는 그저 ‘톱’으로 보였을 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선, 벽으로 서로서로가까이하지 않으려 한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부터 시작하는 작은 선은 조금 있으면 대학이라는 곳으로 옮겨 갈 것이다. 이 책은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방황과 고민 등을 시원하고 전혀 슬프지 않게 유쾌하게 풀어냈다. 고민이나 방황을 다룬 이야기였어? 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이야기는 매우 솔직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어린 시절 친했지만 커갈수록 어색해지고 아이들끼리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선 사이에서 갈등하는 10대들. 기리시마가 배구부를 그만둔 일을 계기로 후스케가 정규 선수로 시합에 나가게 되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처럼 그들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저 아이들은 인기가 많은 톱 클래스고 우리는 존재감이 없는 조용한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묻혀 살아가고 싶어하는 영화부부터 톱 클래스 아이들이 많은 야구부. 기리시마가 속했던 배구부. 카오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 미카가 속한 소프트볼부, 어쩌면 탑 클래스라 힘들 가스미와 가라오케로 오해를 받을 뻔한 브라스밴드부까지. 모든 아이의 이야기는 평범하고 10대인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사소하고 너무 작아 알지는 못하지만 어른이 돼버리면 후회를 할지도, 추억으로 남겨두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금의 사건들. 학교에선 학생이란 이름으로 모두가 같아 보일 테지만 형편, 가족관계, 미래, 꿈이 각각 다른 아이들. 동아리라는 키워드로 모든 것이 연결된다면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리시마가 배구부를 그만두었다는 것은 그만큼의 이유와 고민이 따랐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그렇다. 그것이 결정이든 방황의 순간이든. 모두의 이유, 고민, 결정이 다를지 몰라도 중요한 건 아이들 모두 커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소한 일에도 틀어지고 흰 도화지에 무엇을 그려나가야 할지 막막한 우리들은 예민하다. 각각 동아리에 속한 아이마다 한가지씩 고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기리시마가 갑자기 배구부를 그만두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우린 말할 수 있다. 과거에서 벗어나 오지 못하는 엄마가 계신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 편을 가르는 아이가 있다면 괜찮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가 똑같을 수 없으므로 생김새, 성격, 말투, 꿈 모든 것이 다르다. 살다가 한 번쯤 나를 뒤돌아보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내가 하는 일은 유효하다고 볼 수 있는지, 왜 이리 초조해하는지 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덮쳐오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들이 아래에 있다고 주장하는 아이들은 톱 클래스를 보며 생각한다. 저 아이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찌질하고 조용한 아이들이라고. 그래서 그들은 모른 채를 하며 살아간다.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눈을 마주칠까 고개를 숙이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한 낌새에 험담이라 혼자 결정짓는다. 어차피 톱 클래스와 저들이 섞일 일은 없을 테니까 모르는 척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편으로 톱 클래스를 동경한다. 잘생기고 예쁘고 자기 자신을 꾸밀 줄 알고 인기도 많은 아이들이니까. 톱 클래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아이들이 정한 위치에서 톱을 맡고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잠시 멈칫한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다른 아이들은 모두 미래를 위해, 꿈을 위해 연필을 들며 코피까지 흘리는 것도 모자라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는 걸까. 항상 멋 내기, 외모, 치장에만 공을 들이고 흰 도화지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곰곰이 해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본다. 그것이 해답이다. 내 주변에 어떤 아이들이 있는가. 그리고 모두가 나 같은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부를 보며 비웃는 친구들이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진다. 너희는 그만큼의 노력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비웃을 자격이 있느냐고 묻고 싶어하겠지.

 

 

 

내가 톱 클래스이든 그 반대이든. 아이들은 모두 아이들이다. 나 또한 그 아이들이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그것이 정상이다. 흰 도화지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는 나와 다른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떻게 채워 넣을지를 생각하지 말자고.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흰 도화지에 같은 그림을 그릴 확률은 세계 인구로 따져보았을 때, 아니 한 학교 재학 학생만 보아도 적을 것이다. 그만큼 세계는 다양하고 이것이 올바르다고 정의를 내릴만한 것도 확실히 없다. 사과를 보고 어떤 이는 작게 그리고, 어떤이는 크게 그릴 수도 있다. 사과라는 것은 분명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나의 손, 그리고 어떤 도구를 집고 있느냐, 그리고 제일 중요한 어느 크기만 한 도화지를 쥐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우리는 시작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하는 것일지라도. 기리시마는 다시 배구공을 손에 쥐고, 나는 펜을 손에 쥐고. 그리고 여러분은 무엇을 손에 쥘 것인지 물음을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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